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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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읽게 되는 소설이 있다. 아니, 결말을 알고 있기에 읽어야만 하는 소설.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

소설 속에서 리진은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낭독하고 나서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한다. 왜 우느냐는 질문을 받고서 그녀는 대답한다.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 마음도 그러했던 것 같다. 무언가에 마음을 뜨겁게 데인 것처럼 아팠다.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던 리진의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서사가 결말을 암시하듯, 슬프게 읽혔다. 그러면서도 그 슬픈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신경숙은 우연히 알게 된 역사 속의 인물, 프랑스 공사를 따라 조선을 떠난, 조선의 궁중 무희였던 여인에게 ‘리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 공사 콜랭이 한 눈에 빠져버릴 정도로 매혹적인 검은 눈, 붉은 입술, 그렇게 꽃과 같은 얼굴을 한 리진. 그녀가 춤을 추는 장면에선 숨죽여 읽어 내려가야 할 것만 같이 매혹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같고, “금빛 모래의 흩어짐”같은 그녀의 몸짓. 눈을 감으면 나비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고 한, 그리고 한 떨기 아름다운 꽃 같은 춤추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머무르고 싶지만, 그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떠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은 리진을 프랑스라는 낯선 곳으로 데려간다. 왕비의 얼굴도 강연의 대금소리도 그저 뿌옇게만 존재하는 낯선 공간에서 그녀의 외로움은 필연적이었다. 그녀는 낯선 나라, 자신을 그저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세상 속에서 꿈을 꾸듯 방황한다. ‘소인’이 아니라 ‘나’로 살 수 있었지만, 활기차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그저 외로운 이방인에 불과했다. 어느 때 가장 외로웠느냐는 왕비의 질문에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때 가장 외로웠다고 대답한다. 궁에서 길을 잃어버렸듯이, 파리에서도 길을 잃어버릴까봐 콜랭의 팔을 꼭 붙잡았던 그녀, 리진. 그녀가 우수에 찬 눈으로 콜랭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일까요.

시간이 날 때면 프랑스로 가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는 작가는 그녀가 정말 실존 인물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말 그녀는 존재했던 것일까. 정말 그녀는 누구였을까.

신경숙은 작가의 말에서 “리진이라는 여자를 복원시키는 일은 서로 완벽한 타자들이었던 존재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서로의 삶 속에 끼어들고 어떻게 친밀감을 느끼고 어떻게 서로를 구경하며 종내는 어떻게 생을 다하는가를 재구성하는 일이기도 했다.”라고 말한다. 소설 <리진>속에는 엇갈릴 수밖에 없는 슬픈 관계들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지만, 그저 바라보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운 이, 사랑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알기에 떠날 수밖에 없는 이, 그러면서 부칠 수 없는 편지를 매일같이 쓰는 이, 영원할 것 같던, 어디든 함께할 거라고 맹세하던 사랑이 어느 순간 식어버리는 이가 있다. 그들이 서로 바라보고 서로에게 스며들고,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순간 한 사람의 삶이 꽃처럼 지고, 나비처럼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아스라이 스며드는 슬픔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를 루브르에 데려가세요.”라고, “나를 노트르담 대성당에 데려가세요.”라고 끝없이 이어지는 장소를 대며, 애달프게 말하던 여인. 마치 한 마리 나비처럼, 꽃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춤을 추던 매혹적인 여인, 떨리는 목소리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낭독하던 여인, 사랑이 식어버린 남자에게 이미 많은 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여인,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서 외로웠다고 말하는 여인, 리진.

백 여 년 전의 한 여인이, 과거 속에서 잊혀질 뻔 했던 여인이 ‘리진’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프랑스 공사의 부인이었던 조선의 궁중 무희,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는 소설의 매혹적인 모티프가 되어 우리 곁에 왔다. 한 여인의 삶에 허구로 덧붙여진 그 매혹적인 이미지들은 “먼지 같고 풀 같고 구름 같은” 삶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느끼는 과정에 관한 아픈 은유처럼 여겨진다.

