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의 발견]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 4주년을 맞았습니다. 2025년 봄호의 특집을 ‘헌법의 순간’으로 정하고 출간 준비를 하면서, 1년 전 2024년 봄호를 다시 꺼내봅니다. 창간 3주년이었던 13호의 특집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였습니다. 1년 만에 다시 정치적인 주제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번에는 특별히 ‘헌법’이라는 단어에 더욱 집중할 특별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헌법의 순간』『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히틀러의 법률가들』『독재의 탄생』등의 책을 통해 우리들은 또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3월 15일 출간 예정)

그전에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선거는 민주적인가』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지역정당』 등의 리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치 현상과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던 2024년 13호 기획을 다시 소개합니다.

📚 서리북 13호 단권 구매, 정기구독 신청은 네이버스마트스토어, 알라딘, 예스24에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URL을 눌러보세요!

👉13호 바로가기

https://smartstore.naver.com/seoulre.../products/10082398680

👉정기구독 신청 바로가기

https://smartstore.naver.com/seoulreviewofbooks2

본문 중에서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희생을 통해 쟁취했던 자유선거와 민주주의가 정말로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여겨 왔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꼼꼼히 읽어 봄으로써,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 부활시키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3쪽

주류 민주주의 이론은 대부분 브레넌이 절차주의로 분류하는 논변을 부분적으로라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주류 민주주의 이론은 많은 경우 민주주의가 여타 정치 형태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낳는 경향이 있을뿐더러, 인간의 자율성

실현, 정치 공동체 구성원 사이 평등의 구현 등 절차주의적 의의가 있다고 보는 혼합 논변을 견지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단지 ‘민주주의는 여타 정치 형태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가’가 아니라, 동시에 ‘민주주의가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송지우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 24쪽

저자들은 단순한 사례 열거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근거로 합법적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가 전복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고, 정치 지도자에게 독재자가 될 잠재력이 있는지 알려 주는 경고 신호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 둘째,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셋째,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넷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그것이다.

―유정훈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 31쪽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인식과 맞물려 돌아간다. 정치에 정답은 없고, 여러 가능한 답들 중에서 주어진 맥락과 환경에 적합한 답을 선택하는 작업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정기적으로 수행되는 선거는 ‘가치와 이념의 자유 시장’이다. (……)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각 정치 진영은 상대 진영을 절멸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긴다. 상대가 만든 법이라고 해도 그 법을 따르겠다는 태도, 우리가 졌다고 해서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겠다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뜻을 잘 읽고 설득하여 승리하겠다는 태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다른 정당들이 경쟁하는 방식이다.

―하상응 「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 47-48쪽

선거가 주요 정치 과정이 되면서 ‘우열’의 개념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대표성의 원리는 ‘나와 유사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주장될 수 있지만 결국 투표의 과정은 나보다 탁월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 결국 ‘나를 대표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은 재산 있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뽑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며, 이는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갖는 본질적인 불평등성, 즉 고대로부터 강조되어 온 “선거의 귀족주의적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나미 「‘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 57-58쪽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및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정치적 사건이 현대 정치가 직면하는 도전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고 진단한다.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민주주의의 후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정치의 위기는 존엄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름 아닌 ‘정체성 정치’ 시대이다.

―정회옥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 66쪽

이 책을 통해 우리는 K-민주주의가 실은 얼마나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에 미달하는지, 앞으로 치열하게 도전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정당은 다른 어떤 정치 제도보다 더 접근성이 높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정당에 가입해 그 의사결정과 일상 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당 자체를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역정당』이 소개하는 다른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처럼, 뜻을 함께하는 사람 셋만 모이면 정당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장석준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 79-80쪽

〈서울의 봄〉은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 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했다. ‘우리가 독재자와 싸워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가르치듯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부모 세대에게 불공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맞섰던 젊은 세대가, 〈서울의 봄〉이라는 강력한 이야기에는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정아은 「두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본 〈서울의 봄〉」, 92쪽

독자들이 미처 신경 쓰지 않는 영역을 세심하게 건드리는 북 디자이너의 노고는 조금씩 동시대 시각 문화의 질적 수준을 높여 간다. 1980-1990년대 한글 탈네모꼴 폰트를 제안하고 실천했던 디자이너들의 유산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1980-1990년대 한글 탈네모꼴은 출판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다.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탈네모꼴이 획득한 시대정신은 분명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벗어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의 실험정신이자, 한글 자체가 지닌 조형적 원리에 입각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방법론에 대한 열망이었다.

