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설계자, 라는 명칭이 흥미롭다.
킬러들은 총이나 칼을 들 뿐, 죽이는 데까지 이르는 움직임은
모두 설계자가 만들어낸다, 고 한다. 물론 소설에서.
실제 킬러들의 세계가 어떨지는 가늠만 할 뿐 전혀 모르는 터라,
소설가가 얘기하는 대로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하지만 킬러들의 세계까지 속속들이 알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들어내올 뿐이다.  

주인공 래생은, 설계의 세계 꼭대기에는 빈 의자가 있다고 중얼거린다.
사실은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의자 아래서
난다긴다 하는 두뇌들의 설계가 난무할 뿐이라는 것.
거기서는 일종의 관습화된 세계까지 떠올려진다.
아무것도 지킬 필요 없는 데서 하루 종일 서 있는 병정 같은 느낌.
뭘 지키십니까, 물어봐야 그도 모른다.
뭘 지켜야 하는지 모르나, 그저 관습상 서 있는 것.
왜 죽여야 하는지 모르나, 죽임의 구조 속에서 순환되는 욕망.  

좀 더 이성적으로 제대로 완결되는 끝을 보고 싶어하는
제3의 설계자가 있었지만, 래생은 장렬하게 스스로 총칼을 들고 나선다.
그건 옳고 그름을 떠나, 설계 없이 나선 킬러의 마지막이다.
그는 자신의 평소 지론(?)대로 허무한 죽음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내용이야 어떻건간에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총칼 앞에 사람이 죽어 넘어지는데도 이처럼 (격조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미안하지만) 비난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무슨 킬러들이 그 따위로 근사하게 죽어 넘어지나... 
소위 어깨에 힘주기 좋아하는 자라면, 킬러들의 세계에도 품격이 있나, 하고
잠깐 착각할 수 있겠다.
물론 소설가의 필력 덕분, 혹은 탓일 거다.  

작가의 글을 보면, 숲 속에서 고요히 글을 쓰는 얘기가 나온다. 
그는 숲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지나치게 매력적인 킬러들의 칼부림에서 잠깐 내가 정신을 놓았던지,
우습지 않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실은 그의 소설에서
피는 흐르지만 피냄새 요란하지 않은 사람, 들을 볼 수 있었다.
피냄새가 요란하다면 자극적인 활극에 속하겠지만
피가 흐르고 치유가 되고 눈물을 삼키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대로 사람을 이해하는 소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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