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시끄럽게 울어대는 전화벨은 단연코 할머니다.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으니 힘없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제 통화로 감기기운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때문에 컨디션이 영 아니란다. 아침은, 약은 드셨는지 부러 큰소리로 물어도 여전히 나 힘들다고 하는 듯한 축 쳐진 목소리, 이럴땐 마음이 쓰리다. 토요일부터 태풍이 온다고 겁을 주어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 다음주에나 가겠노라 말씀드렸는데, 일요일 늘어지게 잔 잠조차도 죄스러운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할머니의 전화에 내 정신은 명료해졌다.
할머니의 연세를 생각하면 그리고 그 연배의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공포.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 거기다 지병없이 죽음을 맞는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것이 내 가족 특히 할머니의 죽음을 상상하면 무섭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보냈고 부모님이 다하지 못한 자리를 채워 주신 정신적 지주였던 이유겠지만, 한 해, 두 해 흐르는 세월이 어린 조카들을 살찌우는 대신 할머니에게서는 기력을 앗아가고 있음은 역시 무서운 깨달음이다. 부모가 자식을 앞세워 보내는 고통의 깊이를 가끔 듣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어떤 죽음이 자식을 보내는 고통보다 덜 하다고는 생각지 못하겠다. 가끔 농담처럼 할머니는 아흔 혹은 백 세까지도 사실 거라고 동생과 주고받다 보면 정말 그럴것 같은 확신이 마구 든다. 그리고 오늘처럼 걸려오는 전화나 어느날 찾아뵙더니 나빠진 안색을 보면 그런 확신은 다시 바닥으로 추락한다.
어쩌면 비 탓이겠지. 습한 날씨가 노인에게는 치명적이고 밖으로 들로 나들이를 못하시니 무료하고 적적하신 게지.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