―정재완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 103쪽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으로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는 2022년 11월 14일 첫걸음을 떼었다. (……) 창간호를 준비하는 과정 동안 무엇보다 《너머》의 편집 방향에서 중심축이 되어야 할 ‘디아스포라’에 대한 통념뿐만 아니라,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해를 다듬어 나가는 공부를 했다. 특히, 그들의 언어가 ‘국어/모국어/모어’의 다층적 층위에서

통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했다. 그리하여 낯선 타방에서 한글 공동체가 직면한 역사의 격동 속에서 한글 사용이 점차

어려워지고 정치적 억압과 금기로 한글 사용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그들의 문학이 단절되지 않고 있는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었)다.

―고명철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 105쪽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서다. 그것도 본격적인 소개서라기보다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서 인생 교훈을 끌어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학술서를 평가하듯이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깊이 있고 창의적인 해석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그런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다.

―박찬국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117-118쪽

광해군의 일생은 어떤 이유로 연구할 가치가 있을까. 특이하게도 왕위에서 쫓겨난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으로

는 노산군(단종)과 연산군도 있으니, 광해군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 광해군을 어떻게 평가하든, 광해군 시대가 조선사의 변곡점이라는 데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과연, 광해군은 조선사 전체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일까. 창문이라면 어떤 창문일까.

―김영민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의 재검토」, 129쪽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는 우리의 오랜 시장이었다. 우리 기업은 그곳에서 얻은 기회를 통해 양적·질적으로 성장했고, 그것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경쟁은 치열해지고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렇기는 해도 아직도 그만큼 역동적인 시장은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걸프 국가는 아직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 걸프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장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이 쓴 책 세 권을 골라 필요한 부분을 연결해 가며 읽었다.

―박인식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 164-165쪽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도 꽃들은 그저 피어나 어디서든 잘 자라고 있다. 자연은 불러 주는 이름이 없이도 서로 어울려 잘 지낸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즉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름을 불러 주거나 비슷한 것끼리 모아 합리적으로 분류했다는 이유로 생명에 갑자기 없던 생명력이 생기거나 가치가 더 높아질 리 없다. 거꾸로 이름을 빼앗겼다고 하여 분류학에 투신했던 학자들의 노고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우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 186쪽

옐런은 과거와는 달리 정치적 고려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퇴행인지 발전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나 경제의 최고 책임자라는 자리가 정치와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 옐런이 금융 위기,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연준과 재무부에서 내린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지는 것을 막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초래했다. 그런 점에서 옐런의 경험은 잊혀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신현호 「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 199-200쪽

출국하는 날 책 두 권을 넣은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불안은 수백만 톤에 달하는 기계가 허공에 떠 있음을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니 현재 상황을 의식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주위를 완전히 잊은 경험은 책에 몰입했을 때뿐이었다. 생각이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 의아했다. 영화가 아니고 책? 그렇다. 영화가 아니라 책. 당신을 떠올린 것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부희령 「비행 공포」, 204-205쪽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사랑한다’에 이어 ‘사랑할 만하다’라는 말을 한다. (……) 내가 사랑하는 숲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만한 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바란다. 카스탈리엔의 유리알 유희가 문화의 쓸모를 논하는 사람들에 맞서 섬세하게 지켜야 할 기예였듯이, 여기에도 가치가 있다고, 한 사람이라도 많이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고.

―심완선 「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217-2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의 발견]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 4주년을 맞았습니다. 2025년 봄호의 특집을 ‘헌법의 순간’으로 정하고 출간 준비를 하면서, 1년 전 2024년 봄호를 다시 꺼내봅니다. 창간 3주년이었던 13호의 특집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였습니다. 1년 만에 다시 정치적인 주제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번에는 특별히 ‘헌법’이라는 단어에 더욱 집중할 특별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헌법의 순간』『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히틀러의 법률가들』『독재의 탄생』등의 책을 통해 우리들은 또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3월 15일 출간 예정)

그전에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선거는 민주적인가』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지역정당』 등의 리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치 현상과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던 2024년 13호 기획을 다시 소개합니다.

📚 서리북 13호 단권 구매, 정기구독 신청은 네이버스마트스토어, 알라딘, 예스24에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URL을 눌러보세요!

