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님의 이전 소설 <장길산>을 읽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소설만큼 현실에서의 삶도 치열했다고 기억합니다. 때로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당신의 책을 펴기가 겁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책의 제목을 접하는 순간 마음이 놓였습니다. 분노나 증오의 코드가 아닌 화해와 용서, 인내를 연상시키는 '오래된 정원'이라는 제목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반갑고 기쁩니다.

오래된 정원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질긴 생명력의 뿌리를 가진, 그 풀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면서도 존재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못한다. 이름이 없음이다. 그러나 그 잡초가 피워내는 꽃은 얼마나 작고 어여쁜가. 살아남은 이에 대한 열렬한 찬사에 이마가 시릴 기도의 결정체처럼.

오래된 정원에는 추억으로 다져진 마당의 흙과 돌이 뒹군다. 먼지와 거미줄과 이슬의 조화로운 휴식도 깃든다. 말못할 서러움과 고독과 비밀을 빠트린 우물은 텅 빈 어둠을 간직하고 입을 벌린다. 그러나 감나무 잎은 무성히 푸르고 석류꽃은 소담하며 휘드러진 보리똥 나무 열매도 그 선연한 빛깔이 생기롭다.

오래된 정원에는 아무도 다녀가지 않는다. 옛주인을 기다리던 가축도 떠나고 낡은 편지함은 녹이 슬어 허물어졌다. 바랜 기억과 아문 상처를 기억하는 친구도 없고 연인은 먼 나라로 떠났다. 다만 끊임없이 죽으면서도 다시 살아나는 풀만이 정원을 가득 채운다. 죽음은 다시 살아나기 위한 준비라고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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