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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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눈먼 프랑스 소녀와 독일 고아 소년의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최근 우리에겐 기사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 휴가에 챙겨간 세 권의 소설 중 하나로 알려졌다. 개인적으로 전쟁, 고아, 장애 이 세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슬퍼지기에, 첫 장을 열기가 쉽지는 않았다. 


1권에서는 대체로 베르너와 마리로르의 삶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마치 영화처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서술했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 이야기인지, 현재의 이야기인지 구분해 읽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하지만 2권에 들어서 이야기가 절정에 이를수록, 눈을 감으면 1940년대 당시 프랑스와 독일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묘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독일의 베르너는 전자기계를 분해, 조립하고, 집중해서 라디오를 고칠 때 세상의 근심을 잊는, 여동생과 라디오 채널에 귀기울일 때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소년이다. 라디오 수리공으로의 재능을 알아본 누군가의 도움으로 광부로 예정된 삶을 떠나 히틀러 유겐트 양성학교에 다니게된다. 반면, 프랑스의 마리로르는 파리 자연사박물관 자물쇠 기술자인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매일 아버지를 따라 박물관을 오간다. 아버지는 타고난 손재주로 딸을 위해 마을의 축소판 모형을 제작하고, 마리로르는 이를 통해 마을의 지리를 익힌다. 


전쟁이 일어나 독일군이 파리로 포위망을 좁혀오자 마리로르의 아버지는 피난길에 오른다. 지닌 자를 보호한다는 전설이 담긴, 박물관 최고 보물 진귀한 다이아몬드 '불꽃의 바다'를 독일의 손아귀에서 지켜내기 위해 박물관장이 선택한 방법은 모조품 3개를 포함해 총 4개의 다이아몬드를 네 사람에게 각각 맡기는 것이었다. 박물관 금고, 박물관장, 후원자, 그리고 금고담당자. 본인의 보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다. 특수 보관장치에 넣은 다이아몬드와 함께 자물쇠 장인은 눈먼 딸과 생말로(프랑스 서북부지역)의 친척집으로 떠난다. 끝까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얼마 전 시리아 팔미라 유적을 지키기 위해 IS에 맞서다 죽임당한 노학자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독일의 베르너는 학교에 입학한지 1년 만에, 교사에게 속아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그의 임무는 점령 지역에서 무선통신으로 구조 요청을 하거나 정보를 송신하는 적군(그는 그렇다 믿는다)의 위치를 찾아내 처리하는 것이다. 임무중, 적군으로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는 모녀를 사살하는 동료의 모습에 점점 전쟁의 실상을 알아가고 회의감을 품게 된다. 


다이아몬드와 함께 저택에 남겨진 마리로르와 불로의 보석을 손에 넣기 위해 저택을 수색하는 독일 본부원사, 그리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지하에 갇힌 베르너. 마리로르는 구조요청을 위해 목숨을 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고, 메시지는 베르너에게 닿는다. 어릴 적 여동생과의 추억이 담긴 목소리로.. 각자 다른 나라, 다른 환경에서 자라, 상상해본 적 없고 선택한 적은 더더욱 없는 상황에 놓인 베르너와 마리로르. 그들의 만남은 의외로 찰라에 이루어진다. 작가는 독자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이야기를 맺는데, 오히려 현실적이라 마음에 든다. 


이 소설의 장점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워낙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그려져 있어, 전쟁을 소재로 한 슬픈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 같은 독자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두 주인공, 시각장애인 마리로르가 소리와 촉감으로 느끼는 세상에 대한 묘사, 기댈곳 없는 고아인 베르너가 나치 교육기관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본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달아가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다. 덕분에 독자는 소설을 '천천히' 읽어나가며 그들이 겪은 일을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소설로, 감성과 생각할거리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 권한다. 



 

 

"마리는 곧 열네 살이 돼, 마네크. 그리 어리지 않은 나이야, 전쟁통에는 그래. 열네 살짜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열네 살이 어린 나이가 되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건..." (2권,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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