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기둥 3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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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하느님의 뜻일까, 생각해보는 소설이었다.
1권부터 이야기는 진행되었지만 3권에 이르러서는
과연 정의가 힘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끝까지 정의를 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할까,
읽는 것만으로도 삶이 거칠어진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지는데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감탄스러웠다. 
물론 살아남는 데는 남다른 것이 있어야 했다.
그건, 포기하지 않는 신념, 이었다.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불행한 선택을 했던 전 백작의 딸 엘리에너는,
결국 부친의 유언을 접고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젖먹이를 품에 안고 그녀는 길을 떠났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의 여자가 젖먹이까지 안고 길을 떠날 수 있다는 건,
(물론 실제의 인물은 아니지만) 소설 속에서도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그는 한때 돼지 같은 악당에게 인생을 짓밟혔다는 저주에 사로잡혔지만
그건 오히려 기회였던 게 틀림없다.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설 용기가 그녀에게 있었고,
그 용기를 스스로 저버리지 않는 신념도 있었던 것이다.  

악당의 최후는 꼭 드라마틱해야 할까, 하는 문제도 마음에 걸렸다.
물론 악당의 최후는 있어야 하고, 그것도 평안한 말로가 아니어야, 이야기는 산다.
또 정의의 미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악당이 꿋꿋이 살아남는 과정에서 부질없이 죽어가는 삶들은 어떻게 하나. 
엘리에너의 숙적 윌리엄의 최후는 비참하고 끔찍했지만
나는 오히려 엘리에너처럼 강단을 갖지 못해
어이없이 희생당한 많은 사람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또 하나, 무척 절묘한 인물상이 하나 있다. 
정의로운 수사 필립 앞에 나타난 인물, 피터 부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피터 부주교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기독교인 중에서 가장 나쁜 부류에 속한 사람이다, 필립은 생각했다. 그는 부정적인 것이면 모두 포용하고, 금지된 일들이라면 무엇이든 행동에 옮기고, 온갖 형태의 극기를 강요하고, 모든 위반 행위에는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 신앙의 모든 동정심을 무시하고, 그 자비를 부인하고, 사랑의 행위 규범에는 극악무도하게도 불복하고, 공공연하게 예수의 너그러운 율법을 조롱하는 자였다. 그가 바로 바리새인이 아니겠는가, 필립은 생각했다.

 
   

그런 사람, 어디나 꼭 있다.
그들은 옳고 그름에 꽤 정통하기에 말로는 도무지 이겨먹을 수 없다.
더구나 그름에 속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던질 돌을 들고 있다.
그름에 속한 사람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따지기는 하나,
그건 논리 따지기 좋아하는 습성의 발로일 뿐, 아량을 베풀 수는 없다.
그에게는 그런 자질이 없으므로.  
그들이 정의롭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정의가 힘을 발할 때
그 속에 속하지는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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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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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 들어서면서 글의 호흡은 더 빨라졌다.
대성당도 위기를 전면으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아 한층 우뚝서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고비는 위기이면서도 기회인 것이다.
몰락한 백작의 딸 엘리에너도 무참히 쓰러졌지만 거기서 다시 시작했다.
그녀가 고귀한 백작가의 딸로만 평생을 보낼 수 있었다면
기회로 잡아 일어선 삶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위기에 넘어진 나를 위해 기다리고 선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또, 그 반면에 쓰러지고 포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날 위해 서 있지 않았지만
내가 누구의 소매라도 붙잡고 일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얼마 전에 읽은 동화처럼 기다리고 섰다가 손을 내밀어준 듯한 세상은 없는 것이다.
내 주위의 누군가는 말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너무 쉽게 굴러가면 불안하다고.
너무 쉬운 진행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백작의 딸도 날 때부터 손에 거머쥔 부귀와 영광이었지만 결국 다 잃고 무너졌다.
하지만 거기서 일어서서 다시 살아남았다. 
최고의 권력자 왕이라 하더라도 그처럼 엎치락뒤치락 반복되는 반역 속에서는
행운과 불운이 불안한 동거를 하는 법.
수도원장쯤 무릎 아래로 보던 왕도 한순간 포로가 되어 쇠사슬에 묶이는데
누군들 쉬운 인생이 보장될 수 있을까.  

다만 필립 같은 인물도 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악인과 손을 잡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는 악이 물든 전장에서 고뇌한다.
자신이 그 속에서 아무도 구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한다.
마치 영화 미션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았다.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을 섬기는 거라고 확신했던 필립이지만
그는 자신이 살육 속에서 그 어떤 생명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너졌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쓰러진 엘리에너가 일어서듯, 대성당이 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세워지듯,
톰이 헤어진 엘렌을 만나듯, 권세 당당한 왕이 포로가 되듯,
필립이 사악한 무리들 속에서도 성당의 기초를 만들어내듯,
모든 건 움직이고 변한다. 그것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아마 일어선 엘리에너도 다시 쓰러질 때가 있을 거고,
톰도 다시 만난 엘렌과 헤어질 때가 있을 거고,
대성당의 기초가 다시 폐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의 움직임 속에서 죽고 살아남는 삶들은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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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미국으로 간 지 2년이 되어간다.
두 번째로 보내는 생일선물.
옷은 잘 고르지도 못하고 오래 전 아기일 적에
오버코트를 하나 사줬다가 울며불며 안 입겠다는 기억이 선명해서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책만 사줬다.
이번에도 역시 책.  

