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 네루다 시집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 민음사 / 1989년 1월
평점 :
절판


 

라틴 아메리카의 희망,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도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시 "시" 중에서>


요즘, 네루다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읽고 있다. 아마 1989년께 같은 시집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 산 이 민음사판은 2000년에 발행한 초판의 11쇄다. 내 기억이 엉터리인가 하여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역시 그렇다. 1989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이 시집을 냈다. 이 책은 아마 새로운 편집본인 모양이다. 한심하게도 지금 생각나는 것은 단지 '읽었다는 기억'과 아주 폼나는 '제목'뿐이다.


파블로 네루다는 내게 있어서 '시인'으로보다는 '칠레'와 '빅토르 하라', 그리고 '살바도르 아옌데'와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어두운 현대사와 같은 열쇳말로 기억되는 이다. "운동보다도 운동가를/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인 최영미처럼 '혁명보다 혁명의 분위기'를 더 좋아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알 포스티노"와 같은 영화로 그를 기억하겠지만, 내 기억 속에서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1971) 시인이 아니라, 칠레의 민중과 함께 칠레의 변혁을 위해 살다 간 민중시인으로 존재한다.

 

▲ 빅토르 하라의 아내인 무용가 조안 하라가 쓴 책이다. 88년에 읽었으니, 정작 네루다보다 그를 먼저 안 셈이다.

1973년 9월 11일, 3년 전 네루다 등의 지지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선거로 선출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 군부와 경찰의 쿠데타로 무너졌다. 아옌데는 쿠데타군에 점령당하지 않은 국영방송 라디오와 전화를 연결, 마지막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이 내가 국민 여러분에게 연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나는 사임하지 않겠습니다. (……) 나는 국민의 충성에 대하여 내 목숨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 나는 여러분께 단언합니다. 우리가 수천 수만 명의 칠레인들의 양심 속에 뿌린 씨앗들은 결코 완전히 뿌리뽑힐 수 없을 것입니다. (……) 어떤 범죄행위나 강권도 사회적인 변화와 진보를 가로막을 정도로 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의 편입니다. 역사란 민중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방송 직후 아옌데는 피노체트의 망명 제의를 일축하고 두 딸을 포함한 여성들을 궁밖으로 내보냈다. 정오가 되자, 쿠데타군의 공군 전폭기에서 대통령궁으로 폭탄이 투하되었고 탱크를 앞세운 지상군이  진격하였다. 아옌데는 최후의 순간까지 기관단총을 들고 싸우다 죽었다. (이 쿠데타를 그린 극영화가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1976, It Is Raining On Santiago / Il Pleut Sur Santiago>이다.)

 이후 쿠데타군에 의해 단 일 주일 동안 무려 3만여 명이 죽었다. 그 3만 속에는 칠레의 전설적 민요가수이자 민중 문화운동가 빅토르 하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기관총으로 사살 당했다. 기타를 만지던 손가락이 짓뭉개지고 두 손목까지 부러진 그의 시체는 문화운동과 민중운동의 기수였던 그의 노래에 대한 군부의 증오를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9월 23일, 산티아고에서 칠레 민중의 희망이었다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고 있던 발파라이소와 산티아고의 집이 샅샅이 파헤쳐지고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남부 국경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 유명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했을 때, 네루다는 열아홉 살이었다. 스물네 살에 극동 지역의 영사로 활동(남미에서는 젊은 시인들에게 영사 자리를 줌으로써 그들을 격려하는 전통이 있다.)했고, 마흔 살에 광산노동자의 요청으로 상원의원이 되었다. 우익 독재자의 집권으로 비밀경찰에 쫓겨 지하로 숨었을 때 네루다를 구해 준 이는 광부와 노동자들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쿠데타 이후 최초의 군중 집회가 되었다. 누군가 앞장서 <인터내셔널>가를 불렀고, 처음의 작은 합창은 커다란 메아리가 되어서 울려 퍼졌다고 전한다. 그는 민요가수 빅토르 하라와 함께 민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시인이다. 칠레의 상인들은 저잣거리에서 그의 시를 줄줄 왼다고 한다. 장사치가!

