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mila > 랄프 왈도 에머슨의 '성공'에 대한 정의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총명한 사람들의 존경을,
아이들의 애정을 받는 것.
솔직한 비평가들의 칭찬을 받는 것.
거짓 친구들의 배신을 참고 견디는 것.

미를 감상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견하는 것.
그대가 있었기에 한 생명이라도
좀더 수월하게 숨을 쉬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런 것이 성공이다.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은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보다 열 배는 고통스럽다. 삶이 가벼운 것은 생각의 무게 탓이다. 번뇌를 끊은 수도승은 세상밖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아무리 명징한 사고라도 세속의 삶과의 단절로 얻은 것은 자아도취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화내고, 소리치고, 울고, 웃으며 숨가쁘게 사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빨간 얼굴로 급하게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 고여있거나 정지된 것을 참지못하고 뛰듯이 걷는 그녀야말로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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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삶 2004-01-18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머슨의 이 시는 저도 가장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랍니다.
http://hibn.com.ne.kr/poem8에 원문과 대조해 놓았으니 참고해 주세요.
 

첫 권을 펼쳐놓고 읽기가 참 망설여졌던 만화다. 가벼운 오락용으로 읽기엔 페이지수와 글자수가 장난이 아닌 듯 해서 그저 열심히 주변의 반응만 훔쳤다.

이 만화 어떤가요? 재미있나요? 딱딱하지 않나요?

생각외로 반응들은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 쌓아놓고 읽히는 만화는 아니지만 지적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입을 모았다.

제로. 국적, 신분, 본명을 알 수 없는 남자. 그러나 그의 손을 거치면 무엇이든 복제가 가능한 전지전능한 존재. 진짜가 아니면 만들지않는다는 신념으로 고객이 원하는 무엇이든 상응하는 대가와 함께 이루어지게 만드는 미스테리한 인물.

때로는 단 돈 1달러로, 때로는 고객의 전재산을 요구하며 자신이 해결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듯 홀연히 사라지지만 세계각국의 역사와 유물, 유적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애정으로 그것이 업지러진 물일지라도 제로에겐 주워담는 게 가능하다.

소멸한 과거를 재현하고 부활케 하는 제로를 보노라면 한동안 잊었던 꿈을 꾸고싶어진다. 그리고 이런 만화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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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난 후에야 그 사랑의 진실을 발견하는 쥬리.

정체성을 잃은 채 무표정의 인형처럼 존재하는 카제미치.

이것은 아주 슬픈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혹시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품게하는 무서운 이야기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을 실험용으로 팔아먹은 천륜을 거스른 아버지와 무력하게 그 음모에 동조하고도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엄마라니 끔찍하다. 또 하나뿐인 누이동생은 그 어머니에 의해 비소에 중독된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끊임없는 폭행을 당하며 성장한 쥬리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않는 여자가 되어버린다. 동거인인 카제미치가 실종되자 비로서 마음의 문을 열 결심을 한다.  

가정, 가족의 해체를 이렇듯 무시무시한 코드로 그려내다니, 가벼운 만화로 읽었다가 앗, 뜨거워라고 소리지른 기분이다. 몸의 절반이상이 기계인 사람을 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고력과 분별력만으로 인간임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이제 시대는 사고력과 분별력만큼은 능숙한 로봇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으니까. 인공심장에 인공피부, 인공안구까지 설령 뇌의 일부가 내 것이라해서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나일지는 의문이다.

카제미치가 자폭을 선택하는 과정도 그런 일련의 고뇌의 결과다. 노예처럼 이용당하다 쓸모없이 버려지기 보다는 자존을 지키겠다는 그리고 죽어가는 누이를 살리겠다는 필연적인 선택인 것이다.

자신을 닮은 여자 쥬리를 만나 아낌없이 사랑하고, 그녀가 자신의 흔적을 찾아 주리란 희망을 품고, 찰나의 순간에 소멸한 카제미치의 영혼에게 안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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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를 시인할 수는 없으니까. 물론 도발을 해 오는 상대가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머리속은 온통 상대에게 치명적인 어떤 단어나 문장을 찾아서 분주하다. 한마디라도 지기 싫어하고 부당한 말에 반격을 해야 하고 두 눈은 똑바로 적을 응시하면서.....

그러한 나를 구경꾼의 눈으로 관찰한다고 치자. 아, 무섭고 슬퍼라. 평소의 무던함, 소박함, 신중함과 냉철함은 다 어디로 도망가고 저렇게 무시무시한 여자가 누구냐고 지나가는 이에게 묻고싶다.

그 놈의 욕심이란 것은, 자존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란 것은 사람을 참 불쌍하게 만든다. 그래, 당신이 이겼소이다라고 한마디 하기가 어째서 그리 힘든지 모르겠다. 독오른 뱀처럼 머리를 빳빳이 들고 거칠은 욕설은 삼간다고 하면서 비위를 거슬리는 비겁한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란 참으로 징그럽다.

오늘,  승리하였다고 우쭐댔던 싸움에서 만신창이가 된 정신은 우울증에 걸려 비틀거린다. 다시는 득없는 말싸움 따위는 하지않겠다 다짐하면서 이마를 찧어댄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겸허히 고백한다.

타인에게 준 상처는 결국 내게 돌아온다. 내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간 흉칙한 괴물들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들이 망각의 강을 건널 때가 되면 난 기진맥진하여 앓아눕는다.

슬프고 지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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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은 하지 않으련다.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삶 혹은 상황에 놓여진 나를 냉정히 바라보고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름기 빠진 메마른 피부와 총기 잃은 눈빛, 야윈 볼과 다크서클의 선명함이다. 생에 대한 달뜬 기대보다는 체념과 달관에 익숙하고 절대로 서둘러 걷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잡아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이 듦과 신년은 모순이다. 그 아이러니가 심술궂은 장난끼를 발동시킨다. 오너라, 살겠다. 어디 끝가지 살아보겠다. 도망치지 않겠다. 오만하고 도도하게 낡아빠진 스커트를 부여잡고 앞을 응시하겠다.

어쨌든 자학은 싫다. 차라리 도취가 낫지. 생에 대한 집착이 필요한 때인가. 점점 무뎌지고 한편으론 독해진다. 역시 고집인가. 아니면 빌어먹을 자존심.

요즘 읽고 있는 프리다 칼로가 떠오른다. 온 몸이 부서져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살다가 살다가 죽어버린 여인이 가슴을 세차게 친다. 그녀의 혼이 고스란히 녹아내린 그림들, 참혹하고 슬픈 무표정의 자화상이 뇌리를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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