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창간 4주년을 맞았습니다. 2025년 봄호의 특집을 ‘헌법의 순간’으로 정하고 출간 준비를 하면서, 1년 전 2024년 봄호를 다시 꺼내봅니다. 창간 3주년이었던 13호의 특집 주제는 ‘민주주의와 선거’였습니다. 1년 만에 다시 정치적인 주제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번에는 특별히 ‘헌법’이라는 단어에 더욱 집중할 특별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헌법의 순간』『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히틀러의 법률가들』『독재의 탄생』등의 책을 통해 우리들은 또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3월 15일 출간 예정)
그전에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선거는 민주적인가』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지역정당』 등의 리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치 현상과 정치적 대안을 모색했던 2024년 13호 기획을 다시 소개합니다.
📚 서리북 13호 단권 구매, 정기구독 신청은 네이버스마트스토어, 알라딘, 예스24에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URL을 눌러보세요!
👉13호 바로가기
https://smartstore.naver.com/seoulre.../products/10082398680
👉정기구독 신청 바로가기
https://smartstore.naver.com/seoulreviewofbooks2
본문 중에서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희생을 통해 쟁취했던 자유선거와 민주주의가 정말로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여겨 왔던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깊이 성찰한 저작들을 꼼꼼히 읽어 봄으로써,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고 부활시키는 밀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두얼 「편집실에서」, 3쪽
주류 민주주의 이론은 대부분 브레넌이 절차주의로 분류하는 논변을 부분적으로라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주류 민주주의 이론은 많은 경우 민주주의가 여타 정치 형태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낳는 경향이 있을뿐더러, 인간의 자율성
실현, 정치 공동체 구성원 사이 평등의 구현 등 절차주의적 의의가 있다고 보는 혼합 논변을 견지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는 단지 ‘민주주의는 여타 정치 형태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가’가 아니라, 동시에 ‘민주주의가 때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유지할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송지우 「민주주의는 유권자 때문에 실패하는가」, 24쪽
저자들은 단순한 사례 열거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근거로 합법적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가 전복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고, 정치 지도자에게 독재자가 될 잠재력이 있는지 알려 주는 경고 신호를 네 가지로 정리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 둘째,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셋째,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넷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그것이다.
―유정훈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선거로 구할 수 있을까?」, 31쪽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인식과 맞물려 돌아간다. 정치에 정답은 없고, 여러 가능한 답들 중에서 주어진 맥락과 환경에 적합한 답을 선택하는 작업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정기적으로 수행되는 선거는 ‘가치와 이념의 자유 시장’이다. (……)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각 정치 진영은 상대 진영을 절멸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긴다. 상대가 만든 법이라고 해도 그 법을 따르겠다는 태도, 우리가 졌다고 해서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겠다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뜻을 잘 읽고 설득하여 승리하겠다는 태도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다른 정당들이 경쟁하는 방식이다.
―하상응 「차별 없는 차이의 인정」, 47-48쪽
선거가 주요 정치 과정이 되면서 ‘우열’의 개념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대표성의 원리는 ‘나와 유사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주장될 수 있지만 결국 투표의 과정은 나보다 탁월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 결국 ‘나를 대표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것이 되어 버렸다. 저자는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사람들은 재산 있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뽑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며, 이는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갖는 본질적인 불평등성, 즉 고대로부터 강조되어 온 “선거의 귀족주의적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나미 「‘선거’는 민주적이라는 착각」, 57-58쪽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및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정치적 사건이 현대 정치가 직면하는 도전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고 진단한다. ‘극단적 정치 집단의 세력화’, ‘포퓰리즘의 대두’, ‘민주주의의 후퇴’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정치의 위기는 존엄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름 아닌 ‘정체성 정치’ 시대이다.
―정회옥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대중」, 66쪽
이 책을 통해 우리는 K-민주주의가 실은 얼마나 민주주의의 보편적 상식에 미달하는지, 앞으로 치열하게 도전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정당은 다른 어떤 정치 제도보다 더 접근성이 높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정당에 가입해 그 의사결정과 일상 활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당 자체를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역정당』이 소개하는 다른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처럼, 뜻을 함께하는 사람 셋만 모이면 정당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장석준 「양대 정당 독점 정치를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법」, 79-80쪽
〈서울의 봄〉은 죄인을 단죄하지 못하는 데 무심해진 동토에, 민주 사회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위배하는 일이 일어나는 데 경각심을 잃은 한국 사회에, 온기와 빛을 몰고 온 의미심장한 영상물이다.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이라는 역사적 하루를 ‘사나이들 간의 대결’로 선명하게 형상화했다. ‘우리가 독재자와 싸워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가르치듯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부모 세대에게 불공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맞섰던 젊은 세대가, 〈서울의 봄〉이라는 강력한 이야기에는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정아은 「두 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본 〈서울의 봄〉」, 92쪽
독자들이 미처 신경 쓰지 않는 영역을 세심하게 건드리는 북 디자이너의 노고는 조금씩 동시대 시각 문화의 질적 수준을 높여 간다. 1980-1990년대 한글 탈네모꼴 폰트를 제안하고 실천했던 디자이너들의 유산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1980-1990년대 한글 탈네모꼴은 출판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다.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탈네모꼴이 획득한 시대정신은 분명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벗어나고자 했던 디자이너들의 실험정신이자, 한글 자체가 지닌 조형적 원리에 입각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방법론에 대한 열망이었다.
