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바디샵과 아니타 로딕, 그리고 삼성

▲더바디샵이 광고모델로 써 온 인형 '루비'
몇 해 전 일이다. 롯데호텔에서 농성중이던 노동조합에 대한 경찰의 진압작전이 정도를 넘었다. 경찰은 10여명의 임신부를 구타하는 등 무차별 폭력진압을 자행했고, 당연히 여론이 들끓었다. 여직원에 대한 상습적 성희롱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민주노조 진영에서 이끄는 롯데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어느 날, 한 후배 교사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롯데 물건밖에 없어서요……."
나는 빙그레 웃었고,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부도덕한 기업을 응징하기 위해 불매운동을 벌이자면, 아마 우리가 아무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상품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그때 아마 좀 니글니글한 표정이었지 않나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의 소박한 실천이 무의미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그것이 그 대상 기업의 매출에 털끝만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실천의 진정성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서가에 꽂힌 전여옥이나 조갑제의 책을 찢어 폐지함에 넣거나 이문열의 책을 꾸려서 반납운동에 동참하는 행위는 저명 정치인이나 언론인, 작가의 명성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권력'을 갖지 못한 시민과 독자로서 '권력'을 가진 대상의 발언이나 표현에 대한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반대와 비판의 의사 표시로 이해되는 게 마땅하다. 따라서 그것을 단순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폄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것은 정치적·문화적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시민과 독자의 주체적 판단과 비판의식을 능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또는 대기업의 부도덕성은 이 땅만이 아니라 전지구적 현상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른바 국적을 초월하는 자본의 공세는 지구화와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제3세계와 가난한 나라를 초토화하고 있다. 이 땅의 대기업들 역시 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지극히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노동과 노동자들을, 나아가서는 그들의 삶까지도 제어한다.
기업이 이윤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기능한다는 데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방식은 최소한의 법적·도덕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노동조합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주요한 기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조를 금기시하고 있는 삼성의 경우는 현대와 전근대가 뒤섞여 있는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삼성의 '노무관리‘는 정평이 나 있다. 그 방식은 철저하게 전근대적이고, 철저하게 비인간적이고 철저하게 목적관철적이다. 그들은 그들 회사 안에 '노동'이나 '노동자'나 '노동조합' 따위의 형식이나 내용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불온(?)한 노동자 감시를 위해 휴대폰 불법복제와 위치 추적 같은 탈법 행위를 기꺼이 감행(재벌과 그 돈의 힘은 너끈히 그것을 조장하고 보호한다)하는 그들 기업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의심할 나위 없이 '무노조 경영'인 것이다.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노조설립 노동자를 감시했다며 삼성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한 삼성 일반노조 위원장은 지금 감옥에 있다. 검찰이 삼성관계자를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 6일 후, 법원이 김 위원장에게 명예훼손죄로 실형 10개월을 선고한 까닭이다. 이는 어쩌면 '휴먼테크'(!) 삼성전자의 노무관리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으로 통용되는 21세기 한국판 민주주의의 미니어처일지도 모른다. '승자독식'은 '신자유주의와 경쟁'이 유일한 시장의 원리로 추앙받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지 오래인 듯하다.

