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난 후에야 그 사랑의 진실을 발견하는 쥬리.
정체성을 잃은 채 무표정의 인형처럼 존재하는 카제미치.
이것은 아주 슬픈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혹시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품게하는 무서운 이야기다.
교통
사고로 죽은 아들을 실험용으로 팔아먹은 천륜을 거스른 아버지와 무력하게 그 음모에 동조하고도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엄마라니 끔찍하다. 또 하나뿐인 누이동생은 그 어머니에 의해 비소에 중독된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끊임없는 폭행을 당하며 성장한 쥬리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않는 여자가 되어버린다. 동거인인 카제미치가 실종되자 비로서 마음의 문을 열 결심을 한다.
가정, 가족의 해체를 이렇듯 무시무시한 코드로 그려내다니, 가벼운 만화로 읽었다가 앗, 뜨거워라고 소리지른 기분이다. 몸의 절반이상이 기계인 사람을 과연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고력과 분별력만으로 인간임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이제 시대는 사고력과 분별력만큼은 능숙한 로봇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으니까. 인공심장에 인공피부, 인공안구까지 설령 뇌의 일부가 내 것이라해서 그것이 실제 존재하는 나일지는 의문이다.
카제미치가 자폭을 선택하는 과정도 그런 일련의 고뇌의 결과다. 노예처럼 이용당하다 쓸모없이 버려지기 보다는 자존을 지키겠다는 그리고 죽어가는 누이를 살리겠다는 필연적인 선택인 것이다.
자신을 닮은 여자 쥬리를 만나 아낌없이 사랑하고, 그녀가 자신의 흔적을 찾아 주리란 희망을 품고, 찰나의 순간에 소멸한 카제미치의 영혼에게 안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