👉13호 바로가기

https://smartstore.naver.com/seoulre.../products/10082398680

👉정기구독 신청 바로가기

https://smartstore.naver.com/seoulreviewofbooks2




2024 봄호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서울리뷰오브북스 편

송지우·유정훈·하상응·이나미·정회옥·장석준

정아은·정재완·고명철·박찬국·김영민·박인식

정우현·신현호·부희령·심완선 지음

232쪽|신국판 변형(140×225)|무선|15,000원|2024년 3월 15일

ISSN 2765-1053 41ISBN 979-11-89333-77-5 (03300)

국내도서 > 인문학 > 학회/무크/계간지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3주년

민주주의와 선거를 들여다보는 여섯 편의 전문 서평,

‘특집 리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부터 『자연에 이름 붙이기』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루는 다채로운 ‘리뷰’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요청 아래 2020년 12월 창간준비호(0호), 2021년 3월 창간호(1호)로 출발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 3주년을 맞았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첫발을 뗀 창간 예비호부터 12호까지, 지난 3년간 《서울리뷰오브북스》는 77인의 필자가 참여하여 156편의 서평을 통해 198권의 도서를 리뷰했다. 서평을 통해 독자와 책을 잇고, 그럼으로써 한국 사회의 지식 공론장을 확장하는 데에 기여해 온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계속해서 깊이 있고 다채로운 서평들로 독자들에게 보답하며, 단단한 서평 문화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계속 정진할 것이다.

창간 3주년을 맞아 펴내는 13호의 특집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이다. 2024년은 사상 최대의 ‘선거의 해’로 꼽힌다. 60여 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열리고, 올 한 해 선거를 치르는 국가의 인구가 전 세계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전 세계가 선거로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팽배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런 민주주의의 위기를 직시해 보았다. 정치 및 정치학 분야의 전문가 6인의 특집 리뷰를 통해 민주주의와 선거 제도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읽으며,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과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다.

정치철학, 법찰학, 인권학의 교집합을 연구하는 송지우 편집위원은 제이슨 브레넌의 문제작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리뷰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 응답한다. 지속적으로 미국 정치를 소재로 글을 써온 유정훈 편집위원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통해 민주주의 위기 신호를 진단한다. 하상응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는 『민주주의 공부』 리뷰에서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와 원리, 포퓰리즘의 문제를 살핀다. 이나미 생태적지혜연구소 학술위원은 급진적/대안적 민주주의 이론의 핵심 텍스트인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읽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선거와 추첨을 재론한다. 정회옥 교수(명지대 정치외교학과)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21세기 정치의 핵심 화두 중 하나인 ‘정체성 정치’의 문제를 다룬다.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지역정당』 리뷰를 1962년 체제에 머물러 있는 ‘K-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짚으며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열쇠로 ‘지역정당’을 제안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와 성찰은 영화 리뷰 코너 ‘이마고 문디’에서도 이어진다. 이번 호에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쓴 정아은 작가가 지난해 극장가 최대 화제작이었던 〈서울의 봄〉을 리뷰한다. 정아은 작가는 〈서울의 봄〉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한 점을 호평하며, 내전과 정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영화를 다시 들여다본다.

리뷰 코너에는 서점가에 쇼펜하우어 열풍을 불러온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부터,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모후의 반역』,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를 조망하는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중동 경제 3.0』·『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있게 한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 미국 재무부 장관 자넷 옐런의 전기 『자넷 옐런』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채롭게 다루었다. 철학, 역사, 경제, 생물학을 아우르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서평들을 리뷰 코너에 담았다.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꼼꼼히 읽어 봄으로써,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 부활시키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중에서

1991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했다. 민주주의는 가장 공정하고 효과적인 체제로 여겨졌으며, 그 위상과 신뢰도 더없이 높았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은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선거로 뽑힌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있으며, 상호 존중에 기반한 대화와 타협이라는 규범이 무너지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져 있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은 민주주의와 선거가 가장 좋은 제도인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낳는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불안과 혼란이 팽배한 지금,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러한 질문들에 저마다의 답을 제시하는 여섯 권의 책을 골랐다. 이들 여섯 권의 책과 6인의 전문 필자가 쓴 서평을 통해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과 미국의 경험,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와 가치, 선거 제도에 대한 비판적 검토, 정체성 정치, 지역정당 등 ‘민주주의와 선거’ 대한 다층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송지우 편집위원은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에서 정치철학자 제이슨 브레넌의 도발적인 문제의식이 담긴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리뷰한다. 송지우는 민주주의에 반대하며 에피스토크라시(지식인에 의한 통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주장을 치밀하게 검토한다. 그리하여 보다 급진적인 민주주의 실험보다 에피스토크라시를 먼저 시도할 명분이 부족함을 지적하며,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함에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를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로 위치시킨다.

