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너무 깨끗하면 고기가 살지 못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고, 나무가 너무 곧으면 그늘이 지지 않는다. 정사가 지나치게 까다로우면 인재가 모이지 않는다는 걸 위정자는 깊이 명심해야 한다. “저기에 버린 볏단이 있으며, 여기에 버린 벼이삭이 있으니 이는 과부의 이득”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러한 일들까지 정치가 너무 간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拾遺] “저기에 버린 볏단이 있으며 여기에 버린 벼이삭이 있으니 이는 과부의 이득이로다彼有遺秉. 此有滯穗. 伊寡婦之利”는 구절은 『시경』 「소아小雅·대전大田」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팔관八官」편에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하고 사람이 너무 살피고 따지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水至淸則無魚, 人至察則無徒”라고 하였습니다. 또 양梁나라 악부樂府 「자소마가紫騷馬歌」는 “나뭇가지 하나는 재목이 되지 못하고 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獨柯不成材, 獨木不成林”고 하였습니다. 『후한서後漢書』 「최인전崔傳」에는 “높은 나무들만 가득하면 그늘이 지지 않고 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蓋高樹靡陰, 獨木不林”고 하고, 「반초전班超傳」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반초는 무예가 뛰어나 명제明帝 때 오랑캐 50여 나라를 복속시켰습니다. 그 공으로 서역 도호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는데, 반초가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반초는 이렇게 말했지요.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이가 없다水至淸卽無魚, 人至察卽無徒.”
반초는 이 말로 임상의 급한 성격을 지적하고, 정치도 너무 엄하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으므로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릴 것을 충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임상은 이 충고를 따르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습니다. 그 결과 반초가 복속시켰던 50여 나라는 임상이 다스린 지 5년 만에 모반을 일으켜 한나라를 떠났으며,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지요.
위정자가 지나치게 청렴결백하여 작은 허울까지 지나치게 살피고 따지면 인재가 모여들지 않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눈을 감고 귀를 덮을 필요가 있나 봅니다.

 

 

 

 

 

 

언지만록 136조 중에서

 

<언지록>(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 알렙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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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의 달인과 공자

 

공자가 『논어』에서 통달한 사람은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안색을 잘 살피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생각한다”고 했는데, 처세법으로 이 두 구절만 한 것은 없다.

 

 

 

[拾遺] 『논어』 「안연」편 제20장은 이렇습니다.

 

자장이 여쭈었다. “선비는 어떻게 하면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것이 무엇이냐?”
자장이 대답하였다. “나라 안에서도 반드시 명성이 있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명성이 있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명성이 있는 것이지 통달한 것이 아니다. 통달한다는 것은 본바탕이 곧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안색을 잘 살피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생각하여 나라 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하는 것이다. 명성이 있다는 것은 겉모습은 인을 취하면서도 행실은 인에 어긋나고 그렇게 살면서도 의심조차 없어서 나라 안에서도 명성이 있고 집안에서도 명성이 있는 것이다.”  

<언지만록> 212조

 

[언지록](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 알렙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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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보다는 포용력을 갖추어라

 

 

사람은 재능이 있어도 도량이 없으면, 사람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도량이 있어도 재능이 없으면, 일을 성취할 수 없다. 재능과 도량, 이 양자를 겸비할 수 없으면, 차라리 재능을 버리고 도량이 있는 인물이 되고 싶다.

 

[拾遺]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의심하고 대하는 인간은 남이 자신을 속이기 전에 먼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다. 마음이 너그러운 자는 춘풍이 부드러운 입김으로 수목을 키우는 것과 같으며 만물이 이로 인해 생장한다疑人者, 人未必皆詐, 己則先詐矣. 念頭寬厚的, 如春風煦育, 萬物遭之而生.” 

<언지만록 125조>

 

<언지록>(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 알렙 펴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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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없으면 용기가 생긴다

 

스스로의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면 무아의 경지다. 설령 천만인의 상대가 있다손 쳐도, 자신은 혼자서라도 가는 때는 용기가 있는 때로 그 어떤 부귀도 위세도 안중에 없기에 무욕의 경지이다.

 

 

[拾遺] 『맹자』 「공손추상」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옛날에 증자가 제자인 자양에게 말했다.


“그대는 용기를 좋아하는가? 나는 용기에 대해서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다.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서 옳지 않다면 누더기를 걸친 비천한 사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고,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서 옳다면 천군만마가 쳐들어와도 나아가 용감하게 대적할 수 있다.”


昔者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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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文, 행行, 심心은 학문을 하는 세 가지 단계이다

 

배움의 도는 하나다. 그러나 학문을 하는 단계는 세 가지이다. 처음에는 옛사람의 ‘문장文’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옛사람의 ‘행실行’을 배우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마지막에는 옛사람의 ‘참된 정신心’을 배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처음에 옛사람의 문장을 배워야겠다는 뜻을 세운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옛사람의 참된 정신을 배우겠다고 한 것은 자신이 뜻한 학문을 성숙시키겠다는 증거이다. 때문에 학문에는 세 가지의 단계가 있으나, 본래 각자가 따로따로인 게 아니라 시종일관 마음으로 마음의 학문을 하기에 세 가지 단계는 있으면서도 없다.

 

[拾遺] 『논어』 「술이」 제24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가르치셨으니, 학문과 행실과 성실과 신의이다子以四敎: 文, 行, 忠, 信.”

 

언지질록 제1조

 

<언지록>(사토 잇사이 지음, 노만수 옮김, 알렙 펴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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