나는 누구일까요. 이제, 백 여 년 전의 한 여인을 나는 이렇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뜨겁지만 고통스러운, 단 하나의 문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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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헤르만
라르스 소뷔에 크리스텐센 지음,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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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정말 모든 상처를 치유해줄까?”

책의 뒤표지에 적힌 말을 보고 나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나를 아프게 할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러면서도 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시간

한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바보처럼. 그때의 나는 시간이 그저 빨리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랐고, 어서 나이를 먹기를 바랐다. 그때의 나는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아 질 거야, 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정말 그때의 나는 시간이 모든 상처를 치유해줄 거라 믿었던 걸까.

잠들기 전, 생각에 잠기는 헤르만. 불을 켜놓았는데도, 매일 밤 헤르만에게 다가오는 생각들은 도무지 끊이질 않는다. “시간이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는 게 사실일까?” “시간은 오는 걸까, 아니면 가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일까?” 헤르만의 이웃, 술병 아저씨에게는 키우는 거북이가 있는데 거북이의 이름은 ‘시간’이다. “시간이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헤르만은 말한다. “시간은 상추 잎이나 먹지 나한테는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그랬다. 시간은 그저 헤르만의 머리카락을 앗아가기만 했다.

어느 날 문득 아이의 머리카락이 빠져버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다. 삶 속에 숨어 있던 어떤 차가운 진실을.

#당신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준 순간

책을 읽으며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조카가 생각났다. 아마도 헤르만이 모자로 감추기만 했던 자신의 치부를 처음으로 드러내 보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따뜻했던 순간에 나는 처음으로 이 세상에 발을 디딘 연약한 한 아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그 아이는 잠들기 전 보챌 때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곧 잠이 들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그 아이도 느끼는 걸까. 새근새근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잠으로 빠져드는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나는 끝없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졌다. 앞으로 이 아이에게 펼쳐질 삶이 언제나 이처럼 평온하기를 바라면서.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 따뜻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직은 연약하게만 보이는 한 아이에게 온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그 순간이. 그리고 그 순간 어쩌면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소설의 구성은 가을, 겨울, 봄으로 되어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쓸쓸한 가을에서 하얀 눈이 고요히 세상을 뒤덮는 겨울, 그리고 따뜻한 빛이 부드럽게 온몸을 감싸는 봄.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헤르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끔찍한 시간들에서 자신의 상처를 이제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시간에까지 이른다. 가을에서 겨울이 되는 시간, 가장 고독해졌다가도 다시 겨울에서 봄이 되는 시간, 어쩌면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되는 것처럼. 끝없이 침잠해 내려갈 것 같던, 겨울의 시간들을 뒤로 하고 그래도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 같은 따뜻한 봄빛이 내려앉을 때 그래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시간’을 믿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스한 손길 같은 ‘시간’ 의 힘을. 


#나의 H


루비의 책상에 새겨져 있는 H를 보고 헤르만은 상상하기 시작한다. 호콘 왕? 황태자 하랄? 당신의 H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헤르만을 떠올릴 것 같다. 그저 조용히 쓰다듬어 주고 싶은 아이, 그래서 내 생의 어떤 연약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헤르만. 매번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 눈물이 나오는 것을 샴푸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줄 아는 아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에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를 선물로 안겨주는 아이. 그리고 비참한 생에 유머로 저항할 수 있는 조숙한 아이, 헤르만.

그런 헤르만을 만나고 나면 어떤 시간들이 겹쳐져 온다. 그 많은 시간들이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다가온다.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너무나 쓸쓸한 고독을 맛보아 버린 시간들. 이미 길들여져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끔찍하다고 여기는 어떤 순간들, 그리고 삶에 새겨진 짙은 고독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할 시간들. 머리카락이 떨어지듯,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어떤 차가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 시간들......

