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숲 1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8년 6월
평점 :
합본절판


오랜 만에 만나는 글이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날뻔했습니다. 게으른 탓에 마음이 있어도 손이 닿지않았는데 변명을 접고 진심으로 반가움을 금할 길이 없네요.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동경과 희망 대신에 직접 걸음 걸음을 옮기고 어루만지고 시선 가득 담으신 여행을 따라 참 많이 보고 배우고 느꼈습니다. 기억에 남아있던 그대로 온전히 아름다운 마음들이 새삼 따뜻하게 가슴사이로 흐릅니다.

거기가 어디건 사람 사는 곳이면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고 승리와 패배가 있으며 죽음과 삶이 나란히 한다는 걸, 특유의 잔잔하고 나직한 음성으로 들려주시어 그 감동이 배가 되더군요.

세상살이는 나와 타자의 절묘한 조화로움 속에 비로서 완전해진다는 이기심을 버리라 오만이 아닌 겸손을 그리고 용서를 구하라는 소리 죽인 음성이 귓가에 맴도는 듯 읽히는 글들입니다.

매를 맞지만 전혀 아프지 않은 오히려 슬픔이 느껴지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명징한 사상이 세파에 찌들어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줍니다. 이렇게 살라 말해줍니다.

어찌보면 구도인의 설법과도 같아서 한마디 한단어가 못내 가슴을 칩니다. 더불어 숲이 되겠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늘 깨어있겠습니다. 그리고 늘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꿈꿉니다. 세상의 잠든 땅에서 무궁한 역사를 만나는, 인간의 위대함을 인간의 어리석음을 만나는, 반성하며 진보하는 이런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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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스 행복한 육아 15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주정일.이원영 옮김 / 샘터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0년도 훨씬 전에 처음 이 책을 접한 후, 끊임없이 반복해서 읽도록 만드는 슬픔과 감동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이다. 알 수 없는 아이 딥스의 불행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날 때, 그것이 세상 유일의 엄마와 아빠에게서 받은 상처라는 걸 알았을 때 충격이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받는 대개의 정신적 상처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크다는 것도 아울러 깨달았다.

딥스처럼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닥치면 마음의 문을 꼭 닫아거는 예는 물론 특수하다. 보통 우리는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이따금 꺼내어 들여다보고 가슴 아파할 뿐이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용기가 필요하거나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머뭇거리게 할 수도 있는 유예된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외적이든 내적이든 듣고 보는 것도 고통이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의 아이러니처럼 상처를 품고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된 사람들이 결국 제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

내게는 그런 아픔이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있다면 스스로 치유법을 찾아보고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어른, 부모노릇을 해야겠다. 딥스는 치유받았다. 그리고 성장한다. 놀랍도록 영특하고 맑은 아이로.

'세상에는 돈이나 힘의 과시보다 훨씬 중요하고, 복수와 처벌, 고통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교육자로서 무지와 편견과 편협의 문을 열어 주셔야만 합니다.' -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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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5-03-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읽어 봐야 겠네요 ㅋ
이번에 샘터에서 새로 나온 제이디도 괜찮더라구요 ㅋ
 
