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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평점 :
좋은 책은 여운이 길게 남는다. 한번 읽었음에도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진다. 내겐 하퍼 리의 <파수꾼>이 그런 책이다. 소설은 <앵무새 죽이기>의 모체가 되는 작품이자 저자가 55년 만에 발표한 후속작으로, <앵무새>의 화자였던 9세 소녀 스카웃이 26세 여인으로 성장해 고향 메이콤을 방문해 그가 상상치도 못했던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갈등을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기본 스토리나 인물, 주요 사건은 출판사 리뷰나 다른 분들께서 이미 잘 짚어 주셨기에, 본 리뷰에서는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느낀 두 가지 부분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서로 다른 '우리'의 범위, 각자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파수꾼'
"여러분, 제가 이 세상에서 믿는 구호가 하나 있다면,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권을, 특권은 없습니다."
딸 스카웃이 따뜻하고 편안하다 기억하는, 아버지 애티커스의 목소리이다. 누명을 쓴 흑인 청년을 변호하는 법정에 울려 퍼졌던, 양심을 따라 행동하는 변호사의 목소리인 동시에 두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성인이 된 진 루이즈는 스카웃이라 불리던 어린 시절에 들었던 그 목소리를, 메이콤 주민 협의회에 참석한 아버지를 보고 떠올리게 된다.
(메이콤 주민 협의회는 부녀간 갈등이 시작된 곳으로, 이 모임에 대해 딸은 인종차별주의자 백인들의 회합으로 여기고, 아버지는 흑인들로부터 백인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방어책이라고 답한다.)
진 루이즈가 통찰력을 지녔더라면, 그래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고도로 선별적이고 배타적인 세계의 장벽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더라면,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평생 동안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알아채지 못하고 간과한 시각 장애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선천적으로 색맹이란 것을. (173쪽)
"모두들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캘퍼니아가 물었다.
"우리?"
"네. 우리." (225쪽)
애티커스와 핀치 삼촌, 메이콤 주민들, 은퇴한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가 생각하는 '우리'는 피부색과 인종으로 나뉜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백인과 흑인으로. 그러나 진 루이즈는 그 둘을 합쳐 '우리'라고 여겼다. 작가는 이런 인종적 편견이 (상대적으로) 없는 진 루이즈를 '선천적인 색맹'이라 칭했는데, 이러한 비유는 책 말미에 삼촌 핀치의 지적을 통해 재차 드러난다.
"너는 색맹이야, 진 루이즈." 그가 말했다. "너는 언제나 그랬고, 또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거야. 네가 보는 사람들 간의 차이는 오직 생김새나 지력, 인격 같은 것들에 있지. 너는 한 번도 사람을 인종으로 보도록 부추김을 당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종 문제가 현재 가장 논란이 많은 시급한 사안인데도 아직까지 인종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어. 네게는 사람만 보이는 것이지." (379쪽)
소설의 제목이 <파수꾼>인 이유는, 각자가 구분하고 믿는 '우리'라는 범주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파수꾼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성경 이사야서 21장의 파수꾼이 등장한다. 바빌로니아 왕국 멸망을 목전에 두고, 적의 침략으로부터 성을 지키기위해 망대 위에서 불침번을 서는 파수꾼. 진 루이즈에게는 자기 양심에 따라 약자의 편에 서는 파수꾼의 역할이 중요했다. 애티커스는 그보다 복잡했는데, 다른 인종의 수적 확대, 이로 인한 자기 영역(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의미로서의 파수꾼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진 루이즈의 '우리'는 개인, 가족, 그리고 흑인을 포함한 메이콤까지였다면, 애티커스의 '우리'의 범주는 개인, 가족, 넓게는 메이콤의 백인과 연방정부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희망하는 주정부까지였던 것 같다. 그렇기에 둘은 의견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태도
진 루이즈가 아버지의 타협적인 행동에 실망하고, 신적으로 옳다 믿어왔던 아버지의 양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양심을 세워가는 모습은 한 편의 성장소설을 보는 듯 했다. 한 집에 살았지만 70대의 아버지가 보는 미국과 20대 젊은 여성이 보는 세상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이렇게나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사회 내 세대 간 갈등은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의견의 간극을 어떤 방식으로 좁혀 나가느냐, 나와 의견이 다른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에 분노하고, 회피했다가, 정면으로 반박하며 심한 말도 서슴지 않는 진 루이즈를 삼촌 핀치는 '고집불통'이라 불렀다.
"고집불통이 자기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양보하지 않아.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지.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 그저 비난만 하고. (...) 사실상 이렇게 말한 셈이지. <나는 이 사람들이 행하는 방식이 싫어, 그러니까 나는 이들과 상대하지 않아>라고 말이야. 이것아, 그들과 상대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절대로 성장하지 못할 거야. 예순 살이 되어도 지금과 똑같을 거라고." (375-376쪽)
한편 애티커스는 한결 성숙한 모습이었는데, 자신을 이해할 수도 없고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독설을 퍼붓는 딸에게 '자랑스럽다'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물론 내 딸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물러서지 않았으면 했지. 가장 먼저 내게 맞섰으면 했어." (390쪽)
책이 쓰여진 1950년대 미국, 인종 관련 이슈로 양쪽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그중 누군가는 이슈를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을 보며, 어떤 마음으로 작가가 이 책을 썼을지 상상해 본다. 소설 속의 이야깃거리를 통해 저자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친구에게 네가 필요할 때는 친구가 틀렸을 때"라며 진 루이즈에게 고향에 내려올 것을 권유했던 삼촌 핀치의 말처럼, 메이콤 사람들과 진 루이즈의 신념은 다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차이를 포용하고 다양성을 인정할 때, 그리고 누군가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릴 수 있게 붙잡아 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개인의 성숙은 물론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공동체의 발전도 이룰 수 있는 것 같다.
읽는 이에게 이렇듯 다양한 인사이트를 선사하는 하퍼 리의 <파수꾼>. 먼저 발표된 <앵무새 죽이기>를 먼저 읽고,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보면 더욱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이 작품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본다. 더 일찍 출간되었더라면, 그래서 작가가 더욱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90세의 연로한 할머니가 된 그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 역사적 배경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번역자의 각주와 역자 후기는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주요 인물들의 주장을 색깔 별로 태그 표시해 읽으니 나중에 다시 찾아 읽기 편했다는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