시간이 정말 모든 상처를 치유해줄까.
헤르만을 만나고 나서, 나는 그것이 다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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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신기한 그림 세상 I need 시리즈 13
조이 리처드슨 지음, 샬롯 보크 그림, 노성두 옮김 / 다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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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기를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그림 보는 재미를 알려주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미술관에 데려가서 그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아이의 흥미를 끌기 힘들 것이다. <그림 속 신기한 그림 세상>은 아이들을 그림 속으로 안내하는 근사한 길라잡이다. 단순히 그림과 화가에 대한 안내를 넘어서서,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재미난 정보들을 들려준다. 그림 감상보다 더 재미있는 그림 이야기와 미술관에서는 알 수 없는, 미술 선생님도 이야기해주기 힘든 재미난 이야기들이 책 속에 가득 들어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지만 어른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여느 미술책처럼 연대기식 구성을 따르지 않아 흥미 있는 부분부터 읽어 가면 된다. 책을 펼쳐 들면 성서나 역사 속 이야기들을 그린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그림에 사용된 특수효과와 구성,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과 그림 그리는 데 쓰이는 재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저자는 그림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풀어내며 그림 속 신기한 그림 세상으로 안내한다.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가지고 있는 그림을 보여주며 그림을 읽어내는 몇 가지 열쇠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거나 적외선으로 촬영된 그림을 보여주며 실제 그림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알고 있었던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에 놀라기도 하고, 그림을 보는 새롭고 다양한 방법들에 새삼 감탄하게도 된다. 


일상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낸 17세기 네덜란드의 그림들을 보면서 성서 이야기나 신화를 담아낸 고대의 그림들의 장엄한 주제에서 벗어난 평범한 그림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고, 그림의 구성이나 특수효과를 통해 화가가 어떤 시각적 효과를 노렸는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렇게 이 책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림에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에 관해 어린 독자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질문거리를 던져준다. 그림에 숨겨진 상징물들, 그림에 숨겨진 다양한 속뜻, 그림의 구성이나 시각적 효과 등의 다양한 질문거리 들은 그림에 대해 좀 더 다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그림 속으로의 신기한 여행으로 초대하는 흥미로운 초대장이 된다.


책의 구성 또한 그림 속으로의 여행에 흥미를 더한다. 이미 나왔던 그림들 속에서 질문거리를 다시 던져주거나, 그림의 한 부분들을 잘라내고 확대하여 그림을 보는 주의 깊은 방법들을 넌지시 일러주기도 한다. 그래서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더 책을 읽으면 저자가 말해주는 그림 속의 비밀들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된다.  


이 책에는 신기한 그림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림 밖의 흥미로운 이야기도 담겨 있다. 미술관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으며 초기의 그림 전시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또한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그림의 용도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이 책은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시시콜콜한 궁금증을 흥미롭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미술관이라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공간이 호기심 가득한 공간으로 바뀌는 체험을 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그림 속 신기한 그림 세상>은 그림 감상을 위한 친절한 선생님이다. 그리고 미술과 친구가 되기 위한 멋진 안내자다. 아이들이 미술관에서 좀 더 오래 그림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해 자신만의 감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근사한 길잡이다. 그림 속에 감추어진 비밀들이 얼마나 근사하고 신기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줌으로써 그림 속 신기한 그림 세상으로 초대하는 책. 그림을 보고 느끼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이처럼 재미난 정보를 들려주는 책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술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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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집을 찾아서 한젬마의 한반도 미술 창고 뒤지기 2
한젬마 지음 / 샘터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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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운보의 집에 다녀왔던 적이 있다.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김기창 화백의 그림들을 천천히 감상했었고, 운치 있는 분위기 속에서 고즈넉한 상념에 젖어들기도 했다. 고요한 시간이었고 운치 있는 여행이었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그곳에서 느낀 것은 한 화가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어쩌면 그가 머물렀던 곳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것도 같다. 내가 그 날, 보았던 것은 어쩌면 한 화가가 남겨놓고 떠난 마지막 창조의 근원은 아니었을까. 돌아오고 나서 나는 평생 듣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했던 화가, 침묵의 세계 속에서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화가 김기창 화백을 떠올렸다. 그렇게 운보의 집은 내게 운치 있는 여행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한 화가의 삶, 그 화가가 남기고 간 풍경으로 기억되고 있다.

