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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왜 다문화를 선택했는가 - 다문화 정책을 통해서 본 보수의 대한민국 기획
강미옥 지음 / 상상너머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으로 한국에 11년간 체류한 다니엘 튜더는 저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 "친미적 경향과 친일 잔재에 맞서고자 한국의 좌파 세력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사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타국에서 좌파와 우파는 세금, 복지예산 등 평범(?)한 문제로 갈등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역사, 민족적 정체성, 분단현실이 얽혀있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보면 보수주의자들이 다문화의 유입과 공존을 반대할 것 같은데 현실은 달랐다. 진보 진영에서 '민족'을 강조하는데 맞서 보수는 (민족을 배반한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민족'과 '민족주의' 해체의 대안으로 다문화라는 카드를 내세웠다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보수든 진보든 누군가는 소외계층인 이주여성, 아동,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는 건 사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주민중에서도 전통적 여성상에 부합하며 사회구성원을 생산해낼 수 있는 다문화 가정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고 이주노동자에게는 오히려 가혹하다는 점, 비싼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리는 대학생들을 뒤로한 채 (자격요건 수학성적 80% 이상을 만족한) 외국학생 유치, 장학 지원을 아낌없이 베푸는 점 등은 다문화 정책의 모순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정부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배경을 쉬운 언어로 이해시키고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점에선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지만, 바람직한 대안 제시보다는 추상적인 답변, '그들이 아닌 우리의 문제'라 급격하게 마무리 짓는 부분은 비판과 분석은 잘하지만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나와 같은) 대중을 설득하여 결집시키는데 약한 진보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미국, 유럽 사례가 다양하게 인용되어 정치 관련 서적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책이니, 다문화에는 관심이 있지만 정치엔 관심 없던 분들께 추천한다.
p.38
스튜어트 홀의 지적처럼, 한 개인이나 집단의 성적, 계급적,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은 명사로서가 아니라 동사로서 규정된다. 정체성은 이미 만들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검증 과정, 거칠게는 '딱지 붙이기' 과정을 토대로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란 뜻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고 딱지 붙이고 차별하는 행위는, 지극히 사회적인 행동 양식이다. 개별적인 주체들의 주관적인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들의 공개적, 암묵적 합의에 의해 사회적 행동 양식으로 고착된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별 것 아닌 사소한 차이를 마치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로 인식하게 만드는 정치적, 사회적 기제가 작동한다. 그러므로 편견이나 차별은 한 사회에서 힘을 가진 주체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 의도적, 노골적으로 만들어낸, 철저하게 계산된 인식과 행동의 양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한 매우 의도적인 전략을 통해 차별과 편견이 생겨난다는 얘기다. 다만 겉보기에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
p.46
'다문화'란 다양한 민족이 품고 들어온 이국적이고 독특한 사물이나 도구, 행사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관점, 즉 인식의 방법에 대한 반성적 이해를 전제한다. 베트남 국수를 좋아하든 안 하든 그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머리에 커다란 흰색 꽃핀을 꽂은 여자아이, 역시 자신이 좋아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베트남 음식은 불결하고 추한 것이니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그러한 관점이 한 개인뿐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 보편적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사회적 문제다.
p.183
다문화 교육 정책을 벌이면서 정부는, 다문화 가족 아이들을 장차 두 나라 사이의 교두보 역할을 맡는 산업역군으로 키우겠다, 그래서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일꾼이 되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퍼뜨렸다. 이는 주류 사회에 다문화 정책이 왜 필요한지 설득하기 위해 꺼낸 말이긴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다문화 가족'의 입장을 대변하기는 어려운 주장이다. 그 아이들이 나중에 두 나라 사이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맡을지 말지는 그들이 나중에 선택할 문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대한민국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가 먼저 주어져야 하고,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다문화적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