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민음사 모던 클래식 72
요나스 하센 케미리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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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좀 난해하다. 지문없이 대사만 있는 희곡 같은데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장면이 상상된다. 작가의 탁월함일까. 읽기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특별한 묘사가 없는데도 주인공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독창적인 소설이다.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제 일어났던 자살 폭탄 테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아모르(아랍계 이주민이다)는 친구 샤비에게 전화로 자살폭탄 테러 소식을 듣고, 사건 발생 현장에 간다. 테러 소식을 뉴스로 접한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한다.


아모르. 한 가지 기억해 둬.


나는 홀을 향해 걸어갔다.


증오는 증오로 멈춰지지 않는 법이야.


신문 1면에서는 부서진 자동차와 접근 금지 테이프, 연기, 그리고 제목이 보였다.


증오는 오직 사랑으로만 극복될 수 있어. 이게 영원한 규칙이야.   (41-42쪽)



아모르는 테러범이 아닌데도, 자신의 이름과 머리색깔, 피부색, 복장, 말투로 인해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 자신을 잠재적 테러범으로 보는듯한 사람들의 시선, 수배자로 지정돼 미행이 따라 붙은듯한 느낌, 심지어 자신이 테러범이 아닐까 착각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나는 내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한다 : 바로 지금이야. 침대에서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면도를 해. 옷을 제대로 깔끔하게 챙겨 입어. 특히 주의할 것. 옷은 익명성을 적당히 보장할 수 있는 것으로.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범함으로 튀게 하면 절대 안 돼. 팔레스타인 두건 '케피예'는 집에 놔둬. 의심을 살 만한 가방 같은 것은 들고 오지마.


집을 나서면 너희는 더 이상 너희가 아니야. 바로 그 순간 너희는 대표자로 바뀌는 거야. 그러니까 주변에 녹아들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 특히 중요해. 어떤 것에든 그리고 누구에게든(애완동물과 쇼윈도 마네킹을 포함해서) 미소를 보여주도록 해. 최대한 정상적으로 걸어. 누가 문을 잡아주기라도 하면 감사하다고 크게 말해. 너희 때문에 미안하다고 사과해. 전철에서는 소곤소곤 얘기하고, 극장에서는 조용히 웃고, 마치 보이지 않는 가스처럼 변해서 행동하도록 해. (59쪽)



'하산'이라는 미들네임에서도 드러나듯, 저자도 튀니지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랍계다. 이민자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주로 썼는데, 작가 본인의 경험이 투영된 자전적 이야기인 것 같다. 아랍계,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은 유럽에서 골칫덩어리 이민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된다. 특히 폭탄 테러와 같은 극단적 범죄가 일어나면 더더욱.


한편으로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가령, 미국 백인 남성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백인 남성만 보면 손가락질하고 피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테러리즘은 없어져야 할 범죄임을 일부 극단주의 종파를 제외한 대다수의 아랍인이 인정하고 있고,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닌데, '이슬람=테러'라는 인식이 왜 이렇게 굳게 자리잡혀 있는 것인지, 오히려 선량하고 힘없는 소수에 대한 폭력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유럽의 마이너리티인 아랍계 이민자 화자의 입을 빌려 풀어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요나스 하센 케미리의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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