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억, 소리가 절로 났다. 정체는 분명한 녹색식물군이 코앞까지 뻗쳐 그리 크지도 않은 마당을 뒤덮고 있다. 열매는 드문데 잎만 무성한 감나무의 위용에 이미 놀랐건만. 역시나 여름은 열정적인 계절이다. 손바닥만한 아니 손톱만한 틈, 흙만 있어도 무언가를 틔우고야 마니까.
딱, 열흘만이다.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가 돌아온 것이. 그간 장마가 시작됐고 태풍도 다녀갔다. 좋아라, 환호하며 경주를 했을 잡초들, 남의 마당이 폐허가 되거나 말거나, 몇 그루 심은 고추 모가 양분이 부족해 크거나 말거나, 하나 얻어다 심은 토마토가 허리를 구부리거나 말거나, 땅이란 땅은 온통 잡초군의 세상인 것이다.
쓸고 닦고 빨고 널며 허기가 지는 줄도 모르고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은 오직 내 집이라는 공간에서만 누릴 수 있다. 오매불망 집 생각에 애가 닳은 나란 인간은 집이 아닌 어디서도 쉴 수가 없다. 어떤 편리, 감각적인 디자인의 부엌이나 욕실의 번쩍임에도 내 심신은 유혹당할 줄 모른다. 좋은 것, 맛있는 것, 아름다운 것도 집을 떠나면 온전히 즐겁지가 않다. 마치 붙박이장처럼 고정된 자리에서만이 제 기능을 하는 인간마냥.
아침나절 뜸했던 비가 또 내린다. 고개를 살짝 돌려 잿빛 하늘과 앞집과 옆집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센다.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가 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다. 부러진 감나무가지에 어느새 집을 짓고 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고스란히 내리는 비를 맞아야 하는 곳이다. 거미는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감행할까 아님 제 집을 지킬까. 고층의 아파트에서는 결코 만끽하지 못할 지붕을 가로지르는 전선과 전봇대가 젖어간다. 이것들이 그리웠다. 사방팔방으로 가로지르는 전선들로 분할된 하늘이 보이는 내 방 창문 앞의 컴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