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김경재 지음 / 삼인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란 좋은 것이다. 김재준 하면 막연히 기독교 장로회의 설립자 정도 밖에는 몰랐던 나에게 한 권의 책으로 그의 생애와 신앙, 그리고 덤으로 한국 현대 기독교사의 큰 흐름까지 알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일일이 발품을 팔면서 알아보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서도 다 알 수 없는 것을, 단 하루 만에 책 한 권으로 다 읽어치우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이 책의 저자인 김경재 교수(한신대 교수)는 전교(傳敎) 초기 한국 기독교를 제1세대(1880-1900), 제2세대(1900-1920), 제3세대(1930년대)로 시대 구분한다. 1세대에서 2세대까지만 해도 한국 기독교는 복음적 신앙, 민족적 신앙, 토착적 신앙을 거지고 건강하게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1920년대 후반기부터, 특히 1930년대에 들어서부터 한국 개신교 교회는 침체와 신앙의 경직화, 그리고 방향 감각 상실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생동감을 잃고 교권주의, 율법주의, 사이비 신비주의로 병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 교회의 위기 시대는 창조적 소수자의 활동기이기도 했다. 감리교 이용도의 교회 부흥 운동, 김교신, 함석헌 등의 무교회주의 운동, 그리고 최태용을 중심으로 한 주체적 민족 기독교 복음교회 운동 등이 일어난 것이다.

김교신, 함석헌 등과 동갑이었던 김재준(모두 1901년생)은 이 무렵에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한국 기독교사에서 김재준이 본격적으로 역할을 맡게 된 것은 1939-1940년의 조선신학교(지금의 한신대학교) 설립에 하늘의 부름을 받고부터였다.

1930년대 이후 장로교 내에서는 교권 문제와 신학 문제로 두 개의 흐름이 분열 대립하고 있었는데, 교권으로 말하면 서북 교권과 기호 교권의 대립이요, 신학 노선으로 말하면 근본주의적 보수 신학과 진보주의적 개혁파 신학의 대립이었다. 조선신학교는 후자, 즉 기호 교권 및 진보주의 신학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장로교의 교파 분열에 대한 구구한 사연을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다. 다만 김재준이 설정한 신앙 노선이, 피선교국 한국의 교회나 신학 교육을, 보호받고 지도받아야 하는 평생 미성년자 취급하는 외국 선교사들의 정책에 대한 반발로서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점은 일본 무교회주의의 창시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입장과도 다르지 않다. 우치무라는 철저한 자립정신이야말로 기독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외국 선교사들이 진정으로 일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원한다면 먼저 일본의 기독교가 재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 김경재 교수는 한국 보수주의 교회에서 교리로 세뇌당한 교인들이 불교 법당에 안치된 불상을 우상이라고 이해하면서 훼불 사건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진짜 우상은 바로 그런 극단적 신도가 신봉하는 잘못된 ‘교리주의적 기독교’일 따름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은 구약 시대처럼 이방 신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절하는 유치한 가시적 우상을 만들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좌지우지하면서 끌고 다니고 조종하는 돈, 권력, 종교, 국가, 세계관, 경전, 근본주의적 교리, 섹스, 대중문화 등이야말로 현대인의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김재준이 일생 추구한 목표는, ‘복음의 자유’를 다시 회복해 교권주의나 율법주의나 국가지상주의 등에 노예가 되어 있거나 어떤 이념이나 조직 체계에 종속되어버린 인간을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의 자유인’으로 복권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김재준의 신앙적 입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 기독교가 이웃 종교들에 대해 갖는 태도를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배타주의적 입장은 글자 그대로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에 대해 배타적 입장을 취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만이 참 진리이고 다른 종교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대화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그들을 심판하고 개종시키는 길만이 옳다고 확신하므로 종교간 충돌의 불씨를 항상 안고 있다.

둘째 포용주의적 입장은 기독교를 가장 우월한 영적 종교라고 확신하면서도, 다른 종교들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각자 자기 몫을 견지해 왔다고 판단하여 다른 종교의 전통을 존중한다. 물론 이 입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난 ‘생명의 복음’이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을 지닌 온전한 종교라고 고백한다.

셋째 다원주의적 태도는 세계의 다양한 고등 종교들은 인류가 처한 자연적, 역사적 전통 속에서 ‘진리 그 자체’가 다양하게 나타난 결과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종교 간의 우열을 판단하기보다는 각각의 종교의 위대성을 인정하고 서로 배우며 협동하자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이 세 가지 중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김재준이 이 세 가지 입장 중에서 포용주의적 입장에 선 분이었다고 평가한다. 김재준의 포용주의적 입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김재준은 “우리 한국인은 유교, 불교 등 기독교 아닌 타종교를 받아들인 이후만 하더라도 약 1,500년의 긴 역사를 이룩해왔다”고 지적하고, 우리나라에 온 초대 선교사들이 너무 고자세였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하나의 공백(空白)처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한국 문화에 무엇인가 있었다 해도 그것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악의의 소산이라 하여 일망타진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불당의 불상이나 유교의 제사를 단순한 우상숭배로 치부하여 그 박멸을 기도했고, 그것은 결국 커다란 ‘거침돌’이 되어 한국인의 복음 이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김재준은 하나님만이 절대자이시고 그 외의 어떤 것일지라도 절대화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전(성경), 신조, 교리, 교직 등은 결코 그 자체로서 절대일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이시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종교 그 자체도 절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재준의 입장은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한 다음 말과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진리’보다 ‘기독교’를 더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기독교’보다는 자신의 ‘교파’나 ‘교회’를 더 사랑하는데 이르게 되고, 마침내 모든 것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끝맺게 된다.”

김재준은 무엇보다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책을 읽었으며, 심지어 식사 중에도 책을 읽었다고 전한다. 졸업식장에서도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할 정도였다.

“여러분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공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책을 읽으십시오. 교역자가 가난해서 책 살 돈이 없으면 며칠 굶어서라도 책을 사서 읽어야 합니다. 읽을 뿐만 아니라 책을 몸에 지니고 다니십시오.”

김재준은 말년에 그리스도가 그와 평생 동행했노라고 고백했다. 수호천사가 그를 옹위하면서 때론 꿈으로, 때론 지혜로 그를 돕고 인도했다고 김재준 본인은 물론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제자 및 신도들도 믿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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