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억, 소리가 절로 났다. 정체는 분명한 녹색식물군이 코앞까지 뻗쳐 그리 크지도 않은 마당을 뒤덮고 있다. 열매는 드문데 잎만 무성한 감나무의 위용에 이미 놀랐건만. 역시나 여름은 열정적인 계절이다. 손바닥만한 아니 손톱만한 틈, 흙만 있어도 무언가를 틔우고야 마니까.


딱, 열흘만이다.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가 돌아온 것이. 그간 장마가 시작됐고 태풍도 다녀갔다. 좋아라, 환호하며 경주를 했을 잡초들, 남의 마당이 폐허가 되거나 말거나, 몇 그루 심은 고추 모가 양분이 부족해 크거나 말거나, 하나 얻어다 심은 토마토가 허리를 구부리거나 말거나, 땅이란 땅은 온통 잡초군의 세상인 것이다.


쓸고 닦고 빨고 널며 허기가 지는 줄도 모르고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은 오직 내 집이라는 공간에서만 누릴 수 있다. 오매불망 집 생각에 애가 닳은 나란 인간은 집이 아닌 어디서도 쉴 수가 없다. 어떤 편리, 감각적인 디자인의 부엌이나 욕실의 번쩍임에도 내 심신은 유혹당할 줄 모른다. 좋은 것, 맛있는 것, 아름다운 것도 집을 떠나면 온전히 즐겁지가 않다. 마치 붙박이장처럼 고정된 자리에서만이 제 기능을 하는 인간마냥.


아침나절 뜸했던 비가 또 내린다. 고개를 살짝 돌려 잿빛 하늘과 앞집과 옆집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센다.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가 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다. 부러진 감나무가지에 어느새 집을 짓고 살고 있었던 모양인데, 고스란히 내리는 비를 맞아야 하는 곳이다. 거미는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감행할까 아님 제 집을 지킬까. 고층의 아파트에서는 결코 만끽하지 못할 지붕을 가로지르는 전선과 전봇대가 젖어간다. 이것들이 그리웠다. 사방팔방으로 가로지르는 전선들로 분할된 하늘이 보이는 내 방 창문 앞의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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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7-1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며 한 폭의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립니다.
그리고 가슴께가 따듯해져 오는군요.
집이 최고죠.
방랑벽이 있는 저도 점점 집이 제일 좋아집니다.
단독주택의 단아하고 정갈한 그림을 상상할 수 있어 감사해요

날개 2006-07-1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집만큼 편한 곳이 없죠..^^
나이가 들수록 더하더군요.. 내집 사랑이...

겨울 2006-07-1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건강하시죠? 최근 병원과 가까이 하다보니 아픈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저마다 사연이며 사정들도 천태만상인 게, 사는 게 허무하기만 하더군요.

날개님, 맞아요. 나이가 들수록 집에 대한 애착이 집착에 가까워져요. 어려서는 집을 떠날 궁리만 했었는데 말이죠. ^^

잉크냄새 2006-07-12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말씀처럼 님의 집 앞을 한동안 서성거리다 온 것 마냥 눈에 선합니다.

겨울 2006-07-1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비 피해 없으신지요. 제가 사는 곳은 혜택받은 땅인지라 적막, 우울한 가운데 열심히 TV만 시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