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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 - 제인 구달의 꽃과 나무, 지구 식물 이야기
제인 구달 외 지음, 홍승효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레이첼 카슨, 제인 구달 박사, 최재천 교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 할 줄 아는 생물학자라는 것. 과학자가 되기엔 너무 인문계생이었던 내가 롤모델을 찾기 위해 애쓰던 생물학과 재학 시절 존경하던 인물들이다. 구달 박사의 저작을 읽은 건, 대학교 2학년 때 읽었던 <희망의 이유> 이후 처음이다.
책은 4부로 이루어진다. 1부는 자연에 대한 구달 박사의 사랑을 고백하는 챕터라면, 2부는 수렵과 채집, 원예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며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선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대로, 3부에서는 인간들이 식물을 오용하고 왜곡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 4부에서는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다시 한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읽으면 자연을 향한 저자의 순수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도 그가 이야기하면 생경하게 다가오니 신기한 일이다. 저자의 관점으로 식물들을 바라보며 그의 감탄에 나도 모르게 동화된다.
"우리가 내쉬는 숨은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포획할 때 그들에게 영양분을 주며, 식물이 내쉬는 숨은 우리가 (또 그들이) 호흡할 수 있게 한다. 얼마나 놀라운지, 참으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산화탄소 1컵에 물 몇 수저, 햇빛 한 줄기를 섞기. 이것은 조류(algae)와 비슷한 형태의 다른 식물의 삶을 지탱하는 음식의 궁극적이며 유일한 조리법이다." (본문 43쪽)
때로는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오는 울창한 숲 속에 누워있는듯, 독자를 자연 현장에 초대하기도 한다.
"작고 유속이 빠른 개울가에 앉아서 냇물이 호수로 흘러가는 도중에 굴러 떨어지며 내는 콸콸 소리를 듣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 아니면 등을 대고 누워 바람이 머리 위 높이 달린 가지와 잎사귀들을 휘저을 때, 가지 사이로 하늘의 작은 알갱이들이 별처럼 반짝이는 우거진 나뭇가지들 꼭대기를 올려다 보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 나는 숲의 음성을 매우 잘 알게 되었다. 바쁘게 계속 자기 일을 하는 작은 생명체들의 가벼운 바스락거림, 곤충이 비행할 때 윙윙거리며 씽 도는 소리, 매미의 날카로운 음성, 새들의 노래, 멀리서 들리는 수컷 비비의 울음소리. 모퉁이를 돌며 미끄러지는 타이어의 끼익 소리와 엔진 회전소리, 술에 취해 지르는 비명이 도시 사람들에게 친숙한 만큼이나 숲 사람들에게 친숙한 모든 다른 소리들. 그곳에는 비가 내릴 때 자리에 앉아 나무 잎사귀 위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초록색, 갈색의 식물들과 부드러운 회색의 공기로 이루어진 흐릿하고 불가사의한 세계에 둘러싸였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존재한다." (본문 92쪽)
특별히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식물사냥꾼들'과 '씨앗'에 대한 장이었다. 18-19세기, 새로운 식물종을 발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륙을 탐험하던 식물학자, 모험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새로운 꽃과 모종을 얻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였던 유럽인들, 새로운 종을 무사히 본국에 들여오기 위한 식물사냥꾼들의 사투, 고고학자가 발견한 2000년 전 씨앗을 발아시킨 이야기(심지어 이름이 '므두셀라'라니! 성경에서 가장 장수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산불이 일어나야만 싹이 트는 놀라운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아예 구글 검색을 켜 놓고 주인공들의 모습을 확인할 정도였다. 토용나리(Lilium superbum), 달리아 덩이줄기(Dahlia tuber), 튤립(Tulip) 구근, Erica verticillata, Serruria florida, Bee orchid, Vanilla planifolia, Pu gong ying… 적극적인 독서를 가능케 하는 구달 박사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식물들의 모습에 매료될 즈음, 저자는 식물을 오용하는 우리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대마, 양귀비, 코카나무, 페요테 선인장, 담배, 궐련… 대규모 경작을 위한 농장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학대, 무분별한 채집으로 식물을 멸종에 이르게 하는 인간들, 이도 모자라 식량 생산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곤충을 죽게하는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 그리고 내성을 가진 슈퍼버그, 슈퍼 잡초의 등장.
나는 "지구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후손들에게서 빌린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불행히도 이 말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를 빌린 것이 아니라, 훔쳤다. 아직도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본문 442쪽)그럼에도 구달 박사는 식물이 가진 생명력과 의지를 희망의 이유로 꼽는다. 죽음을 거부하는 할머니 나무가 있고, 원자 폭탄에서도 생을 놓지 않은 나무가 있다. 9.11 테러에서 살아남은 나무는 지금도 그라운드 제로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구환경을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빼앗아 소모해버린 탐욕스러운 세대, 인간들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구달 박사의 말대로, 식물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길, 너무 늦기 전에 '내'가 그들을 구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