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한입 더 - 철학자 편
데이비드 에드먼즈 & 나이절 워버턴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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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대담집이라 하여 읽기 전에 지레 겁먹은 건 사실이다. 15분짜리 영국 팟캐스트 <철학 한입Philosophy Bites>을 글로 옮긴 책이란 걸 알게된 후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은 귀로 듣는데 난 활자로 읽으니 좀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과연. 각 장의 분량이 많지 않아 집중도가 높았다. 한정된 시간(지면) 안에 각 철학자의 핵심사상이 쉽고 명료한 언어로 담겨 있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낭독하며 읽으면 더 좋을 듯 하다.

27편의 인터뷰 안에는 2500년의 철학사가 담겨 있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부터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니체, 사르트르 같이 이름만 잘 아는 철학자까지. 토마스 아퀴나스, 키르케고르 같은 신학자로만 알던 철학자부터, 몽테뉴, 애덤 스미스처럼 철학자인줄 몰랐던 철학자도 있었다.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는 몇해 전 한국을 놀라게 했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에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진행방식은 기획자인 데이비드 에드먼즈가 주인공 철학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인터뷰어 나이젤 워버턴이 질문을 던지고, 해당 철학자에게 공감하는 저명한 학자가 키워드를 쉽게 풀어 설명해 주는 문답 형태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설명되는 그의 논증과 저서 <성찰>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와 같이 아퀴나스의 <행복>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과 <중용>에 대해, 스피노자의 <정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에 대해 설명한다.

각 철학자의 아이디어의 장점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반박하기도 하고, 어려운 개념은 쉬운 비유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안경이 장밋빛이면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이 장밋빛일 수 밖에 없다는 비유로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실재에 대한 칸트의 입장을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건축가가 조수에게 던지는 "석판!"이라는 외침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의미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사용으로서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각 대담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은 철학자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 현 사회에 대한 시사점, 후대 철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을 화해시킨 아퀴나스, 경험에서 시작해 세계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한 데카르트, 개인적 차원에서 머무르던 철학을 사회적 현상으로 확장한 스피노자, 종교적 관용의 교훈을 준 로크, 화려한 파리에서 등을 돌려 시골에 정착함으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루소, 종교적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 정교한 이론적 체계를 구축한 칸트, 양측의 입장을 고려하여 대립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 헤겔, 신중하고 자율적인 삶이 '좋은 삶'이란 메시지를 던지는 존 스튜어트 밀, 후대에 정서적 울림을 선사하는 키르케고르...

​학창시절, 쉬운 철학입문서라던 <소피의 세계>도 채 완독하지 못하고 덮은 아픔이 있는 내게, 철학은 더 이상은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할 숙제와도 같았다. 이 책은 철학의 문을 살짝 열어 방 안을 엿볼 수 있게 해 줬다. 이제 읽어볼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로, 관심이 생긴 철학자들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루소의 <고백록>,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 어려워도 꾹 참고 철학 한 입만 더 먹어보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칸트의 진짜 관심사는 자유 속에서 믿음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 믿음, 특히 우리에게는 도덕(칸트가 생각한 바로는 전통적인 기독교 도덕)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로운 행위자가 아니면 도덕은 의미가 없습니다.

​칸트는 이 모든 믿음과 도덕을 자연 과학의 위협적 주장으로부터 지켜 내고 싶었습니다. 칸트의 시대에는 자연 과학이 정말로 위협적이었죠. 과학은 앞선 세기에 놀랍도록 발전했습니다. 특히 뉴턴의 업적은 거의 모든 것을, 어쩌면 모든 것을 순전히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음을 입증한 듯했습니다. 세계는 무정한 기계적 법칙이 만물을 지배하는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자유에 대한 믿음, 만물이 그 믿음과 조화를 이룬다는 믿음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 것 같았습니다.

​칸트는 이 정교한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우리가 과학의 위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자유에 대한 믿음을 굳게 고수할 수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사물이 안경을 통해 어떻게 보이는가와 사물 자체가 어떠한가에 대한 구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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