 

한젬마는 지금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이 땅에 스며있는 화가들의 흔적들을 찾아 떠난 기나긴 여정을 <화가의 집을 찾아서>라는 책으로 펴냈다. 모네의 집이나 고흐의 집에는 가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이 땅의 화가들의 생가에는 관심조차 갖지 못했던 문화적 풍토에서 이러한 기획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반가움이 앞서는 책이다. 그녀의 글을 읽지 않더라도 이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이 있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경제 논리에 의해 예술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고, 우리의 문화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은 그 여정을 더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젬마는 온갖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우리 미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힘들게 완성해냈다. 그녀에게 먼저 찬사부터 보내고 싶은 이유는 누군가는 꼭 했어야 할 일을 해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미술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에 대한 각성의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전국의 구석구석을 밟는 그녀의 여정은 여행의 길동무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갈 수도 있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리고 생소한 화가와 마주칠수록 우리 미술에 대한 무지를 실감하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예술가들에 관해 내가 얼마나 무관심했었는지를 느낄 때마다 뜨끔한 기분을 느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화가의 생가가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은 사실 앞에선 내 무관심이 그렇게 황폐하게 내버려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에는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를 중심으로 화가의 생가에서 미술관 그리고 화가의 자취가 조금이라도 남겨져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다닌 한젬마의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운보의 그림 속에 표현된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 운보의 집에서는 “호탕하고 자신감 넘치는 한국의 자연과 정서를 담아낸 그의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다. 한 사람만으로도 꽉 차는 방에 머물렀던 장욱진의 방에서는 작은 것을 사랑했던 화가를, 유영국이 즐겨 찾았다는 마을 앞 바닷가에서는 화가가 느꼈을 기다림의 깊이를, 부단한 자기 성찰 속에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기도 한다. 그녀의 발끝이 닿는 곳에서 우리는 화가가 거쳐 갔던 사람들, 공간, 그리고 그 화가의 삶을 그려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으레 화가나 작품 중심이기 싶던 미술서에서 벗어나, 화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화가의 생가까지 답사함으로써 화가와 작품 이해에 있어 보다 깊이있고 생생한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글은 화가를 향한 여정 속에 자신의 작품 이야기와 화가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들을 곁들임으로 해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여행의 분위기를 그녀만의 발랄함과 깊이로 채워 넣었다.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이기에 먼저 떠나간 화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진한 교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교감을 바탕으로 한젬마는 자신의 작품들이 선배 화가들에게서 부단히 영향을 받은 결과물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 화가들이 남기고 간 작품들과 교감하고 끊임없이 영향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화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산물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화가들이 남긴 흔적들을 좇으며 우리의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그들이 남기고 간 작품들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한젬마의 여정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문화란 바로 우리 삶의 모습을 담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의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를 생각해보는 거울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한젬마의 여정은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 삶의 자취를 더듬어보는 기행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미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굳이 화가의 생가까지 찾아갈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화가들에 대한 관심을 부여하기 위한 동기로서만 이해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흐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방에서 고흐의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그래서 그의 그림에 표현되는 고독을 느낄 수 있거나 모네의 집에서 모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자연을 느낄 수 있다면, 또는 운보의 집에서 운보 김기창이 그의 그림 속에 담아내고자 한 한국의 자연과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화가와의 만남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생가는 그 작가에 대한 보다 원론적이고 본질적인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고 한젬마가 말하는 것처럼, 화가가 머물렀던 집은 화가와 화가가 남긴 그림들에 대한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공간이다. 화가의 집은 단순히 화가가 머물렀던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화가의 창조적 근원이기도 하고, 화가가 그림 속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수도 있다. 우리가 집에서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삶을 우리의 집에 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화가의 생가를 찾는다는 것은 화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화가에 대한 이해는 미술관에서 끝내기에 아쉬운 부분들이 너무도 많다. 미술관에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 책 속에서 찾았을 때, 때때로 흥분하기도 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미처 알지 못했던 화가들을 만나고 화가들의 자취를 찾아가볼 수 있어서 편안하고도 흥미로운 여행이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씁쓸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던 건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자연스레 떠올려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고흐의 집이나 모네의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우리 화가들의 흔적에 대해 궁금해 본 적이 얼마나 많을까. 외국의 유명한 화가들의 집이 관광명소가 된 것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얼마나 미약한가. 관광 명소로 개발하기에 앞서, 한젬마의 지적처럼, “수익적인 면보다는 왜 그러한 보존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장욱진 고택을 문화재로 등록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단순히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받는다는 이유로 반대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이해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미술관 가는 것을 즐겨한다고 생각했음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생소한 화가들의 이름에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두었던 내 편협한 취향 탓도 있다. 나의 가까운 곳에 우리 화가들의 흔적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지역에 어떤 화가들의 자취가 남겨져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화가들이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부터 우리 미술이 자라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반가운 기획이고 칭찬받아야 할 결과물이지만, 이 책에서 못내 아쉬웠던 것은 책의 내부적인 것이 아니라, 책의 외부적인 데 있었다. 그것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부실한 위치에서 존재하고 있는 우리 미술에 대한 위기감이었다. 한국 미술의 대가들을 따라간 여정이었음에도 자료가 부족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미술이 얼마나 허술하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인 것이다. 다시 한편으로는 그러한 위기감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이 한젬마의 여정이 거둔 수확일수도 있겠다. 미술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서양미술에 치우쳐져 있는 현재의 문화적 여건에 대한 반성의 시각과 아울러 우리의 문화적 토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작은 관심에서부터 점차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우리의 화가들에 대한 자료와 유적들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고 보존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이 거둔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미술과 우리의 화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한 작은 관심 속에 우리 미술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한젬마의 힘들었던 여정이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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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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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다. 아니, 달콤하지 않다. 달콤하게 나아가는 정이현의 문장들에 빠져 읽다가 어느새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후줄근한 모습으로 마주친 옛 애인 같은 느낌이랄까. 소설 속 일상은 경쾌한 느낌의 문장들과 자주 어긋난다. 크림 듬뿍 들어간 커피를 마시는 듯한 문장들 속에서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일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라니. 정이현의 노련하면서도 영리한 감각들에 감탄을 해야 하는 건지, 몇 잔의 술과 적당한 자기변명으로 살아가는 도시인의 일상에 서글픈 공감을 해야 하는 건지 자주 헷갈린다.


