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것은 내가 나인 그대로 있는 것. 다른 누구도 무엇도 아닌 그냥 나. 어떤 불협화음에도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여름날의 푸르른 잎들을 모두 떨군 뜰 안의 감나무는 만지면 부서질 듯 앙상한 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어 있다. 죽은 가지로 보이지만 그 안에 숨은 생명이 동면 중이다. 봄이 되면 연푸른 싹이 수줍게 움트고 잎이 되거나 꽃이 되고 열매까지 열린다.

나 또한 긴긴 겨울을 건너는 중일 뿐이다. 적당히 어둡고 우울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계절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각하기 시작한 말에 관한 것들이 있다. 나쁜 말들이 있다. 말 속에 숨은 실수들은 또 얼마나 가지가지인지. 나이가 들어 반 백을 지나니 말 수를 줄여야겠노라 다짐했다. 타인의 말실수를 보고 나도 혹 저렇지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실수를 줄이려면 말을 덜 하는 수밖에 없다.

 

침묵은 수많은 자기 반성과 성찰의 여백이다. 침 튀는 수다가 주는 현기증에 어지러울 때 침묵은 더 빛난다. 깊은 산사에서 스님들이 왜 묵언 수행을 하려 하는지 알 듯도 하다.

 

우리 삶에서 의미는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연결하는 데서 발견되며 전개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줄거리 없이, 펼쳐짐 없이 의미란 있을 수 없다. 사실과 정보는 저절로 의미를 이루지 못한다. 사실을 컴퓨터에 집어넣어 계산을 위한 요소로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컴퓨터에선 절대로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의미는 알려지니 것에 대한 반응일 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미와 수수께끼는 불가분의 것이며, 둘 다 시간의 흐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확실성은 순간적일 수 있고, 의심은 지속을 필요로 하며, 의미는 이 둘로부터 생겨난다. 사진에 찍힌 순간은 보는 이가 그 순간 속으로 지속을 읽어 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사진에서 의미를 찾아낼 때 우리는 이미 그 위에 과거와 현재를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p88

                                                          (말하기의 다른 방법/존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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