 

 "서구의 언어로 씌어진 가장 위대한 초현실주의 시라는 평가를 받은 <지상에서 살기>"를 펴냈고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의 꿈을 유감없이 실현한 시인"으로 평가되듯, 미국 시인 로버트 블라이의 지적대로 프랑스 시인들의 시는 네루다의 그것보다 '생기 없고 찍찍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폴 엘뤼아르도 네루다와 교류했는데, 엘뤼아르 시의 이미지들이 다소 박제된 느낌을 주는 것이라면 네루다의 그것은 훨씬 싱싱하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문학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지향은 분명하다. 그는 로버트 블라이와의 대담(시집 게재 자료)에서 "정치적으로 칠레의 모든 작가들은 좌익"이며, "내가 보는 가난, 나는 그걸 외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또 어느 단편집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 나날의 삶 속에서, 나는 평온한 사람이었고, 법률과 지도자들과 제도(관습)의 적이었다. 나는 중산층이 싫었고, 예술가든 범죄자들이든지 간에 불안정하고 불만에 찬 사람들의 삶을 좋아했다."

이러한 그의 지향이 필경은 "아메리카여, 나는 희망 없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 같은 시를 쓰게 했으리라.


아메리카여, 나는 희망 없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

내가 가슴 앞에 칼을 쥐고 있을 때,

내가 영혼 속에 불완전한 집을 지니고 살 때,

그대의 새로운 날들 중 어떤 날이

창문으로 들어와 나를 관통할 때,

나는 나를 낳은 빛 속에 있고 또 그 속에 서 있으며,

나를 이렇게 만든 어둠 속에서 나는 살고,

그대의 긴요한 해돋이 속에서 자고 깬다:

포도처럼 순하게, 또 지독하게

설탕과  매의 운반자,

그대의 종(種)의 정액에 젖어,

그대가 물려주는 피로 양육되어.


   <시 "아메리카여, 나는 희망 없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전문>


"이미지들의 강의 범람"(로버트 블라이)이라는 시를 쓰고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평가 받기는 하지만, 그는 공소한 관념과 허무적 이론이 아니라 조국과 삶에 대한 적극적 실천을 잊지 않았다. 그는 공허한 관념의 표지로서 '책'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썼던 것이다.


내가 책을 덮을 때

나는 삶을 연다.

(……)

나는 삶 자체에서

삶을 배웠고,

단 한 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

그들과 더불어 산 거 말고는

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


      <시 "책에 부치는 노래Ⅰ"중에서>


칠레는 피노체트의 17년 철권통치를 끝내고 1990년 민정에 복귀했다. 그러나 학살자 피노체트는 여전히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그는 아옌데 정부의 경호원 살해사건으로 면책 특권이 박탈되었고 스위스 연방 법무부가 그의 은행 계좌를 조사하기 위한 칠레 정부의 사법 공조 요구를 수용했다고 한다. "역사는 우리 편"이 되기 위해선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기나긴 군부독재와 피노체트,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알려진 고단한 나라이긴 하지만 나는 네루다라는, 민중이 사랑한 위대한 시인을 가진 나라, 칠레를 폄하할 수 없다. 하긴 박정희의 18년 독재도 만만치 않다.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 박정희였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는 독재와 억압의 시대의 버려야 할 유산이어야 할 터이다.


< 2006. 2.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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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1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기없고 찍찍거리는 시들이 대부분이지 않나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린다, 끝나지 않은 노래 등을 이 리뷰 속에서 만나네요.^^

낮달 2006-02-1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은 늘 길을 다니시죠.
아마 저는 늘 길 위에 서성대는 스타일인 모양입니다. 무비님의 순발력과 도저한 주유(周遊)는 부럽기 짝이 없소이다그려. 어이하면 저 디위(경지)를 알 거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