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 사이, 감나무 잎 사이사이, 벽의 틈새, 처마가 있는 모든 공간마다 거미는 집을 짓는다. 하룻밤 아니 한나절, 뚝딱 하는 순간일런지도. 거미도 종족간의 혹은 생김이 다른 놈과의 영역다툼이나 파벌 전쟁을 치룰까. 거미줄에 앉아있는 우아한 여왕거미도 어느 음습한 구석엔가 저를 닮은 새끼를 낳아 퍼트리겠지? 후미진 구석구석 벽을 따라서 팔랑개비처럼 달음박질 하는 쪼끄만 녀석들이 그 증거다. 세상구경이 즐거운 건지, 겁을 집어먹은 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주 잽싸다. 꼬랑지에 보이지 않는 줄 하나는 매달린 것 같은데, 도통 불안한 움직임을 보노라면 마구 괴롭혀주고 싶다. 약육강식의 세계로 온 걸 환영한다. 어서어서 자라서 근사한 거미줄을 뽑아 환상적인 집을 짓기를.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이 변덕의 널을 뛰는 순간 에프 킬라나 빗자루의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거. 부디 만고에 후덕한 주인장을 만나라.  

거미는 허공에다 집을 짓는다. 내장을 꺼내 집을 짓는다. 거꾸로 매달려 집을 짓는다. 짐이 무거우면 벗어 던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벗어 던지면 삶이 없다. 누가 당신에게 짐을 짊어주었는가. 스스로 짊어진 짐이다. 자기가 감당할 만큼 지면 된다. 자기 몸에 알맞는 지게를 선택해서 알맞는 짐을 져야 한다. 오래 걸으려면 멜빵을, 굳건한 어깨와 강인한 장딴지가 필요하다. 당신이 짊어진 짐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거미는 까마득한 허공에 거꾸로 매달려 집을 짓는다.   (유용주,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42쪽~43쪽) 

지금 몸은 전쟁 중이다. 가벼운 몸살이 길어지면 깊은 병을 의심한다. 더위 탓으로 돌렸는데 아닌 듯 하다. 그래서 불안하다. 어떤 병원을 가야할지를 이미 결정했지만 미룰수 있다면 미루고 싶다. 그 와중에 읽는 유용주 시인의 산문은 어떤 기억을 환기시킨다. 잊고 있었던 기억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시인은 자신의 삶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부어라 퍼라 노래까지 부르면서. 대단한 낙천가다. 놀라운 생존력이다. 그의 글은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비밀의 언어처럼 차마 맨정신으로 바라볼 수 없는 기억을 들려준다. 이렇게 살았노라. 죽지않고 살았노라. 그러니 당신들도 살아라.  

긴 동지섣달 밤에는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단위로 아내와 아이의 코앞에 귀를 대고 확인하면서 새벽을 맞이했다. 나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 서러울 것도 없지만 저 여리고 순한 보살들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연탄가스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105쪽)

바뀌벌레는 안이건 밖이건 발견 즉시 가차없이 후려치는 해충이다. 개미는 집 안만 아니라면 마당 어느 곳이건 살건 말건 나름 귀여운 곤충이다. 그런데 거미는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번이나 고민 한다. 집 밖의 거미줄도 걷어 치워야 할지 내버려둘지 고민 한다. 개미는 검지 손가락으로 꾹 눌러 잡아 죽이고도 전혀 미안하지 않는데, 바퀴벌레는 죽일수록 시원하고 통쾌한데, 왠지 이 거미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영 마땅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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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지 않는다. 그냥 만나진다. 연민과 동시에 잔잔한 감동을 건네는 다니엘 타멧과의 소중하고 긴 만남이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그가 말하고 들려주는 한순간도 쉽게 흘러 가거나 평범하지 않았던 삶들을 뭐라 말할까. 이해나 납득, 혹은 아주 작은 긍정의 표시도 조심스럽다. 그져 어렵고, 고되지만 조금은 신비한 삶일 것 같다는 정도? 

타멧씨, 만나서 기뻤어요. 가급적이면 행복하기를. 보통의 거북이보다도 훨씬 느리게 걷는, 특별한 거북이지만 당신이 다다른 곳에서 기다리는 인생은 정말 멋져요. 그렇게 앞으로도 당신을 막아서는 모든 벽을 타고, 기고, 넘어 서기를.  

다니엘 타멧의 여정을 따라 걸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상상도 못할 그런 세상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돌아볼 것이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다니엘 같았던 아이, 어른을. 그리고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이다. 왜 좀 더 알려하지 않았을까. 왜 좀 더  가까이 가지 않았을까. 왜 손을 내밀어 주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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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애장판 1~8(완결) 세트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년에 한두번은 반드시 챙겨 보는 만화가 있다. <기생수>도 그 중의 하나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 흐르는 땀을 선풍기 바람 앞에서 식히며 읽어 치우는 <기생수>의 묘미는 흥미진진은 기본이고 오싹, 살벌, 감동의 도가니탕이다. 처음 읽는 것도 아니고, 수년에 걸쳐 몇 번이나 읽는 만화에 대해 매번 이다지도 진지하게 열광하는 것은 왜일까.

