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사 크리스트의 전 작품을 설렵할 만큼 한 때는 추리소설의 절대적인 애독자였다.
대개는 장편을 선호하지만 <세계 미스테리 걸작선>같은 빼어난 구성과 문장의 밀도있는 단편을 읽고, 짧은 이야기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색다른 묘미를 알게 되었다. 평소 서사적이고 드라마틱한 장편만이 문학의 진수라고 자신하던 나 자신이, 추리소설에 맛을 들이게 된 동기가 추리물이 추구하는 범죄자와 형사 혹은 탐정의 두뇌싸움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절묘한 인물배치와 구성력이었다. 이를테면 외도다.
<미소지은 남자>라는 작품 소개를 읽다가 눈에 뜨인 것은 잘 쓰여진 문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웨덴이라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을 덜 알려진 나라의, 해닝 만켈이라는 작가의 프로필이었다. 아동문학가로서 범죄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스웨덴의 현실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 문제점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작가에게 왠지 호기심이 동했다. 모름지기 작가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내 나름의 틀 속에 적합했다.
아마도 책을 몹시도 즐겨있는 사람이라면, 책에서 발견하는 가장 큰 기쁨은 문체의 흡인력일 것이다. 의미없는 단어 하나도 빼먹을 수 없도록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글의 흐름과 연결은 인물이나 줄거리가 주는 매혹 이전의 산뜻한 첫인상으로 기억되었다. '안개. 안개가 마치 한 마리의 맹수처럼 소리없이 접근해 왔다. 그는 평생을 쇼넨에 살았지만, 앞으로도 결코 안개에는 익숙해지지 못하리라. 쇼넨의 안개는 언제나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형체로 가라앉혔다.'라는 첫 장을 열고 있는 것은 미지와의 조우였다.
결코 완벽하지 않은, 결핍의 주인공 발란더의 심리만으로도 족히 한 편의 소설감이 될 거라는 걸 작가도 알고 있을까. 그의 사고와 상념을 따라 가는 과정은 매끄러운 문장을 미끄럼처럼 타고 내려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무언가가 좋았다. 그것이 스웨덴 경찰의 특성인지 아님 번역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범죄에 직면하고 그것을 다루는 그들의 방식과 접근이 아마도 시끄럽고 거칠고 고압적인 헐리웃 영화와 우리 영화 속의 경찰과 달라서였는지도...
이 소설은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부를 경계하라고 한다. 정당하지 않은 부의 분배에도 경고를 한다. 사고 팔아서는 안될 인간의 장기까지도 매매시키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자신감에 찬 우월한 인간의 병든 정신을 고발하고 미소안에 갇힌 짐승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도덕과 부도덕의 의미가 물질적인 풍요속에서 사라져가는 사회, 명령할 뿐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는 논리로 스스로의 죄를 사하는 권력자의 오만과 자부심은 픽션이 아니다.
간결하고 쉬운 글로 쓰여진 <미소지은 남자>는 분명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목록에 들어간다. 잘 쓰여진 글을 읽어가는 동안의 행복감은 좋은 글 즉 내용이 훌륭한 글을 읽는 재미와 비교할 수 있다. 또한 읽는 것 만큼 쓴다는 것의 즐거움도 멋질 거라는 걸 부추기는 데,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꿈은 바로 쓰는 것이므로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