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날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싫고, 사람 만나는 것은 더군다나 귀찮아 휴대폰의 벨소리가 지겹게 울리도록 내버려두는 그런 날이 한 달에 두어 번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정말, 그 자리에서 삶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지고 싶다는 갈망으로 무심코 책상 위를 정리한다. 그리고 나는 아무 미련도 없이, 원망도 없이 기꺼이 가노라고, 부탁이니 흔쾌히 잘 가거라는 인사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소멸하기를 원하노라고 상상의 유서도 만든다.
오늘 한 여배우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말들이 많다. 왜 죽었을까, 독하다, 타고난 명이 짧은 것뿐이다, 등등....... 추측 가능한 가슴 아픈 얘기부터 그녀의 천성, 가족관계, 지인들에 대한 소소하고도 잡다한 글들이 여기저기에서 읽힌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성격과 보편적으로 이른 나이에 배우로서 정점에 올랐지만 혼탁한 연예계 언저리에서 순수와 이상을 지키며 우뚝 서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타협도 필요하고 거짓말과 내숭, 원치 않는 선택도 해야 했을 터이다. 아무리 치명적인 실수와 오점도 살아오는 과정에서 얻은 이력이라는 걸 깨닫기엔 너무 어린 나이, 수많은 시행착오로 울고불고 피를 토하듯 후회하는 과정도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였더라면.
삶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나라는 자의식은 오만이다. 내 마음의 문은 결코 잠기지 않고 밖을 향해 열려있다. 때때로 살짝 문을 찌그리고 구석에 앉아 울 일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 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내 삶은 남아있는 날들에 대한 기대와 미련 그리고 내가 아닌 남겨질 사람들에 관한 염려로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꼬박꼬박 나이를 먹어갈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