눈에 착착 감기는 문장들로 삼십대 초반의 일상이 묘사된다. 서른하나에서 이제 서른둘로 넘어가는 시기의 일과 사랑, 스무 살 때 품었던 삶에 대한 달콤한 기대가 조금씩 무너져가는 시간의 일상이 그려진다. 삼십대 초반의 미혼 여성 오은수의 이야기는 바로 이제 서른을 넘어선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이다. 뜨거운 열정이나 사랑은 서랍 속에 쌓아둔 지 오래고 직장과 집을 왔다갔다 거리며 남들처럼 평범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 위해 애쓰고 비슷비슷한 고독과 슬픔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들... 사랑과 일, 그것을 둘러싼 일상의 풍경 모두 왜 그렇게 비슷비슷한 걸까. 아니, 이럴 땐 너무 적나라하다는 표현을 해야 하는 걸까. 그녀가 묘사하는 풍경이 어쩜 이렇게 지독하게 공감이 되느냐 말이다. 그 절절한 공감 뒤엔 또 어찌나 쓰디쓴 맛이 남는지. 서른을 넘어선 사랑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일상도.    


서른을 넘어선 사랑은 너무 뜨겁지 않아서, 너무 무모하지 않아서 싱겁다. 안정된 직장을 찾는 것 마냥 결혼 상대자를 고르고, 친구의 결혼 소식에 요상한 기분이 드는 게 너무나 정상적인 삼십대 초반. 그래서 미래가 불안한 연하남과의 연애는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어긋나고 만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자와의 연애는 무언가 강렬하게 뜨거운 것이 없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불안정한 미래에 모험을 거느니 밋밋하지만 안정된 생활을 택하는 게 서른을 넘어선 사랑의 모습 아니겠는가.  


