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감이 강한 소설은 일상을 무너뜨린다. 밥을 먹으며 잠을 자며 걷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끝까지 읽지 못한 소설로 달려간다. 그가 혹은 그녀가 왜, 그랬을지 곰곰히 되세기며 어떤 단어나 문장을 음미한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포식자.

 

마치 불가항력의 사고나 우연처럼 유진은 그렇게 태어난 아이였다. 

뱃속의 자그마한 존재였을 때부터 움직임도, 욕구도 없었던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 그렇게 엄마의 눈 밖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숨어있던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궤도를 이탈하고 남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무탈하고 무해한 인간으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동생과 공모하고 악의 근원지를 말살하기 위한 약물을 실험실의 생쥐에게처럼 아이에게 먹인다. 약의 부작용에 고통받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처절한 번뇌와 몸부림은 가엾기도 하지만 때론 사뭇 사악한 폭력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유진의 항변과 폭력성이 타당하다 느껴지기도 했다. 유진의 입장을 이해하듯 변명하는 작가의 설명에 몰입되기도 했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미끄러지듯 처절한 비극을 암시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유진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유진은 포식자로 태어났다. 피냄새를 맡으며 징조가 시작되고 잠재된 악의 본능이 깨어난다. 선악도 기쁨도 슬픔도 없다. 약물로 봉인된 세계가 우연찮게 열리고 그 쾌락에 취하여 폭주하는 과정은 음악이나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보이고 들렸다. 이야기는 이야기일뿐 결코 현실이 아니라고 믿으니까.

 

예전 어떤 범죄 프로파일러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이코패스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었다.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이었던 '덱스터'라는 외국소설에서도 주변사람들은 누구도 그가 숨긴 본능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 같은 사이코패스들은 본능적으로 냄새 맡고 알아챘다. 덱스터는 사이코패스를 찾아내 죽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일상을 살아갔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유진의 각성은 필요불가결이었을까.

약을 끊지 않았다면 계속 평범한 듯 살아갔을까. 엄마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우리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악을 대하는 선한 사람들의 판단은 늘 옳은 것일까. 정말 선이 존재할까.

 

소설 속 엄마와 이모라는 어른들은 결코 선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악과 선의 그 중간 쯤에 걸쳐진 다수의 인간들이라면 모를까. 신이 있다면 답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선을 선이게 하기 위한 악이라면 유진을 벌할 수 없으니까.          

태양이 은빛으로 탔다. 5월의 여울 같은 하늘 아래로 띠구름이 졸졸 흘러갔다. 성당 안뜰을 에워싼 설유화 꽃가지들 속에선 휘파람새가 울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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