달의 아이 1 - 애장판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무엇보다 이 만화의 애장판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작가의 열렬한 팬이며 몇 번을 거듭 읽어도 새롭고 놀라운 상상력으로 꿈을 꾸게 하는 마력이 깃든 만화가 새옷을 갈아입은 모습은 정말 기쁜 소식이죠. 애장판이라고 해서 내용이나 그림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얗고 반듯한 종이에 두꺼워진 분량과 푸른빛을 띠는 표지가 인상적이랄까요. 노랗게 변색된 오래전의 책을 접했던 분들이라면 손뼉을 치며 환호할테죠.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유일하게 비극으로 끝이나는 사랑얘기에 눈물을 펑펑 쏟은 기억이 있을 겁니다. <인어공주>라는 동화죠. 네, 왕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한 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말지요. 왕자님은 이웃나라 공주님과 결혼식을 올리고요. 참으로 은혜도 모르고 상상력도 부족한 모자란 왕자라고 욕도 어지간히 했었는데. 금기시된 인간과의 사랑에 빠진 인어족 벤자민의 좌충우돌 모험과 기행과 함께 발레리노 아트의 퉁명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인 <달의 아이>는 지구의 오염된 환경과 인간의 과욕이 부르는 파괴와 멸망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띄우는 가볍지 않은 만화입니다. 짧지않은 내용에 참으로 다양한 주제를 담아서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죠.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참혹함을 묵시록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장면에서는 만화라는 장르가 가진 무한함을 새삼 실감했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아트가 칼끝을 자신의 심장으로 향한것은 구태의연한 동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죠. 이 만화의 단점은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거죠.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로 머릿속은 포화상태에 이르고요. 오래된 기억을 더듬자니 온전치 못한 부분들이 있네요. 내일 당장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기에 가장 빠른 특효약이기 때문이죠. 삭막하고 건조한 일상을 촉촉하게 적시는 데에는 만화보다 근사한 세상은 없다고 장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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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 톨드 미 Papa told me 21
하루노 나나에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절제되고 균형잡힌 펜선이 눈을 쉬어가게 하는 우아하면서도 귀여운 고전적인 만화라고 하면 적당할까?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로 꾸준한 팬이 되어 틈틈히 순서에 관계없이 아무권이나 빼어들고 읽는 만화다. 작가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지만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도 있다. 아내가 죽고 어린 딸을 키우는 작가 아빠. 조금의 흐트러짐이나 더러움이 없는 깔끔한 집에서 그야말로 쿨하게 살림을 도맡는 미남 아빠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을까.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치세라는 꼬마는 여느 아이가 아니다. 왕족이나 귀족의 영애같이 근사한 외모에 똑부러지는 성격, 때로는 정의감에 불타오르고 아빠도 못말리는 엉뚱한 상상력의 소유자인가 하면 지나치게 영악한 듯 싶다가도 천사인냥 사랑스럽다. 글 쓰고 살림하느라 시간도 없을 것 같지만 바라보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너무도 사랑스런 치세 때문에 아빠 마토바는 어쩌면 영영 홀아비로 남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 지켜지는 것이 이 만화의 미덕이라면 어쩔수 없지만 홀로 앉아있는 아빠의 모습은 가끔 외롭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꿈꾸는 것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세상이 이 만화만 같으라는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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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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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화를 즐기기 위해 소설을 선택했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세 여인들이 6월의 눈부시게 화창한 하루 속으로 걸어가는 과정이 독특한 방식으로 교차하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읽는 묘미가 즐거웠다.

버지니아 울프는 커다란 돌을 주머니에 넣고 강물 속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막 댈러웨이부인이라는 소설을 끝냈다. 뉴욕, 클라리사 보건은 남자친구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는 파티를 준비한다. 그녀는 꽃을 샀다. 그리고 어린 아들 리치와 함께 남편의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브라운부인이 있다. 어딘가 산만하고 피곤한 얼굴로 여기 아닌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으로. 어린 리치에게 엄마의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엇이 울프부인을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무엇이 죽음만이 최선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했을까. 그녀에게 남편 레너드 울프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의문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브라운부인의 일탈과 회귀, 댈러웨이부인으로 불리는 클라리사와 리차드의 만남과 사랑, 이별로 이어지는 과정은 나른한 듯 치열하다. 그들은 소설속의 인물이고 나라는 독자에게 관찰당한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의 펜대는 그들의 삶은 결정짓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죽었지만 실제했던 인물이고 브라운부인과 클라리사는 살아있지만 실제하지않는다. 우리 생의 이면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고 소설이 말한다. 언제라도 뒤집어질 수 있는 게 우리의 생이라고 한다. 삶을 선택하듯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안다.

6월, 아름다운 날. 각각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여자들이 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생을 선택한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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