서른을 넘어선 일상 또한 싱겁긴 마찬가지다. 이젠 더럽고 치사한 일이 있어도 눈물 흘리지 않을 정도의 여유는 갖추게 되었지만 술에 취해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들을 저지르는 건 여전하다. 뒤에서는 수군거리지만 정작 앞에서는 할 말 못하는 거야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고 아무리 더러운 일이 있어도 과감히 사직서를 날리는 데는 무진장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알량한 자존심과 지독한 현실주의 속에서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은 직장 생활이야 그렇다 치고 옛 애인의 결혼식 날 불러낼 마땅할 사람 하나 없는 초라한 인간관계와 그 속에서마저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길들여진 외로움은 또 어떠한가. 도시인의 일상이란 것이 이토록 외로운 것이었나, 하는 새삼스런 자각이 스며든다. 친한 친구에게조차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를 주저하면서, 포장된 마음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그렇게 공허한 외로움 안에서 도시의 삶이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공허한 외로움으로 채워져 있는 도시인의 일상에서 결혼 또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리 없다. 그저 비슷해지기 위한 절차 같은 것.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 의미 없는 비슷한 만남들 같은 비슷비슷한 것들이 흘러넘치는 과잉의 도시 속에서 삼십 대 초반 오은수, 그녀 또한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결혼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좀처럼 알 수 없는 결혼이지만, 그것의 바깥에서 영원히 머무를 자신이 없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듯이 안정된 생활 속에 편입하고픈 욕구. 평범하지만 평범하다고 탓할 수 없는 그런 욕구. 왜 모르겠는가.


오은수는 생각한다. 내 삶에 내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좋겠다고.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하나 없는 서른둘이라고 해도 지금은 어느 쪽으로 가라고 알려주는 내비게이션만 있다면 그리 우울하지는 않을 텐데. 지금 이 길이 맞는 건지, 아니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길로 들어서긴 한 건지.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해도, 방황의 이십 대를 지나 삼십대를 넘어섰다 해도 인생이란 여전히 그 길을 알 수 없는 미궁의 연속이다. 두 남자와의 사랑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운 길을 앞두고 있는 그녀. 어떤 길을 가게 되고 어떤 길을 맞이하게 될까. 가끔은 신호 위반을 하더라도, 속도 위반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경로로 가고 있다고 속삭여주는 내비게이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정이현의 문장은 감각적이다. 두꺼운 분량임에도 지루할 틈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나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나를 콕콕 찌르는 일상들이 다가온다. 스노 팰리스가 아닌 스노우 펠리스에 사는 205호 여자 오은수처럼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305호 여자일 수도 있고, 405호 여자도 될 수 있는 내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갈팡질팡하는 오은수 그녀처럼 늘 삶의 중요한 기로에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서성이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메신저 창은 항상 열어놓고 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쏟아내지 못하는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만 같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고 나면, 엉뚱하게도 크림 듬뿍 얹은 커피를 마신 것 같다. 마실 땐 달콤하지만 잔이 비워질 때쯤이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 그런 커피를 마신 것만 같다. 그렇게 지독한 공감 뒤엔 씁쓸한 맛이 남는다. 서른의 일상에 대한 쓸쓸한 무게감이 엄습한다.


나의 달콤한 도시 속엔 너무나 씁쓸한 나와 당신이 들어 있다. 지금 내가 일상을 누리는 이 곳, 비슷한 표정의 사람들과 비슷비슷한 친절과 비슷비슷한 만남들이 흘러넘치는 이 곳. 그렇지만 정작 내 삶의 알맹이들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이 곳. 그래서 늘 갈팡질팡하는 내가 들어 있는 곳, 바로 이 곳이 나의 달콤한 도시다. 그리고 달콤하지 않은 나의 도시다. 어쩌면 달콤하게 포장된 내가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를 그 곳.


달콤한 나의 도시엔 달콤하지 않은 나와 당신이 너무 많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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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1-2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합니다. - 알라딘 마을 아프 -

ALINE 2006-11-27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