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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평점 :
마르께스의 작품 세계에서 '고독’은 '사랑의 부재’로 읽힌다. “백년의 고독”의 호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과 그의 형 호세 아르카디오, 그리고 아마란타에 이르는 주인공들은 모두가 사랑의 부재, 즉 고독을 운명처럼 타고 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그의 소설 속 인물의 특징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변주(變奏)되는 듯하다.
아흔 살 생일을 앞둔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서글픈 언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익명의 존재인데, 그는 돈을 지불하지 않고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그 여인들 때문에 결혼할 시간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마르께스의 뭇 주인공들처럼 '결핍된 사랑’의 소유자다.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으나, 정작 사랑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몇몇 여자에게는 버려도 좋으니 돈을 받으라고 설득하는 그는, 사랑을 끊임없이 회피하는 이율배반적 존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사랑의 묘의(妙意)와 그 힘을 믿는 역설적 존재다. 50줄에 들 때까지 무려 514명에 이르는 여자들과 관계를 가진 그는 드러내놓고 동거를 하지도 않았으며, 육체와 영혼의 모험을 발설하거나 그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은 이유로 '순정한 여자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라 고백하는 것이다.
아흔 살 생일을 맞아 선택한 여자를 통해 그는, 드디어 그 사랑의 묘의에 한 발짝 다가가며, '창자까지도 태워버릴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고통’을 경험하고, '단장을 하고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사랑이 너무 늦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 아흔 살의 사랑을 믿지 않는 사나이를 사랑의 고통 속으로 던져 넣은 것은 열네 살의 숫처녀, ‘델가디나’이다.
단추 다는 일에 시달리다 몸을 파는 일조차 잊고 혼곤한 잠에 빠진 그 소녀를 바라보며 그는 '욕망에 쫓기거나 부끄러움에 방해받지 않고 잠든 여자의 몸을 응시하는 것이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쾌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한밤을 그렇게 지새운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의 데뷔를 우습게 여기는 남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뚜쟁이 여인의 힐난에 스스로를 ’무용지물‘로 시인하며, ’마침내 열세 살 때부터 나를 옭죄어 왔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사랑을 믿지 않고, 사랑을 거부해 왔던 아흔 살의 사나이는 델가디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햇빛이 환하게 비추는 거리로 나선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나의 첫 번째 세기의 희미한 수평선에 이르러 있음을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면 죽도록 선고받았던 것이다.’
책의 앞부분에 마치 헌사처럼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의 집’의 일절(“고약한 짓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여관 여주인이 노인 에구치에게 경고했다. “잠자는 여자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서도 안 되고, 그와 비슷한 어떤 짓도 해서는 안 됩니다.”)이 인용된 것은 마치 사족처럼 보인다.
소설을 읽지는 못했지만, 가와바타의 주인공이 어린 소녀와 동침하는 것은 일종의 회춘을 위한 소녀경식의 양생(養生)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르께스의 주인공은 그런 동양식 양생이 아니라, 그가 열 세 살부터 사랑 대신 추구해 왔던 섹스를 위해서 델가디나를 찾았고, 곤히 잠든 소녀의 땀을 닦아주고, 노래를 속삭이듯 불러주면서 그가 그토록 거부해 왔던 사랑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마르께스의 창녀들과 뚜쟁이 여인들은 슬프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웃들이다. 그들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 내던져진 존재로 마르께스의 소설 속에 감초처럼 삽화로 등장한다. 그들은 비록 사랑을 팔고 살지만 ‘진정한 사랑과 사랑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는 죽지 말라’고 충고하는 순박한 여인들이다.
그들에 대한 따뜻하고 슬픈 추억을 통해서 이제 일흔일곱 살의 노작가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자정을 알리는 거역할 수 없는 종소리’, ‘노인들이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은 생의 승리’, ‘열두 번의 종소리를 세면서 마지막 열두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와 같은 익숙함과 낯섧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듯한 개성적이고 독특한 문체와 함께 독자들의 진부한 일상에 밀물처럼 진주해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