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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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처럼 내게서 차분한 체념과 적요를 빼앗으려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은은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내 곁을 맴돌고 내 뒤를 따르는,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대체 누굽니까?

신도 없는데 이런 나쁜 친절은 어디서 온 겁니까?
(173페이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느리게 읽고 싶은 읽고 읽는 소설집이다.
글들이 달콤하달지.. 분명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인데도 단어와 문장이 노래처럼 들린다. 깊이 들여다보고 천천히 따라 걸어가고싶은 이런 글이라니.
그것은 마치 겨울이 다 갔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내리는 눈발처럼 생경했다.
첫눈의 기억처럼 회색의 짙은 하늘에서 휘날리는 눈은 어쩌면 올 겨울의 마지막 눈이 될 것이다.
이런 날 읽는 소설이라서 더 감성적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P33(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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