쿠오 바디스,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1 - 재난과 전투, 그리고 암살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 엮음, 정초일 옮김 / 푸른숲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재채기 하는 사람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God bless you!)”이라고 말하는 서양 사회의 관례는 왜 생겨났을까? 그것은 중세 말기의 끔찍한 전염병 페스트 때문이었다. 병든 폐에 있던 페스트균은 잠깐의 기침만으로도 병원체가 대기 중에 방출되어 곧장 다른 사람의 폐로 들어간다. 잠복기는 2, 3일에 불과하며, 감염된 사람은 호흡 곤란, 심한 재채기, 각혈 등으로 고통을 겪다가 결국 신경 마비로 질식해 죽고 만다. 14세기 유럽인이 겪었던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사망자 수를 2차대전의 경우와 비교하면 피해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2차대전의 사망자는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희생자까지 포함해서 유럽 인구의 약 4.5%였다. 이에 비해 페스트가 창궐하던 1347년부터 1351년 사이에는 유럽 인구의 30내지 50%가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 의회에서 긴 연설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정치인을 일컫는 필리버스터란 말은, 원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허락을 받고 스페인 배를 약탈하던 해적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들 ‘여왕 폐하의 해적들’은 돛대에 뼈다귀를 교차시킨 해적 깃발을 휘날리며 식민지에서 본국으로 보물을 실어 나르던 스페인 배들을 약탈했다. 이에 스페인 무적함대는 1588년 공격을 감행했고, 드레이크 제독 등 해적 두목들이 영국 해군의 지휘를 맡았다. 이 전쟁으로 지리상 발견 후 유럽의 선두 주자였던 스페인의 전성기는 물러가고 영국이 신흥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독일 제2 텔레비전 방송  ZDF의 연속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엮어낸 이 책은, 해전 상황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16세기의 대포 발사 과정을 재현해낸다. 당시의 대포는 적에게도 위력적이었지만, 대포를 다루는 포병들에게도 위험스럽기 짝이 없었다. 발사시의 반동으로 포신이 뒤로 밀려나 포병이 압살되기 일쑤였고, 대포 속 포탄의 30%는 ‘뒤쪽으로’ 발사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그밖에도 나폴레옹, 폼페이 화산 폭발, 아틀란티스, 카이사르의 죽음 등 서양 역사의 굵직굵직한 재난과 전투가 흥미진진하게 읽혀진다. 영락없는 독일 판 ‘역사 스페셜’이다.

유럽 문명의 통합적 성격을 감안해야겠지만, 독일 방송이면서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점이 부럽다. 사실상 ‘한국사 스페셜’에 머물고 있는 KBS ‘역사 스페셜’이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취급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럴 경우 시청자 반응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세계화란 구호는 무성하지만, 세계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멀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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