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기둥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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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보면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마련이다.
이 엄청난 두께의 소설에서는 띠지의 인물들이 나열된 것처럼
여러 갈래의 감정이입의 통로를 만들어놓은 것 같다. 
그리고 대지의 기둥을 세워 올릴 주인공으로는  
아마 석수장이 톰이 유력한데... 왠지 나는 그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몇 가지 짚이는 데가 있다.
그는 식구들을 부양하려는 의무는 강했으나 성당을 건축하고픈 욕망이 너무도 강했다.
결국 식구들이 길거리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상황에 처했고 아내는 아이를 낳다 죽었다.
하긴 그 욕망이 없었더라면 이 장대한 소설도 만들어질 수 없었겠다.
한데 나는 왜 식구들을 길거리로 나앉게 했다는 게 이렇게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게다가 아내를 잃은 날, 그는 숲속의 여자 엘렌를 받아들였다. 
왜 거기서는 죽은 아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톰이 그처럼 어처구니가 없는 건지. 
대성당을 짓게 된 데는 엘렌의 아들이 혁혁한 공헌(!)을 세웠는데
그럼에도 엘렌과 아들은 숲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화나는 지점.
또 하나 지적하자면, 톰은 미련하고 덩치만 좋은 맏아들을 두둔해왔는데
그건 사실 내게는 가장 밉살스러운 점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습게도 소설의 큰 줄기는 다 놓치고 세세한 줄기에서
감정을 쏟아놓고는 톰이 미워, 하고 말하는 독자가 됐다. 
나는 일찌감치 톰의 행로에 대해선 포기를 하고
(그러니까 이 소설의 주인공일지도 모를 사람을 내려놓고는)
수도원장이 된 젊은 필립의 움직임을 필사적으로 쫓게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꼼꼼이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성당을 건립하게 되는가,
유심히 지켜볼 자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제 미사에 참석하면서 괜스레 이 소설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내가 다니는 이곳이 개신교의 교회였다가 가톨릭 성당이 되었다는 데 분을 품던데,
글쎄 어떤 절차로 종교의 색을 달리한 집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교가 사실 독이 된다는 생각은 한다.
빅토르 위고는, 종교는 사라지나 하느님은 영원하다, 고 말했고
빈센트 반 고흐는 한때 열렬한 복음주의 전도사로 일했으면서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도 동감한다.
종교의 색이 짙어진 곳에는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색일까,
인간의 색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거라 짐작한다.
이 소설에서처럼 소위 신의 집을 짓는 것에도
이처럼 권모술수가 물밑에서 작업되어야 하다니 씁쓸하다.
아니, 당연한 것일까.  
2권을 읽으며 좀 더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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