우주로부터 정체모를 씨앗에서 꼬물거리는 지렁이를 닮은 생물체가 태어나 무방비 상태로 잠자는 인간을 습격하는 설정은 마치 SF 영화 같다. 전혀 귀엽지 않게 생긴 녀석들은 곧장 인간의 뇌를 향해 침투한다. 유전자 속에 잠재된 명령어에 따른 이 침투작전의 성공은 인간의 기생수화이다. 인간의 겉모습을 유지하지만 인간을 먹어야만 생존이 가능한 공포스런 괴물의 탄생이다. 침투한 인간의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사지를 갈갈이 찢어발기듯 먹어치우고 다음 목표의 먹이를 찾아가는 가공할 생물들의 존재는 곧 정체불명의 엽기적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 등등의 이름표를 달고 표면 위로 부상한다. 이 만화의 히어로 신이치가 없었다면 그렇게 대책없이 세상은 무법지대가 되어 시체와 피로 범벅이 될 듯 하다. 

이어폰을 끼고 잠든 신이를 노린 기생수는 불행히도 머릿속으로도, 콧구멍 속으로도 침입하지 못하고 신이치의 오른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실패했다고 분개하는 기생수와 달리 오른손에 들어간 황당한 생물의 정체를 몰라 우왕좌왕 하는 신이치의 일상은 적당히 유하고 여유롭고 무료했다. 그의 오른팔을 점령하고 소유자라 칭하며 더불어 살자고 제안하는 오른쪽이의 존재와 만나기 전까지는.   

어찌보면 오른쪽이와 신이치는 닮은꼴이다. 적당히 시니컬하고 이기적이고 방관하는 기질이 처음엔 오른쪽이의 전형이라 생각되지만 공생관계인 신이치의 드러나지 않았던 일면이기도 한 것이다. 기생수들의 가공할 살인과 식인, 위협에 점차 노출되며 괴이한 감각과 능력을 발휘하여 방관자, 구경꾼으로서 흔적을 감추는 사이 발생한 학생으로 위장한 A의 폭주 사건에도 흔들림이 없던 신이치가 전면에 나서는 계기는 당연하게도 살해당한 어머니, 즉 어머니의 몸을 가진 기생수로부터 심장을 공격당해 일시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면서다. 어머니는 신이치의 우주다. 성장하는 내내 사랑과 희생으로 점철된 곧고 헌신적인 애정을 아낌없이 주었던 존재로서 어머니를 빼앗아간 기생수는 신이치가 반드시 처치, 죽여야만 하는 악이요 적인 것이다.

오른쪽이는 신이치의 단순한 일부였던 처음과 달리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간다. 죽어가는 신이치를 살리는 과정에서 조각난 오른쪽이의 일부는 신이치의 혈관으로 전신에 흩어진다. 그 영향으로 신이치의 체력, 시력, 청력은 엄청나게 업그레이드 된다. 인간 신이치는 기생수 오른쪽이의 냉정하고 무심한 판단력까지도 공유한다. 인간과 기생수의 중간이라는, 완전한 인간과 완전한 기생수가 보기에도 특별한, 희귀한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상승이 된 것이다. 영웅의 탄생이다.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의 비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히어로의 이야기다.

영웅은 고독하다. 세상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고뇌하며 언제라도 목숨 따위는 가차없이 던질 각오로 싸워야 한다. 대중 앞에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홀로 외롭게 싸움을 준비하며 눈물 흘리는 영웅이라니 감동적이기 않은가. 신이치는 그런 영웅이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적, 고토와의 대적에서 오른쪽이를 잃고 슬퍼하는 신이치, 오른팔이 잘린 불구의 몸으로 다시 악을 찾아 나서는 신이치, 고토의 일부로 흡수된 오른쪽이와의 재회, 그리고 고토의 소멸에 이르는 과정은 처절하다.

기생수의 존재 이유. 오염되고 파괴된 환경과 과잉된 인구로 인해 멸망의 길로 가는 지구를 구원하라는 절대자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역설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아기를 품에 안고 죽어간 타무라의 미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절대적인 모정? 생명의 소중함? 그녀의 희생은 단지 신이치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굴레에서 구원하기 위한 도구였을까. 연쇄살인마 인간의 무자비하고도 잔혹한 모습 앞에 나타난 오른쪽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웅의 재탄생인가.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이 나서 전에 읽은 그 책이 맞은 건가 싶은 특별하고도 특별한 만화다. 여름이 이렇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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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거나 잊힐까봐 전에 핸폰으로 찍은 올 여름의 낙들.



연과 개구리밥 일명 부평초. 얘네들은 어느날 갑자기 하나씩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해서 지금은 그릇 가득이다.



