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쓸고, 마른 나뭇가지며 낙엽들을 주워 모으고, 겨우내 단단해진 흙을 보슬보슬하게 파헤치며 발견한 것들. 앵초, 수선화, 나리, 민트 종류의 움트는 새싹들이라니!! 연초록 혹은 짙은 보랏빛의 촉들이 신기해서 하염없이 들여다 봤다. 그러다 걱정이 되는 게 한시도 가만있질 못하는 말썽꾼 녀석. 희망이. 우리집 강아지. 분명코 사방팔방 밟고 다니며 파헤치리라. 이 화창한 봄날에 녀석을 묶어놓을 수도 없고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하는 건가, 싶어 근심 가득이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조심스레 관찰하며 보살피던 싹들이 부러지거나 뿌리가 드러나있는 모양은 유쾌하지 않다. 때론 억장이 무너진다. 그럼에도 희망이의 자유를 구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희망과 절망이 반복되는 피치못할 사정의 그래도 좋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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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눈, 비, 바람과 더불어 왔다.

호된 시작이지만 마을을 굳건히 하기엔 더할나위 없다.

꽝꽝 얼어붙은 현관문을 밀어내고 뜨거운 입김 호호 뱉어내면서 얇게 깔린 눈얼음을 밟으며 웃을 수가 있어서 좋다. 정신이 번쩍드는 이런 날이 좋다.

밤새 자글자글 끓던 난로 위의 주전자는 아침이 되어도 기운차다.

물이 끓는 모양에는 마법사의 손끝이 닿아 있는 듯, 뜨거움은 곧 열정이다.  

아무리 뜨거운들, 신비 가득한 차향과 어우러진 입맛은 안식을 주니

거기가 곧 천국이 아닐까. 

이 겨울이 가도 나는 이 자리에 앉아 한 잔의 차를 마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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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을 좋아했던 날들이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기다리고 있고 월요일은 멀다는 이유로. 하지만 이젠 좋은 소식을 가져오면 좋은 날일 뿐이다. 반갑지 않고 석연치 않은 손님이 다녀간 오늘은 내내 찜찜함을 떨구지 못하고 있다. 소심증의 발동이다. 거짓말에 익숙한 사람을 만난 후엔 후유증이 더 크다. 물론 예전보다야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많이 짧아졌고 어지간해서는 무던하게 넘어가려 애쓰고 있지만, 완벽히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동창들을 부를 땐 친구이기 보다는 왠지 동무라는 느낌이 강하다. 들과 산을 뛰어다니며 유년을 공유했던 동무들은 깊은 추억 속에 잠들어 있다가도 한번씩은 이렇게 깨어난다. 30년도 더 지난 후의 전화 한통에서, 가물가물 아슬라한 기억 속, 순수함의 절정을 이루던 때의 그리움 가득한 이름들을 부르다가. 오늘, 명경의 전화가 그랬다. 동무야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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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17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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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갖고 싶은 열망에 살로잡혔던 만화책이죠. 열광했죠. 만화 속에 이런 세계가 있구나, 감탄했던, 이후로 이 작가의 책은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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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지마 리쓰, 돌아온 아오아라시에 감격하다.언령에 묶인 시니컬한 아오아라시도 좋았지만 약간은 능청스럽게, 조금은 뻣뻣하게 '자원봉사자'라 스스로를 부르며 돌아온 아오아라시가 더 멋졌다. 나도, 감동 먹었다.

어떤 식으로든 리쓰와의 관계는 계속될 줄 알았지만,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었음에도 부자유스런 인간의 몸으로 다시 돌아오고말다니 한편으론 웃음도 나고 가엾기도 했다. 

호법신을 잃은 리쓰와 자유를 찾았노라 자부하는 아오아라시가 이후 어떻게 얽힐지 사뭇 기대된다. 이 만화는 늘 제자리에 있는 듯, 지루함을 주다가 이렇게 한번씩 성장하고 있어 끊을 수가 없다. 가능한 천천히 읽어야 기다리는 시간이 덜 무료한, '백귀야행'이 있어 행복한 한사람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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