“그래서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유정훈 편집위원은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에서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정훈은 미국의 경험에 기초한 책을 한국의 현실과 교차해 읽으며, 선거로 시작되는 민주주의 붕괴 현상을 분석한다. 또한,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한 해법의 모호함은 저자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길 것이 아니라, 각자의 현실에 맞춰 스스로 찾아야 할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주주의에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하상응「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에서 정치철학자 얀-베르너 뮐러의 『민주주의 공부』를 소개한다. 하상응은 저자를 따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자유와 평등부터 포퓰리즘의 개념,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기 위한 전투적 민주주의와 시민 불복종까지 민주주의에 관한 쟁점들을 두루 살핀다. 특히,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 ‘차별 없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민주주의에서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선거 외에 다른 특별한 정치적 수단을 발견하기 어려운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선거에 임해야 하는가.” 이나미「‘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에서 출간 27년을 맞은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리뷰한다. 『선거는 민주적인가』는 출간된 후 한 세대가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울림을 주는 텍스트이다. 이나미는 『선거는 민주적인가』가 선거 외의 다른 정치적 수단을 발견하기 어려운 지금,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선출 방법인 ‘추첨’을 자세히 소개하며, 선거 제도의 본질적인 불평등성을 비판한 점을 강조한다. 또한 정당에 의한 ‘전체주의화’의 위험과 ‘미디어 전문가의 통치’를 한국 정치의 현실과 교차하여 재론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름 아닌 ‘정체성 정치’ 시대이다.” 정회옥「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톺아본다. 저자는 후쿠야마의 관찰을 따라,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민주주의의 후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정치의 위기는 존엄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곧 정체성 정치의 시대라고 말한다. 정회옥은 분열되고 파편화되는 집단 간 인정 투쟁이 격렬한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짚으며, 인간 존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한국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선거 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아니 그보다 더 긴급하게 정당 제도 개혁이 요청되는 것이다.” 장석준「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에서 윤현식의 『지역정당』을 읽는다. 장석준은 한국의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위로부터’ 변화시키는 선거 제도 개혁뿐 아니라, ‘아래로부터’ 변화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때 주목할 것은 지역 생활 현장에서부터 기득권 정치에 도전하는 ‘지역정당’이다. 장석준은 저자의 시선을 따라 여전히 한국에서 지역정당이 금지되는 배경인 ‘1962년 체제’와 정당법을 검토하며, K-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에 얼마나 미달하는지, 앞으로 도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있는 서평들이 이어진다.

박찬국 교수(서울대 철학과)는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서점가에 분 ‘쇼펜하우어 열풍’의 중심에 있는 강용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리뷰한다. 박찬국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그동안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쇼펜하우어의 책과 철학에 대한 큰 관심을 이끌었다는 점을 칭찬한다. 그러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서가 아닌 그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서이며, 특히 본격적인 소개서가 아닌 인생 교훈을 끌어내는 데 목표를 둔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소개와 관련해 몇 가지 이견을 제시한다.

김영민 편집위원은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에서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모후의 반역: 광해군대 대비폐위논쟁과 효치국가의 탄생』을 함께 읽으며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을 심층적으로 재검토하는 서평을 썼다. 먼저, 김영민 편집위원은 광해군(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종합적으로 살피며, 이에 대한 역사학계의 논쟁을 치밀하게 검토한다. 나아가, 김영민 편집위원은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관한 논의를 조선의 국가 성격에 대한 논의로 확장, 진전시킨다.

중동 전문가 박인식「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에서 걸프 시장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 이 쓴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중동 경제 3.0』, 『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을 연결해 가며 읽었다. 세 권의 책을 통해 박인식은 산유국 경제의 초기 형태부터 걸프 국가의 산유국 경제 탈출 과정,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등으로 대표되는 ‘석유 이후’를 준비하는 걸프 국가의 현황까지 두루 살피며 걸프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도모했다.

