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러 서점에 갔는데, 사려던 책은 안사고, 책만 훔쳐 읽었다. 어떤 얘기인가 궁금했을 뿐인데, 조금만 더 하다가 보니, 그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버렸다. 이걸 어쩌나 생각하다가, 원래 사려던 책도 아니니 뭘 어째, 하면서 슬쩍 제자리로 돌려놓고, 가방이 무겁다는 핑계를 대며, 돌아 나왔다. 노점에서 파는 귤이 맛나 보여서, 헐렁한 천 가방이 축 늘어질 정도로 욕심껏 샀더니, 가방이 무겁기는 정말 무거웠다. 낑낑대며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대나무 소쿠리에 소복하게 귤을 담아놓으니, 기분이 좋다. 한동안 몸이 아팠더니 귤만 보면 환장을 한다. 입맛이 없어도 귤, 열이 올라도 귤, 목이 말라도 주구장창 귤만 찾았다.
훔쳐 읽은 책이라도 책은 책. 먼 일본,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에서 있었던 일이란다. 섣달 그믐날, 가게 문을 닫으려는 찰나에 찾아온 손님들에 관한 얘기다. 세 사람의 손님은 몹시도 어렵게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해도 되는지를 묻고, 이에 주인은 흔쾌히 그들이 모르게 우동사리 한 덩어리 반을 삶아내어 놓는다. 그로부터 매해 섣달 그믐날이 오면 어린자식들과 어머니는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고, 그들이 나가는 등 뒤로 북해정의 주인내외는 감사의 인사와 새해 인사를 건넨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연은, 아버지에게 일어나 사고와 죽음으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으며, 그 빚을 갚기 위해 가족은 희생을 감수하며 묵묵히 견디어 온 것이다. 북해정의 우동 한 그릇은 그들에게 힘을 내어 살라는 용기이며 희망이었다는 작문을 지어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는 어린 아들의 이야기에 어머니도, 우동집 주인도 눈시울을 붉힌다. 북해정의 그 미담은 해를 거듭하며 널리 알려지고,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장성하여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의 청년이 된 섣달 그믐날의 손님이 다시 찾아오고, 우동 3인분을 주문하며 인사를 건넨다. 가난하고 절망스러웠던 시절, 말없이 푸짐한 우동 한 그릇을 삶아 내 주고, 밝고 힘찬 목소리로 새해 인사를 건네는 북해정 주인내외의 작은 배려가 이룬 큰 기적이다.
가난에 관한 얘기는 늘 가슴 언저리를 저미게 한다. 생각해보면 가난은 사소한 불편의 연속이고, 조금은 부끄러운 기억들과 쓸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난 때문에 절망하여 울어본 적도 없거니와 가난하다 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난으로 모욕감을 당한 적도 없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한 대상이 없었거나 있었어도 무심하였나보다. 진짜 깊은 불행과 슬픔을 느낀 것은 사람사이의 불화나 가족간의 상처를 통해서였고, 혹은 인간다움을 찾을 수 없는 극도로 싫은 사람을 만났거나, 거기서 비롯된 일들이 내 이해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