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정(草澗亭)의 가을

 

 

  출근길에 교정에 핏빛으로 물든 단풍나무 앞에서 잠깐 서 있어야 했다. 무심하구나, 잠깐 마음속에 파문이 밀려왔다. 그러고 보면 11월, 알지 못하는 새에 가을이 깊어 있었던 것이다. 공연히 마음이 싸아해 왔다. 어디론가 성큼 깊어진 가을을 만나고 싶었다.

단풍을 만나려면 굳이 초간정을 찾을 일은 없다. 인근의 산과 들은 이미 단풍으로 자욱한 것이다. 그런데 굳이 예천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지난 해였던가, 불문의 선배들과 함께 무심코 들렀던 초간정의 가을빛이 너무 강렬했던 탓이고 예천은 아주 친근한 곳이어서였다. 복직하고 두 학교를 거치면서 거기서 근무한 게 7년, 그 중 반쯤은 읍내의 오래되고 낡은 국민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예천은 마치 이웃집처럼 익숙하다.

 예천 들머리에서 제가 다녔던 중학교를 지날 때, 딸애는 목을 빼고 밖을 내다보았고, 가끔씩 옛 기억들을 하나씩 들추어내곤 하였다. 그렇다. 누구나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현재의 삶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다. 삶은 그 같은 차례 없는 숱한 기억들의 누적이기도 하다.

용문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좁고 꼬불꼬불했다. 풍경이 바뀔 때마다 아내와 딸애는 나지막하게 탄성을 질러댔다. 한적한 신작로에도 가을이 깊숙이 진주해 있었다. 산 능선과 들판과 길가의 가로수 사이에서 가을은, 옷깃을 세우고 화사하게, 그러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듯했다.

 

 초간정 입구로 들어서자, 새롭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초간정 아래를 돌아 흐르는 시내 주위로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은행잎을 흩날리며 서 있었고, 이미 선연한 핏빛을 잃어 버린 단풍나무, 소나무와 여러 종류의 고목들이 연출하는 주변 풍경은 11월의 첫 주말의 불청객들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초간정은 초간(草澗) 권문해 선생이 1582년에 초옥(草屋)으로 건립하였으나, 임란 때 없어진 것을 1612년에 중건하였고 병자호란 때 다시 무너진 것을 1870년에 다시 세운 정자다. 앞에 시내가 돌아 흐르는 경관 좋은 암반 위에 자리잡은 팔작집이다. 사진을 찍는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파인더 안에 들어온 정자를 바라보면서 대체로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우리 고건축이 갖는 아름다움은 '단아(端雅)함'이라고 뭉뚱거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간정의 아름다움은 그 오래된 정자와 주변 풍광에 있지, 호사와 풍류를 누린 한 지역의 권문세가를 기리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초간 권문해가 편찬한  우리 나라의 역사·지리·문학·철학·예술·풍속·인물·성씨·초목·조수(鳥獸)를 다룬 일종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은 따로 기억할 만하다. 비록 그것이 원나라 음시부가 지은 '운부군옥'을 본떠 지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용문사(龍門寺)는 신라 때, 두운 선사가 창건한 절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태조가 삼한통합의 큰 뜻을 품고 두운선사를 방문하고자 동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바위 위에서 쌍룡이 나타나 길을 인도했다고 하여 태조가 산과 절 이름을 각각 용문산, 용문사라 붙였다고 한다.

 1984년 초파일 다음 날, 5동의 건물을 태워 버린 화마에도 살아 남았다는 대장전(大藏殿)을 빼면 이 절집은 여러 차례의 불사로 날아갈 듯한 법당 여러 채로 그 모습을 이미 일신해 버린 듯했다. 대장전 안에는 국내 일천여 사찰 가운데 용문사에만 있는 윤장대(輪藏臺)가 있다.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로 경전을 장대 안에 넣어두고 돌려가며 읽는 까닭에 윤장대다.

 절집 안마당까지는 오르지 않고, 여러 명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삼각대와 큼지막한 사진기를 들고 오르내리는 경내 길을 한 바퀴 돌았다. 처연한 자태로 벋어나간 고목들과 발길에 차이는 노란 은행잎, 완만한 기울기의 언덕길 주변에 수북이 쌓인 낙엽, 여전히 오묘한 눈록빛을 잃지 않고 있는 키 큰 나무들이 연출하는 산사의 풍경은 이미 아름다움을 넘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뒤뚱거리며 걷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나 팔짱을 끼고 그 길에 묻혀 버린 모녀의 모습은 이미 그 풍경의 일부 같아 보였다.

 

 

 바쁜 일도 없이 서두르는 건 버릴 수 없는 병폐다. 서둘러 절집을 빠져 나와 내려오는 길가, 무리지어 핀 백일홍이 지저분하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아름답기야 꽃을 따를까 보냐만, 시들어 지는 모습은 나무가 훨씬 의젓하고 실해 보이니 세상에 뿌리박아 남기고 끼침이 다른 탓이겠다는 생각을 뜬금없이 하다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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