정우현 편집위원은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에서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다룬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룰루 밀러의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정우현 편집위원은 분류학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 두 사람이 지향하게 된 세계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고기가 사라졌다’고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입장 모두를 배격하며, 이름과 분류에 관계 없이 자연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경제 평론가 신현호「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에서 미국 최고위 경제 정책직을 모두 거친 유일한 인물인 자넷 옐런의 전기를 리뷰한다. 신현호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경제·금융 분야 전문 기자인 저자의 시선을 따라 자넷 옐런의 일대기를 관찰하며, 경제와 정치의 접점을 생각한다. 경제학자이자 경제 관료로서 자넷 옐런이 금융 위기,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연준과 재무부에서 내린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지는 것을 막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초래했다. 신현호는 이 과정에서 옐런이 겪은 경험과 반성은, 경제와 정치의 접점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라 말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서울의 봄〉은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 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이마고 문디에서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저자인 정아은 작가가 2023년 한국 영화 최대 흥행작인 〈서울의 봄〉을 다룬다. 정아은 작가는 〈서울의 봄〉이 12·12라는 거대한 사건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극단의 두 남성 캐릭터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한 데 주목한다. 이를 통해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힘이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에 경각심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이 영화가 세대를 관통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한다.

디자인 리뷰

“탈네모꼴이 획득한 시대정신은 분명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벗어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의 실험정신이자,

한글 자체가 지닌 조형적 원리에 입각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방법론에 대한 열망이었다.”

디자인 리뷰에서는 정재완 편집위원이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썼다. 정재완 편집위원은 인쇄 출판에서 새로운 시도가 풍성하게 이루어지던 1990년대를 돌아본다. 정재완 편집위원은 그중에서도 당대 디자이너들의 실험과 열망이 낳은 한글 탈네모꼴 폰트의 생산과 도입에 주목하여, 1990년대 출간된 탈네모꼴 폰트를 사용한 63종의 단행본 표지 디자인을 살펴본다.

북&메이커: 출판의 낭만과 일상

북&메이커에서는 문학 평론가 고명철이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라는 제목 아래,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소개한다. 고명철은 ‘디아스포라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으로서 웹진 《너머》의 지향과 구성을 소개하며, 웹진 《너머》를 만들며 고찰한 디아스포라적 존재가 직면하고 있는 언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언어 민족주의와 한글 중심주의를 경계하며, 지구화 시대에 접어들며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이 한글이 아닌 현지어로 발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민한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문학에는 작가 부희령과 SF 평론가 심완선의 에세이 2편이 실렸다.

부희령「비행 공포」에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불안을 잊기 위해 책 두 권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탄 경험을 회고한다. 영화가 아닌 책을 택한 것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주위를 완전히 잊은 경험은 책에 몰입했을 때뿐이었기 때문이다. 책이 불안을 달래지 못하는 가운데, 작가는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경계를 넘어가던 시절, 혈육도 친구도 아니었으나 한동안 같은 방을 썼던 한 사람을 떠올린다.

심완선「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에서 SF와 웹소설을 ‘사랑할 만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저자는 그것들을 ‘사랑할 만하다’라는 말을 하기까지 사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한다. 장르 문학을 좋아하는 일은 최근까지 아주 오랫동안 ‘자랑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르의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 덕분에 문학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위계를 넘어 장르 문학을 ‘사랑하고’ ‘사랑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저자는,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만한 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차례

편집실에서 ∥ 김두얼

특집 리뷰: 민주주의와 선거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 ∥ 송지우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 ∥ 유정훈

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 ∥ 하상응

‘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 ∥ 이나미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 ∥ 정회옥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 ∥ 장석준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두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본 〈서울의 봄〉 ∥ 정아은

디자인 리뷰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 ∥ 정재완

북&메이커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 ∥ 고명철

리뷰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박찬국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 ∥ 김영민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 ∥ 박인식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 ∥ 정우현

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 ∥ 신현호

문학

비행 공포 ∥ 부희령

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 심완선

지금 읽고 있습니다

신간 책꽂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에는 서문이 있고, 프롤로그가 있는가 하면, 서론이 있습니다. 후기가 있는가 하면, 에필로그도 있습니다. 책을 여닫으며 저자는 독자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책을 쓰려 했고, 그 의도에 따라 책을 완성했던 이야기를, [서문과 후기] 즉 [들머리와 날머리]로 담았습니다.

