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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새생명으로
하워드 스톰 지음, 이헌근 옮김 / 은혜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스톰이 근사 체험을 통해 배운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은 사랑의 본질을 배우기 위한 것이며,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유 의지대로 사랑을 선택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살인, 폭력, 전쟁, 타인에 대한 지배를 얼마나 싫어하는 분인지에 대해 천사들로부터 이렇게 배웠다고 말한다.
"두 전쟁(1, 2차 세계대전)은 예방할 수도 있었고 절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다. 전쟁 동안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하나님도 당하신다."
스톰은 "하나님께서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당하시는지 우리가 알기만 한다면 어떻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전쟁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인을 원하면 그것을 막지 않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증명할 극적인 행위를 모든 사람에게 하시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압에 의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믿음을 강요하시지도, 믿음을 갖도록 협박하시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무관심하게 복종하는 노예를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자유 의지로 선택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진실한 사랑이 결여된 종교적 행위를 가증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종교적 위선자보다는 오히려 진실한 불가지론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스톰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있을 만큼 선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에 가길 원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을 선택하기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와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잘못되어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할지 거부할지를 이곳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무디의 <잠깐 보고 온 사후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이 책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을 온몸으로 경험한 스톰은 감격에 겨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수님을 불렀고 예수님은 나를 구하러 오셨다.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기쁨 위에 기쁨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를 안으시고, 어머니가 아이에게 하듯, 아버지가 돌아온 탕아에게 하듯 나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그동안 나의 삶에 믿음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절망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울었고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는 또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상황에 따라 그 사람이 위로를 느낄 수 있도록 제각기 상황을 다르게 만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각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며 보살펴 주시는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땅에 코를 박고 살아가는 나 같은 자에게 그가 들려주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는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지 모른다.
스톰에 의하면 '종교'란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종교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다. 진정한 종교란 각 사람들의 말, 생각, 행위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한 다음의 말과 다르지 않다.
"진리보다 기독교를 더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기독교'보다는 자신의 '교파'나 '교회'를 더 사랑하는데 이르게 되고, 마침내 모든 것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끝맺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