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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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KENING. 도서관 서가의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서 발견한 두툼한 책(무려 620쪽), 제목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서관에서는 표지와 띠지를 벗겨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번역서의 제목은 모른채 순전히 어웨이크닝이라는 제목만 보고 읽었다.) 나중에 책정보를 찾아보니 국내에는 <뱀이 깨어나는 마을>이라 번역되어 있었고, 미스터리 소설이라기엔 너무나 샤방샤방한 파스텔 표지를 입고 있었다. 꼬박 반나절을 투자해 한 권을 독파하고 드는 생각은, 책의 원제 Awakening이 내용과 훨씬 잘 어울린다는 것. 직관적으로 확 와 닿는 제목이 있는 왜 굳이 '뱀이 깨어나는 마을'이라고 지었을까.

 

어웨이큰의 사전적 의미는 자각, 인식(의 계기), 자각(함), 일깨움이다. 기독교에서는 영적 각성, 영적 경계심을 의미하고, 동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현상은 Spring Awakens라 한다. 내가 이 책의 제목에 흥미를 느꼈던 이유는 어웨이큰을 첫 번째 의미인 자각, 인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를 보면, 샤론 볼턴의 "모든 작품에는 상처를 지닌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경계를 풀고 세상으로 걸음을 내딛는"다고 적혀 있기 때문에, 미스터리 형식을 취한 성장소설이라 짐작하고 흥미를 느꼈다. 어웨이큰을 '뱀이 깨어나는'으로 포장한 표지의 책인줄 진작 알았더라면,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거다.

 

이야기의 첫 장면은 영국의 작은 마을 수의사인 '클래라'가 사건 현장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이웃, 바이얼릿 할머니 집을 방문한 클래라는 거실의 젖은 자루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할머니의 애완견 베니가 뱀과 함께 죽어 있었다. '포에나 쿨레이'는 고대 로마에서 극악무도한 죄인(패륜아)을 처형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박한 사형수를 개와 뱀, 원숭이나 다른 가축과 함께 자루에 집어 넣어 강에 빠뜨렸다고 한다. 익사하지 않으려고 할퀴고 발버둥치는 짐승들과 한 자루 안에서 죽어가는 사형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나 동네 여기저기 집 안에서 자꾸만 발견되는 뱀들, 공격 당하는 사람들. 그해 봄이 뉴난히 따뜻했고, 불법 오소리 사냥으로 천적이 부쩍 줄었다 해도, 맹독을 지닌 열대지방의 뱀이 영국 시골마을에서 발견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클래라는 파충류를 전공한 현장 경험 풍부한 수의사이지만,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시골에 머물며, 수도회에서 후원하는 작은 야생동물 보호센터에서 일한다. 지역 주민과의 교류도 최소화한 채, 야생동물을 치료하는 데만 집중하는 그녀는 얼굴 큰 흉터만큼이나 큰,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소설에서는 알에서 깨어나 마을을 활보하는 뱀과 독사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누군가를 쫓는 과정이 숨막히게 그려진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고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소설이 단순히 스릴 넘치는 미스터리로만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 클래라의 내면의 변화에 독자가 공감하며, 그녀의 성장을 응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제는 책의 제목과 연관이 있다. 앞서 밝혔듯, 어웨이큰은 뱀이 알에서 '깨어나는' 걸 뜻하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상처를 인식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틀에서 '깨어나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종교적 의미에서의 '영적 각성'도 포함한다. 마을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고, 클래라에게 교회는 집과 다를 바 없는 곳이며, 끊임없이 내면의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주인공인 클래라가 세상과 교류하는 첫 걸음을 내딛는 장면에서 독자는 Awakening 이란 제목이 품고 있는 희망의 뉘앙스를 느끼게 된다.

 

이 더운 날씨에 등골 서늘하게 얼려줄 미스터리 소설이 주는 흥미진진함에 더하여, 여운이 있는 성장소설로의 매력도 느끼길 원하시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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