<식물의 사유: 식물 존재에 관한 두 철학자의 대화>

페미니즘 철학자와 식물성의 철학자의 만남, 두 저자는 32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식물 세계를 통한 사유를 주고받는다. 2020년 출간 도서

서문

우리가 이 책을 함께 쓰게 된 이유는 현재 자연과 생명이 처한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애초에 우리는 이 책이 각 장의 주제에 해당하는 대화로부터 발전하리라고 상상했지만, 우리는 이 계획이 너무 야심 차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은 적절치 않다는 점을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해당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 두 사람의 입장은 상당히 달랐고, 우리가 공통의 목표를 다루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론적, 윤리적, 정치적 차원에서 구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거의 알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히 그랬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딜레마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거나, 이 책이 미래의 대화로 발전해 나가도록 제안하는 다른 구성 방식을 창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제안한 것은 루스가 쓴 텍스트와 마이클이 쓴 텍스트가 아래위가 뒤집힌 포맷으로 구성된 책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구성을 취하면 책의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요. 불행히도 이 도발적인 해결책은 우리 두 사람 모두 각자의 관점에 충실하면서 대화가 가능한 방식을 찾는 데 영감을 주긴 했지만, 특히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출판사와 합의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여를 이끌어내는 가장 풍요로운 방식을 찾는 작업은 독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식물 존재에 관한 주요 메시지와 우리 두 사람이 식물 존재를 다루는 상이한 방식을 함께 파악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우리가 각각의 주제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때 앞으로 나타나게 될 것에 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서로의 입장을 구별해 주는 몇 가지 특성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두 사람은 식물 세계가 우리 삶에 가져다주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가져다주고 있는 도움에 고마워합니다. 우리의 분석과 제안이 달라지는 대목은 어떻게 식물 세계를 보살필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됩니다. 마이클은 식물 세계 그 자체를 사유하면서 식물 세계가 우리의 전통적 저자들에게 나타나는 궤적을 추적합니다. 이는 우리 전통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충격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그는 식물을 사유의 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인간 사유의 토대를 재구축하려고 노력합니다. 루스는 특히 전체 생명 세계와 관련하여 새로운 존재 방식과 실존 방식을 낳으려면 주체성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마이클이 대체로 그 중요성이 무시되어 온 식물 존재를 사유하면서 우리의 과거 철학을 해석하는 작업을 수행한다면, 루스는 주체성의 규정, 특히 성차화된 규정(sexuate determination)에서 출발하여 우리 문화와 주체성의 토대를 급진적으로 다시 세울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재정초화 작업은 생명과 생명의 발달에 대한 존중을 용인합니다. 마이클이 그리스 시대의 ‘퓌시스(phusis, 자연)’로 돌아가는 것이 식물의 성장에 내재해 있고 그것에 근접해 있는 인간의 성장―이 성장은 성차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성장을 포함합니다―을 낳기를 바란다면, 루스는 이 ‘퓌시스’로의 복귀에 인간 주체성을 키우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절, 공백, 해소 불가능한 부정성을 취하고 자연환경 및 소속과 관련하여 초월성과 다른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인간 주체성을 키우는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이클이 우리의 현존 경제가 생태계에 일으킨 피해와 위험 주위를 맴돈다면, 루스는 우리가 깊이 성찰하고 발전시켜야 할 생태적 경제에 유효한 요소로 일부 동양 전통의 가르침과 안티고네가 옹호한 법을 상기시킵니다.

이런 점들은 우리 각각의 입장이 지닌 특징을 보여주는 여러 측면들 중 극히 일부입니다. 성급하게 대충 의견의 일치를 도모하는 대화를 통해 각자의 특성을 모호하게 흐린다면, 이는 우리 사유를 지각하지 못하게 해치고, 독자들이 새로운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 일체의 생명 존재, 그리고 우리 인간의 생성이 현재 처한 상태는 새로운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을 긴급히 요구합니다.

