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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심장이 콩닥콩닥하고 긴장으로 어깨가 뻣뻣해진다. 그럼에도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서 책장을 넘겨 결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차마 마지막 페이지를 펴기는 아쉬워 힌트라도 있을까 역자 후기를 다시 읽는다. 그러다 읽던 이야기 속으로 되돌아오길 여러 번. 책을 읽는 내내 으스스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영화화 된다는데 아무래도 볼 자신이 없다.
이야기는 네살배기 두 아이와 엄마 맬로리가 긴 여정을 떠나는 날 아침에서 시작한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집 밖 풍경을 본 적 없는 보이와 걸. 날 때부터 혹독한 청각 훈련으로 눈을 감고도 엄마의 눈물, 미소, 감정변화까지 숨소리로 알아차릴 정도로 예민하다. 맬로리도 지난 4년간 창 밖을 내다 본 적이 없다. 모든 창문은 담요로 가리고, 집 밖에 나갈 땐 항상 안대를 착용한다.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4년의 준비를 마치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널 시간이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맬로리가 겪은 시간을 교차해 보여준다. 4년 전, 사람들이 정신 착란을 일으켜 타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보았다'라는 건데, 그걸 본 사람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그것을 '크리처(creature)'라 부르고, 혹시라도 크리처를 보게 될까 눈을 감고, 창문을 모두 가리고 집 안에만 은둔한다. 거리에 시체가 뒹굴어도 묻어주지 못하고, TV도 라디오도 진작에 끊어지고, 새장을 문 앞에 걸어두고 새소리를 통해 누군가의 접근을 감지한다. 피신처를 찾아온 사람을 집 안에 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생존자끼리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안전가옥으로 피신한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작은 사회와 같았다. 위기상황에서 각자의 태도가 달랐다. 호기심을 갖고 이것저것 실험해 보는 사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밖을 탐험하는 사람, 리더가 되는 사람, 팔로워가 되는 사람, 회의주의자, 항상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까지 변할 수 있는지, 어머니가 될 여성은 얼마나 강인해질 수 있는지도 드러난다.
두 아이를 데리고 눈을 감은 채 노를 저어 강을 건너는, 목숨을 건 모험을 시작한 맬로리. 그녀가 가려는 곳은 어디일까,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미지의 존재인 크리처나 야생의 들짐승들보다 마음 속의 죄책감, 같은 '인간'의 잔혹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이하게도 이 책은 록밴드의 보컬이자 작사가가 썼다. 얼굴을 보는 자마다 돌로 변하게 했던 그리스 신화의 마녀, '메두사'에 영감을 받아 첫 작품을 써냈다. 지금은 후속편을 구상중이라는데, 어서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다. 4년이 지나서야 올림피아, 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두 아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더욱 강인해진 맬로리를 속편에서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