―정재완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기의 탈네모꼴 폰트」, 103쪽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으로서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는 2022년 11월 14일 첫걸음을 떼었다. (……) 창간호를 준비하는 과정 동안 무엇보다 《너머》의 편집 방향에서 중심축이 되어야 할 ‘디아스포라’에 대한 통념뿐만 아니라,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해를 다듬어 나가는 공부를 했다. 특히, 그들의 언어가 ‘국어/모국어/모어’의 다층적 층위에서
통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했다. 그리하여 낯선 타방에서 한글 공동체가 직면한 역사의 격동 속에서 한글 사용이 점차
어려워지고 정치적 억압과 금기로 한글 사용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그들의 문학이 단절되지 않고 있는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었)다.
―고명철 「한인/한글 문학의 플랫폼,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를 만나기 위해」, 105쪽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인 소개서다. 그것도 본격적인 소개서라기보다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서 인생 교훈을 끌어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학술서를 평가하듯이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깊이 있고 창의적인 해석을 기대해서는 안 되며, 그런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다.
―박찬국 「베스트셀러 1위인 철학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117-118쪽
광해군의 일생은 어떤 이유로 연구할 가치가 있을까. 특이하게도 왕위에서 쫓겨난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으로
는 노산군(단종)과 연산군도 있으니, 광해군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 광해군을 어떻게 평가하든, 광해군 시대가 조선사의 변곡점이라는 데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과연, 광해군은 조선사 전체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일까. 창문이라면 어떤 창문일까.
―김영민 「조선 국가론을 향하여: 광해군과 ‘인조반정’을 둘러싼 논쟁의 재검토」, 129쪽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국가는 우리의 오랜 시장이었다. 우리 기업은 그곳에서 얻은 기회를 통해 양적·질적으로 성장했고, 그것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경쟁은 치열해지고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그렇기는 해도 아직도 그만큼 역동적인 시장은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걸프 국가는 아직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 걸프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장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이 쓴 책 세 권을 골라 필요한 부분을 연결해 가며 읽었다.
―박인식 「석유 이후의 걸프 경제」, 164-165쪽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도 꽃들은 그저 피어나 어디서든 잘 자라고 있다. 자연은 불러 주는 이름이 없이도 서로 어울려 잘 지낸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즉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름을 불러 주거나 비슷한 것끼리 모아 합리적으로 분류했다는 이유로 생명에 갑자기 없던 생명력이 생기거나 가치가 더 높아질 리 없다. 거꾸로 이름을 빼앗겼다고 하여 분류학에 투신했던 학자들의 노고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우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이미 거기에 있다」, 186쪽
옐런은 과거와는 달리 정치적 고려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상당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퇴행인지 발전인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나 경제의 최고 책임자라는 자리가 정치와 명확히 선을 그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 옐런이 금융 위기,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중에 연준과 재무부에서 내린 결정은 미국과 세계 경제가 파국에 빠지는 것을 막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 또한 초래했다. 그런 점에서 옐런의 경험은 잊혀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신현호 「자넷 옐런을 통해 본 경제와 정치의 접점」, 199-200쪽
출국하는 날 책 두 권을 넣은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불안은 수백만 톤에 달하는 기계가 허공에 떠 있음을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니 현재 상황을 의식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주위를 완전히 잊은 경험은 책에 몰입했을 때뿐이었다. 생각이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 의아했다. 영화가 아니고 책? 그렇다. 영화가 아니라 책. 당신을 떠올린 것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부희령 「비행 공포」, 204-205쪽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사랑한다’에 이어 ‘사랑할 만하다’라는 말을 한다. (……) 내가 사랑하는 숲이 다른 사람들도 사랑할 만한 것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바란다. 카스탈리엔의 유리알 유희가 문화의 쓸모를 논하는 사람들에 맞서 섬세하게 지켜야 할 기예였듯이, 여기에도 가치가 있다고, 한 사람이라도 많이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고.
―심완선 「판타지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217-21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