 

 

 

 

 

 

부레옥잠과 개구리밥. 분양을 해도해도 쑥쑥 자라 금새 그릇을 채운다. 그런데 다른 집으로 분가한 녀석들은 영 시원찮다. 그릇의 크기와 흙과 물의 양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작년. 화분에 키울 땐 딱 두송이 피었다. 올핸, 땅 기운을 받아 한꺼번에 두 개, 세 개씩 마구 꽃대가 올라온다. 공간에 따라 무지막지하게 자랄 수 있는 꽃이다. 엔젤 트럼펫 일명 다투라.



 

 

 

 

 

 

이름을 모른다. 씨를 준 분도 모른다고 하고. 



무슨 꽃이 필까. 기대기대 하였더니. 저게 끝이란다. 위에서 보면 잎에 흰색의 테두리가 있어 보기에는 좋다. 자잘한 흰꽃은 너무 작아 한참을 찾아야 한다. 역시 이름은 모르겠다.  

 



 

 

 

 

 

 

 

이웃에서 조금씩 나눠 준 것들. 공작, 게발선인장을 비롯 다육식물인 화월 등. 선인장이 관리가 쉽다고는 하나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젤 어렵다. 목이 마른지, 고픈지, 아픈지 뿌리를 보기 전엔 알 수가 없으니. 도통 말이 없는 무심한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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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7-2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젤 트럼펫 옆에 있는 붉은꽃은 사진이 작아서 확인이 잘 안되네요.
유홍초 종류인것 같은데 그 옆에 있는 잎을 봐선 '새깃 유홍초' 같기도 하고
아님 '둥근잎 유홍초'일 것도 같고. 잎이 어떤 모양이에요?

아래 흰 태두리가 있고 작은 꽃은 '설악초'입니다. 꽃이 피면서 점점 잎에 흰 테두리가 커집니다.
나중에는 가운데만 초록선이 남고 잎 전체가 하얗게 되죠. 원산지는 미국이고 독성이 있으므로 만지심 안되요.

겨울 2008-08-0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악초였군요. 볼수록 신기한 화초입니다. 하긴 지금 제겐 모든 꽃과 풀이 다 신기하기만 합니다. 오랜 세월 보아왔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에게 비로서 이름을 불러주는 감격이랄까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니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싯구절처럼요.

잎이 둥근 나팔꽃을 닮은 꽃은 거리에 조경용으로 심는 거라는데요. 꽃색이 보라, 자주, 분홍, 흰색 등등 다양하고 때로는 흰색과 자주, 흰색과 보라, 등등 마구 섞인 꽃도 있어요. 늦은 인사지만 고맙습니다.^^
 

 

장맛비가 지나간 정원은 초토화가 된다. 쓰러지고 엎어지고 널브러진 꽃나무를 서둘러 일으켜 세우고 지지대를 만들어주고 쓸려간 흙을 돋아주느라 비가 쉬어가는 잠깐의 막간이 금쪽같다. 그놈의 개구리밥이 뭐라고. 행여 떠내려 갈 새라 연과 부레옥잠을 키우는 고무다라의 물도 연신 퍼내야 한다. 꽃대 하나가 뚝 부러져나간 백일홍이 내내 눈에 밟힌다. 소국과 분꽃은 노끈을 찾아 묶어준다. 화분에 심은 국화는 비가 들이치지 않은 곳으로 들인다.  비에 약한 선인장들과 제라늄, 마지나타와 행운목은 이미 안전한  곳으로 대피 중이다. 목련나무는 으름덩굴이 무거운지 비바람에 기울어졌다. 무화과나무도 왼쪽으로 심하게 쏠렸다. 또, 비가 내린다. 순식간에 굵은 빗방울이 후두두 쏟아진다. 해가 그립다.




식물을 키우는 건 아이 돌보는 일에 버금간다. 깊은 밤 빗소리에 깨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녀석들이 궁금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이 진짜 인줄 알았다. 식물과의 교감은 낯설고도 신기한 전혀 새로운 경험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듯, 첫 만남, 설렘, 지속적인 관심, 쌓이는 정으로 맺는 결실, 꽃이나 열매의 수확. 그리고 씨를 받는 내년의 기약. 여러해살이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년생들이 더 예쁜 이유는 시작과 끝이 분명해서다.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게 긴장시키는 은근한 매력 같은 게 있다. 강낭콩을 까다가 싹이 튼 녀석이 있어 화초고추 화분 구석에 묻었는데 하루 만에 잎이 나더니 잭의 콩나무처럼 쑥쑥 자란다. 옷걸이를 반듯하게 펴서 기둥을 만들어줬더니 곧장 몸을 말아 타기 시작한다. 신기해서 보고 또 보며 웃는다. 얘좀 보라고 자랑까지 한다. 팔불출.




이제부턴 비가 좋다는 입버릇은 쏙 들어갈 듯. 더불어 비오는 날 떨던 궁상도 사라질까. 사람의 취향이나 습성, 관계가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지 체험하는 중이다. 이웃으로부터 사랑초와 스파디필룸을 나눠 받아, 오늘도 새 화분을 샀다. 시작은, 작은 땅에 몇 가지 씨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당에는 올망졸망한 화분들이 일렬로 서기 시작했다. 타인의 정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바라보는 것도 새로 들인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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