▲ 더바디샵의 창업자 아니타 로딕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각성에 이른 한 무력한 노동자 개인의 삶과 생활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 버리려는 집요한 그들의 노무관리 방식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무관하게 '야만적'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온 추적과 미행과 감시의 거미줄 앞에 맨몸으로 선 그 노동자들의 얼굴에 드러난 절망과 공포의 표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더 이상 삼성의 상품을 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훨씬 더 정치적인 행위다. 그것은 소비자로서의 자기 소비에 대한 윤리적 선택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실질적으로 엄청난 힘을 소유한 생산자에게 저항하는 정치적 발언인 것이다. 그런 행위가 그 거대 공룡에게 털끝만한 상처조차 입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특정 기업의 제품을 사는 대신 경쟁적 기업의 제품을 삼으로써 우리의 윤리적 선택은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숱한 경쟁 기업, 경쟁 제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이유'만으로 어떤 상품만을 구매할 수 있다면, 그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일 터이다. 그것은 숱한 이성들 가운데서 나의 사람을 선택하는 행위나 여러 명의 후보자 가운데서 특정한 한 사람을 선택하는 총선이나 대선에서의 선택과 동질적인 행위인 까닭이다.
"정치적 실천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의무다."
"우리는 산성비, 재활용, 시골의 몰락, 녹색 소비자와 인종청소에 대해 발언해 왔다."
이건 정치인이나 시민운동가의 발언이 아니다. 이윤을 목표로 기업을 운영하는 영국의 한 화장품 기업 더바디샵(The Body Shop) 창업자 아니타 로딕((Anita Roddick)의 주장이다.(독일의 토마스 바이덴바흐 감독은 이 히피 출신의 여성 기업인의 헌신적 인생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아니타 로딕-바디샵 아줌마'를 서울환경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녀는 소비자들에게 '자사의 제품을 사는 것은 윤리적인 선택'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데 성공한 기업인이다.
"여성들이 몸에 불만을 갖도록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여성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다이어트나 여성미를 강조하는 광고에 대한 여성운동가의 발언이 아니다. 화장품을 만드는 기업인 더바디샵은 이러한 인식 아래, '당신의 몸을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이념을 실현해 왔다. 그녀의 이러한 인식은 굵직한 허리에 배가 볼록 나온 '평균 체형'의 여성 인형 '루비'를 자사의 홍보 모델로 삼고, 소비자를 오도하는 '뷰티'라는 단어는 아예 쓰지 않으며, 직원 중 여성의 비율을 80% 안팎으로 유지하고, 탁월한 보육시설이나 복지제도 등 여성적 경영 방식을 취하면서, '동물 실험 반대', '용기 재활용' 등 적극적 환경 보호에 참여하고, '자유무역과 세계화 반대'로 이어진다.




▲ 더바디샵코리아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기업 이념
반전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 등을 전개해 온 아니타 로딕은 "우리는 화장품 회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기업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직원의 3분에 1에 달하는 거대한 홍보조직을 통해 각종 정치적·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포스터를 만들고 집회 등 캠페인을 조직하곤 한다. 그녀는 "광고보다 정치·사회적 실천에 대한 우리의 홍보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로딕은 2차 세계대전 중 어머니를 통해 근검절약의 정신을 배웠고, 지역거래·재활용·재사용·리필링과 같은 '바디샵'의 환경보호 운동을 탄생시켰다. 오늘날 더바디샵의 사회 활동은 방대하다. 인도에서는 바디샵의 코끼리가 몸통에 에이즈 예방법을 광고하며 걸어다니고, 영국에서는 버스 12대가 반전 포스터 등을 붙이고 운행한다고 한다. 기업 활동을 정치적·사회적 발언과 실천의 일부로 만들어 가고 있는 더바디샵은, 아니타 로딕은 행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샵은 전세계 1,800개 매장에서 24개 국어로 운영되며, 8,400만의 고객을 가지고 있는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겨레에 실린 더바디샵의 이야기를 읽은 딸애는 자신이 쓰던 바디샵 제품을 보여주면서 들뜨고 즐거워했다. 자신의 단순 소비행위가 윤리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숨진 조각가의 배상을 두고 예술인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도시 일용직 노임과 60살 정년을 기준으로 보상하겠다는 삼성 계열 보험사의 결정과 이어진 소송 소식을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기만 하다. ('호암아트홀'이나 '삼성 리움'은 삼성이 운영하는 공연장, 미술관이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 투자와 지원이 이 땅의 문화를 한 단계 높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윤리적 도덕적 기업 운영의 본보기를 따로 들지 못하는 것은 그 방면에 과문한 탓이라 여기고 싶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모범적으로 실천해 온 유한양행이나 노사상생을 위한 경영전략으로서 뉴패러다임 모델 운영의 귀감이 된 유한킴벌리는 해마다 존경 받는 기업과 기업인의 으뜸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이건희의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삼성이나 그 총수가 쌓아올린 거대한 성이 드리운 그림자는 꼼짝없이 우리 경제의 취약점이며 전근대성의 표지라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 자주 잊어 버리는 듯하다.
더바디샵이 행복하고, 아니타 로딕이 행복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정말 행복한 것은 여러 개의 동종의 상품 중에 꼬집어 한 제품을 고르면서, 자신의 선택이 갖는 윤리적 의미를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선량한 소비자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2005. 12.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