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은 마당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막 움트는 싹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는 거다. 일일초는 도무지 떡잎이 나온 이후로 변화가 없어 애를 태우더니 본잎이 아주 조그맣게 움트고 나오려 해서 마음이 놓인다. 얘가 느리다는 건 작년 여름에 진작 알았지만 그땐 어느정도 자란 아이를 옮겨심기 한 거였고 올핸 직접 씨앗을 뿌린 거라 기다림이 더 지루하다. 기껏 두 해째지만 느려도 이렇게 느린 애는 처음이다. 대신 기다림만큼 튼실하고 매끈하게 자라주므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미 흐드러진 꽃을 보여주는 건 사랑초와 로사캠피온. 로사는 햇수로 삼 년 만에 꽃대를 올린 것이다. 5월 초에 얻어 심었던 홍화는 모양이 영 시원찮다. 예쁜 꽃을 보려면 화분에 옮겨심어 집중 관리를 해야할까. 무화과나무 아래에서는 아무래도 제대로된 성장이 어렵다. 키만 삐죽 커서 비가 오면 드러눕기 일쑤다. 역시 땅이 부족하구나. 아무리 늘려도 부족한 화분은 또 어쩌구. 이미 마당을 가득 채울인데도 어째 해가 갈수록 더 부족하다. 오며가며 동네 어른들이 주시는 새로운 종류의 화초들을 욕심껏 다 길러보겠다는 의욕이 앞서서다.
뒷집에서 줘서 뭔지도 모르고 심었던 게 맥문동이란다. 보라색 꽃을 피우고 추위와 건조에 강한 풀이다. 키가 제법 크게 자라는 거란다. 올해는 두고 보다가 내년 봄엔 담벼락 쪽으로 옮겨심을까. 문제는 세를 확장한 초롱꽃들이다. 초봄에 파릇하게 자라는게 기특해서 방치했더니 군락을 이루어 무섭게 성장중이다. 작년에 키도 작고 포기도 작고 가지도 갸날펐는데, 이파리 하나가 딱 작년의 세 배다. 베어버리라고 하는데 자그만 새싹부터 오매불망 봐와서 그런지 그렇게 쉽게 베거나 뽑을 수가 없다. 화초기르기의 가장 어려운 점은 죽이고 살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한다는 거다. 장소는 한정되고 개체수는 많고, 튼실하게 적게 키울 것인가. 약하게 많이 키울 것인가. 마음이 약한 건지 욕심이 과한 건지 도무지 햇갈릴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사실 이것도 요령이고 경험이다. 농사의 달인인 엄마를 보면 그냥 휙 휙 가차없이 뽑아 던지잖는가. 난 어쩔수 없는 초보다.
희소식들. 올봄 옮겨심은 연산홍도 드디어 꽃을 맺었고. 부레옥잠이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겨우내 봄내 눈 빠지는 줄 알았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