이번 9월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는데
친구는 잘 사귀고 있는지 궁금하다.
조금은 독특하다 싶은 성격이지만
착하고 창의력 만발한 사내아이.
언제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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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치 사전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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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어린이표- 웅진 푸른교실 1
황선미 글, 권사우 그림 / 웅진주니어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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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은 사고뭉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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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도우미
다케시타 후미코 지음, 스즈키 마모루 그림, 양선하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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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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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보면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마련이다.
이 엄청난 두께의 소설에서는 띠지의 인물들이 나열된 것처럼
여러 갈래의 감정이입의 통로를 만들어놓은 것 같다. 
그리고 대지의 기둥을 세워 올릴 주인공으로는  
아마 석수장이 톰이 유력한데... 왠지 나는 그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몇 가지 짚이는 데가 있다.
그는 식구들을 부양하려는 의무는 강했으나 성당을 건축하고픈 욕망이 너무도 강했다.
결국 식구들이 길거리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상황에 처했고 아내는 아이를 낳다 죽었다.
하긴 그 욕망이 없었더라면 이 장대한 소설도 만들어질 수 없었겠다.
한데 나는 왜 식구들을 길거리로 나앉게 했다는 게 이렇게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게다가 아내를 잃은 날, 그는 숲속의 여자 엘렌를 받아들였다. 
왜 거기서는 죽은 아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톰이 그처럼 어처구니가 없는 건지. 
대성당을 짓게 된 데는 엘렌의 아들이 혁혁한 공헌(!)을 세웠는데
그럼에도 엘렌과 아들은 숲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화나는 지점.
또 하나 지적하자면, 톰은 미련하고 덩치만 좋은 맏아들을 두둔해왔는데
그건 사실 내게는 가장 밉살스러운 점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습게도 소설의 큰 줄기는 다 놓치고 세세한 줄기에서
감정을 쏟아놓고는 톰이 미워, 하고 말하는 독자가 됐다. 
나는 일찌감치 톰의 행로에 대해선 포기를 하고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일지도 모를 사람을 내려놓고는)
수도원장이 된 젊은 필립의 움직임을 필사적으로 쫓게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꼼꼼이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성당을 건립하게 되는가,
유심히 지켜볼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제 미사에 참석하면서 괜스레 이 소설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내가 다니는 이곳이 개신교의 교회였다가 가톨릭 성당이 되었다는 데 분을 품던데,
글쎄 어떤 절차로 종교의 색을 달리한 집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교가 사실 독이 된다는 생각은 한다.
빅토르 위고는, 종교는 사라지나 하느님은 영원하다, 고 말했고
빈센트 반 고흐는 한때 열렬한 복음주의 전도사로 일했으면서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도 동감한다.
종교의 색이 짙어진 곳에는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색일까,
인간의 색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거라 짐작한다.
이 소설에서처럼 소위 신의 집을 짓는 것에도
이처럼 권모술수가 물밑에서 작업되어야 하다니 씁쓸하다.
아니, 당연한 것일까.  
2권을 읽으며 좀 더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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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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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 라는 명칭이 흥미롭다.
킬러들은 총이나 칼을 들 뿐, 죽이는 데까지 이르는 움직임은
모두 설계자가 만들어낸다, 고 한다. 물론 소설에서.
실제 킬러들의 세계가 어떨지는 가늠만 할 뿐 전혀 모르는 터라,
소설가가 얘기하는 대로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하지만 킬러들의 세계까지 속속들이 알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들어내올 뿐이다.  

주인공 래생은, 설계의 세계 꼭대기에는 빈 의자가 있다고 중얼거린다.
사실은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의자 아래서
난다긴다 하는 두뇌들의 설계가 난무할 뿐이라는 것.
거기서는 일종의 관습화된 세계까지 떠올려진다.
아무것도 지킬 필요 없는 데서 하루 종일 서 있는 병정 같은 느낌.
뭘 지키십니까, 물어봐야 그도 모른다.
뭘 지켜야 하는지 모르나, 그저 관습상 서 있는 것.
왜 죽여야 하는지 모르나, 죽임의 구조 속에서 순환되는 욕망.  

좀 더 이성적으로 제대로 완결되는 끝을 보고 싶어하는
제3의 설계자가 있었지만, 래생은 장렬하게 스스로 총칼을 들고 나선다.
그건 옳고 그름을 떠나, 설계 없이 나선 킬러의 마지막이다.
그는 자신의 평소 지론(?)대로 허무한 죽음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내용이야 어떻건간에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총칼 앞에 사람이 죽어 넘어지는데도 이처럼 (격조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미안하지만) 비난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무슨 킬러들이 그 따위로 근사하게 죽어 넘어지나... 
소위 어깨에 힘주기 좋아하는 자라면, 킬러들의 세계에도 품격이 있나, 하고
잠깐 착각할 수 있겠다.
물론 소설가의 필력 덕분, 혹은 탓일 거다.  

작가의 글을 보면, 숲 속에서 고요히 글을 쓰는 얘기가 나온다. 
그는 숲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지나치게 매력적인 킬러들의 칼부림에서 잠깐 내가 정신을 놓았던지,
우습지 않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실은 그의 소설에서
피는 흐르지만 피냄새 요란하지 않은 사람, 들을 볼 수 있었다.
피냄새가 요란하다면 자극적인 활극에 속하겠지만
피가 흐르고 치유가 되고 눈물을 삼키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대로 사람을 이해하는 소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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