책의 구성과 관련하여 우리가 처음에 제안했던 안은 책을 출판할 때 제1저자와 제2저자로 표기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구성 없이 루스는 첫 번째 기고자로, 마이클은 두 번째 기고자로 등장할 것입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편지와 뒤이어 나오는 많은 장들이 보여주듯이, 이런 방식은 우리의 성을 알파벳 순으로 배열한다는 사실을 넘어 이 책의 글쓰기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 방식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2015년 8월

루스 이리가레

친애하는 루스에게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자연의 삶과 사유는 거의 시작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데거조차 그런 것을 그려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책은 이 방향으로 내딛는 최초의 발걸음 중 하나입니다. 식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은 성장의 사건으로서 퓌시스가 가장 확실하게 발견되는 것이 다름 아닌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퓌시스를 식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퓌시스의 사건은 우리들에서, 우리들로서, 그리고 자라면서 드러나는 다른 모든 퓌시스의 참여자들과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그런 사건을 우리와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바깥에서, 언어 및 언어들에 의거하여 생각할 수 있을 따름인 관계 바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모든 것들을 인간의 문법으로 번역할 수 있다거나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식물들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식물의 언어를 망각할 수 없으며, 다른 실존 형태들의 언어를 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담론과 맺는 관계 안에서도 비인간 생명 형태들과 소통할 가능성에 열린 환대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우리가 함께 쓴 이 책이 적어도 그런 환대의 공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환대의 공간을 준비하는 형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서신 교환은 우편을 통해 느리게 진행되었습니다. 우편을 통한 교환 방식은 생각이 자라고 성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주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나눈 생각들은 생명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생각들은 자서전(auto-bio-graphy)이라는 의미에서 추상적 회상의 형태로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각 장들이―적어도 내가 쓴 장들의 경우―아주 서서히 씌어졌다면, 그것은 개별 장들이 기억에, 식물과 나눈 동시적 경험에, 우리 각자가 쓴 텍스트에 대한 성찰과 반응을 지속적으로 나눈 의견의 교환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의 세계, 혹은 그 세계 안의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식물의 세계로의 열림을 키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식물의 생명을 경험하고 재경험하는 토대 위에서, 인간관계가 더 이상 경제적이지 않고 생태적 공유에 도움이 되도록 인간관계를 리모델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새로운 인간관계가 우리의 책에서 간신히 시작되었지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내가 이 책에서 쓴 부분을 동일한 크기로 소환했던 두 개의 원천이 보입니다. 그 두 원천은 식물들과 더불어 식물들에 대한 나의 경험에 응답하면서 당신의 경험에 응답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당신의 경험 안에는 무엇보다 식물 생명과 더불어 식물 생명에 대한 당신의 경험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이중적 응답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두 응답이 그저 하나가 다른 하나를―그것이 식물이든 인간이든―반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부족했을 것이라는 점은 금세 분명해졌습니다. 끝없는 모방 효과를 만들어낼 상호반사 역시 충분치 않았을 것입니다. 이 상호반사 속에서 형이상학적 사유 방식과 행동 방식은 훨씬 격렬하게 자신의 주장을 다시 펼쳤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이 이 책에서 이야기했던 것에 대해 즉각적 해답을 주었더라면 그것 역시 불충분한 응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앞에 놓인 위험은 식물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로고스라는 밀봉된 세계 속으로 가라앉는 것입니다. 흔히 대화로 불리는 로고스의 세계는 식물의 세계에 귀먼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타자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존하면서 이렇게 간접적으로 비스듬히 응답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입니다. 그런 사선적 특성(obliqueness)이야말로 언어에서, 무엇보다 식물의 언어에서 번역될 수 없는 것을 가급적 많이 보존하는 것이 아닐까요? 인쇄된 말에서 일어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침묵과 틈새와 간극―예를 들어 장들 사이에서―에 당신과 이 책의 독자들은 어떻게 응답할까요? 달력의 시간을 특정해서 말해 주고 있는 각장의 날짜는 무엇을 말하고 있거나 말하고 있지 못할까요? 이 날짜의 단독성은 가끔 텍스트의 ‘내용’이라 불리는 것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날짜는 식물 생명의 경험 그 자체로 숨겨진 채 남아 있을 방식으로 앞서 내가 말한 이중적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책이 식물의 세계, 다른 인간 존재, 다른 인간들과 관계맺을 대안적 지평을 열어주기를 희망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서로에게 나누어 주고자 했던 것이 지닌 단독적이며 사선적인 특성 때문에 우리는 이런 대안적 지평이 부서지기 쉬우며 힘들게 노력해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작업이 다른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징한 처방, 이중적 구조의 부재, 직접적인 현상학적 기술을 시도했더라면 우리의 기획 전체가 처음부터 망가졌을 것입니다, 식물적 존재를 경유한 만남이(이 만남뿐 아니라) 다른 만남들을 얼마나 자라게 할 것인지는 이제 시간이 말해 줄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미래를 희망하며

마이클 마더

2014년 11월 1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