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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소설의 모티브가 된 동명의 이야기 <푸른수염>은
대저택에 혼자 사는 푸른수염에게 시집 온 어린 신부가 금지된 방에 몰래 들어가
살해된 전 부인들의 시체를 발견한다는 내용의, 아이들이 읽기엔 너무 수위가 높은 잔혹동화다.
노통브는 이야기를 각색해 현대판 푸른수염을 창조해 냈다.
저렴한 월세에 끌려
파리의 고풍스러운 저택에 입주한 여주인공 사튀르닌.
이전에 입주한 여덟 명의 여자가 모두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쿨한 척,
집의 안락함을 포기하지 못해 위험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벨기에 여인으로 나온다.
집주인은 스페인 귀족 출신이지만 세상과 담을 쌓고 저택에 은둔하는 돈 엘리미리오.
그는 결혼은 하지 않고 세입자를 바꿔가며 사랑을 고백하는 집주인이자
저녁 요리와 지난 여자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짓는 걸 즐기고 컬러에 집착하는 괴짜다.
이 둘이 매일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사랑(?)에 빠지고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금지된 방의 비밀은 조금씩 풀린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약간씩 일그러진 모습이다.
상처없는 사람은 없고, 악한 마음이 없는 사람도 없다지만
그가 그리는 인물은 그 비뚤어진 내면을 극대화해 보여 준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그렇다.
겉으로는 고상하게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 하지만 자기의 내면은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비밀을 알고 싶어 하면서도 듣고 싶어하지 않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사튀르닌.
자기만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살인도 가리지 않고,
죽더라도 컬렉션을 완성하려는 돈 에리미리오.
노통브 스타일대로 눈에 보일듯 이야기의 흡입력은 강하지만
막상 읽고 나면 저자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대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 곰곰히 되새기게 만드는 책이다.
사랑에 빠지는 건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현상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나마 설명이 크게 어렵지 않은 형식의 기적을 경험한다. 말하자면, 그들이 이전에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은 상대방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시한폭탄처럼 나중에 찾아오는 벼락같은 사랑은 이성에 대한 가장 거대한 도전이다. 돈 엘레미리오는 사튀르닌이 계란 노른자와 금의 결합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그녀에게 반하고 만다. 우리는 사튀르닌의 노여움을 이해할 수 있다. 고작 그런 걸로 사랑에 빠져? 사실, 돈 엘레미리오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따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니까. (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