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다른 방법 - 모습들 눈빛시각예술선서 7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록된 순간과 지금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 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은 내가 나인 그대로 있는 것. 다른 누구도 무엇도 아닌 그냥 나. 어떤 불협화음에도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여름날의 푸르른 잎들을 모두 떨군 뜰 안의 감나무는 만지면 부서질 듯 앙상한 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어 있다. 죽은 가지로 보이지만 그 안에 숨은 생명이 동면 중이다. 봄이 되면 연푸른 싹이 수줍게 움트고 잎이 되거나 꽃이 되고 열매까지 열린다.

나 또한 긴긴 겨울을 건너는 중일 뿐이다. 적당히 어둡고 우울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계절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각하기 시작한 말에 관한 것들이 있다. 나쁜 말들이 있다. 말 속에 숨은 실수들은 또 얼마나 가지가지인지. 나이가 들어 반 백을 지나니 말 수를 줄여야겠노라 다짐했다. 타인의 말실수를 보고 나도 혹 저렇지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실수를 줄이려면 말을 덜 하는 수밖에 없다.

 

침묵은 수많은 자기 반성과 성찰의 여백이다. 침 튀는 수다가 주는 현기증에 어지러울 때 침묵은 더 빛난다. 깊은 산사에서 스님들이 왜 묵언 수행을 하려 하는지 알 듯도 하다.

 

우리 삶에서 의미는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연결하는 데서 발견되며 전개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줄거리 없이, 펼쳐짐 없이 의미란 있을 수 없다. 사실과 정보는 저절로 의미를 이루지 못한다. 사실을 컴퓨터에 집어넣어 계산을 위한 요소로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컴퓨터에선 절대로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의미는 알려지니 것에 대한 반응일 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미와 수수께끼는 불가분의 것이며, 둘 다 시간의 흐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확실성은 순간적일 수 있고, 의심은 지속을 필요로 하며, 의미는 이 둘로부터 생겨난다. 사진에 찍힌 순간은 보는 이가 그 순간 속으로 지속을 읽어 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사진에서 의미를 찾아낼 때 우리는 이미 그 위에 과거와 현재를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p88

                                                          (말하기의 다른 방법/존 버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바보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그것은 노력과는 무관하게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때로는 농담처럼 웃어 넘기고 먼 타인의 가십처럼 안주 삼던 어린 시절의 일화, 추억 조각들이 갑자기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 중앙을 쿡쿡 찌르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아프지 않아서 멀쩡했던 게 아니었다. 아프지 않은 척 했던 거였다.

드러내고 말하기가 창피했던 모양이다. 대범하게 이해하고 용서하고 극복했다는 믿음이 있었다.


오늘처럼

햇살은 따스하고 어쩐지 훈훈한 바람이 코 끝에 오래 머무는 날에 갑자기 찾아온 그것이다.

어두운 상실의 기억들과 부재로 인한 헐벗음과 눈과 귀가 닫혀 있었던 시간들, 집이었지만 집이라고 부르기가 난감하던 때다. 무언가 애틋하고 사랑스런 기억은 한 조각도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지금, 오늘이란 얼마나 안온한지. 태어나서 살아있어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ᄄᅠᇂ게 태어나 살아왔는가 는 중요하지 않다고. 귓가에 속삭인다. 너가 너여서 너무 좋았노라고.

 



나는 목소리의 태어남을 결별이라는 말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갓난아기를 호흡하게 만드는 울음 소리는 호흡하지 않던 세계에 영원한 결별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 서약 위반이 최초의 고통이다. 태어남은 집없음이다. 혹은 실향이다. 첫울음이 그러하듯, 최초의 사라짐은 호흡 및 폐의 새로운 리듬 –폐의 리듬에 앞서는 심장의 리듬과 언제 까지나 협력해야만 한다을 작동시킨다. 버림받음은 언제나 기억의 바탕을 이룬다. (은밀한 생/파스칼 키냐르)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도처럼 내게서 차분한 체념과 적요를 빼앗으려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은은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내 곁을 맴돌고 내 뒤를 따르는,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대체 누굽니까?

신도 없는데 이런 나쁜 친절은 어디서 온 겁니까?
(173페이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느리게 읽고 싶은 읽고 읽는 소설집이다.
글들이 달콤하달지.. 분명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인데도 단어와 문장이 노래처럼 들린다. 깊이 들여다보고 천천히 따라 걸어가고싶은 이런 글이라니.
그것은 마치 겨울이 다 갔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내리는 눈발처럼 생경했다.
첫눈의 기억처럼 회색의 짙은 하늘에서 휘날리는 눈은 어쩌면 올 겨울의 마지막 눈이 될 것이다.
이런 날 읽는 소설이라서 더 감성적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P33(봄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몰입감이 강한 소설은 일상을 무너뜨린다. 밥을 먹으며 잠을 자며 걷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끝까지 읽지 못한 소설로 달려간다. 그가 혹은 그녀가 왜, 그랬을지 곰곰히 되세기며 어떤 단어나 문장을 음미한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포식자.

 

마치 불가항력의 사고나 우연처럼 유진은 그렇게 태어난 아이였다. 

뱃속의 자그마한 존재였을 때부터 움직임도, 욕구도 없었던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 그렇게 엄마의 눈 밖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숨어있던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궤도를 이탈하고 남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무탈하고 무해한 인간으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동생과 공모하고 악의 근원지를 말살하기 위한 약물을 실험실의 생쥐에게처럼 아이에게 먹인다. 약의 부작용에 고통받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처절한 번뇌와 몸부림은 가엾기도 하지만 때론 사뭇 사악한 폭력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유진의 항변과 폭력성이 타당하다 느껴지기도 했다. 유진의 입장을 이해하듯 변명하는 작가의 설명에 몰입되기도 했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미끄러지듯 처절한 비극을 암시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유진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유진은 포식자로 태어났다. 피냄새를 맡으며 징조가 시작되고 잠재된 악의 본능이 깨어난다. 선악도 기쁨도 슬픔도 없다. 약물로 봉인된 세계가 우연찮게 열리고 그 쾌락에 취하여 폭주하는 과정은 음악이나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보이고 들렸다. 이야기는 이야기일뿐 결코 현실이 아니라고 믿으니까.

 

예전 어떤 범죄 프로파일러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이코패스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었다.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이었던 '덱스터'라는 외국소설에서도 주변사람들은 누구도 그가 숨긴 본능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 같은 사이코패스들은 본능적으로 냄새 맡고 알아챘다. 덱스터는 사이코패스를 찾아내 죽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일상을 살아갔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유진의 각성은 필요불가결이었을까.

약을 끊지 않았다면 계속 평범한 듯 살아갔을까. 엄마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우리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악을 대하는 선한 사람들의 판단은 늘 옳은 것일까. 정말 선이 존재할까.

 

소설 속 엄마와 이모라는 어른들은 결코 선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악과 선의 그 중간 쯤에 걸쳐진 다수의 인간들이라면 모를까. 신이 있다면 답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선을 선이게 하기 위한 악이라면 유진을 벌할 수 없으니까.          

태양이 은빛으로 탔다. 5월의 여울 같은 하늘 아래로 띠구름이 졸졸 흘러갔다. 성당 안뜰을 에워싼 설유화 꽃가지들 속에선 휘파람새가 울었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