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시아의 백묵원 범우희곡선 2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정길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우선 먼저 언급해둘 것. 범우사 번역 판에선 '코카시아의 백묵원'이라고 제목이 붙혀져 있건만, 본서외의 다른 모든 문헌에서의 표현은 '코카서스의 백묵원'이라고 쓰고있기에 이하 모두 '코카서스의 백묵원'이라고 쓰도록 하겠음.^^

본 작품은 브레히트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쓰여졌다고 한다. 조금은 복잡한 형식의 이 희곡은 코카서스의 한 계곡에 관한 분쟁을 합의한 마을 주민들이 그 후 연회를 즐기기 위해 보는 '연극'이 이 희곡의 본론을 이루고 있는데, 본론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뉘어진다. 살해된 총독의 하녀 그루쉐가 난리 와중에서도 총독의 갓난아이가 혼자 남겨져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헌신을 다하는 이야기가 하나, 괴짜(?) 재판관 아츠닥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머지 하나이다.

전쟁이 끝난 후 상속문제 등으로 인해 그루쉐가 기르던 총독 아들을 찾으러 뒤늦게 나타난 총독 부인과 그루쉐간의 양육권과 관련된 재판을 하는 것이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데,(여기서 담당 재판관은 이야기 진행상 '당연하게도' 아츠닥이다^^) 백묵으로 그린 원 밖으로 아이를 먼저 잡아당기는 자에게 아이의 양육권을 주겠다는 야츠닥의 재판은 구약에서의 솔로몬의 재판을 연상시킨다. (제목의 백묵원이 도대체 뭔 뜻인가...하셨을 분 있으실텐데, '백묵'으로 바닥에 그은 '원'. 결국 그 소리다. 허무하제??-_-;;;;;)

멋지게 그려진 괴짜??빈민??재판관 야츠닥의 얘기는 순수하게 읽어본다믄 정말 바람직하게 보여지지만, 법학도 입장에서 이해한다믄 조금은 난처해 질 수도 있겠다. '판사' 야츠닥의 모든 행적은 '법'보다는 분명 '올바름'에 모든 핀트가 맞춰져 있으니 말이다. 야츠닥의 마지막 판결은 법학적 측면에선 정말 '문제있다' 근데, 그게 옳지 못한건 또 아닌거 같다. 위와같은 이유로 책읽을 때 솔직히 정말 난감했던 기억이 있었다는.-_-;;

지금까지 비교적 복잡하게 이야기 구조를 썼다만(사실 읽어보믄 알겠지만, 내 글빨이 딸려서, 너무 중언부언해서 그런거고, 사실 이야기 구조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_-;;;;), 극 마지막에 나오는 가수의 대사에서 이 희곡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브레히트의 작품답게도(??내가 접한 브레히트 희곡이라 해봐야 두개가 전부지만^^)너무나 명확하게 전달된다. 그 대사는 다음과 같다.



'그런데 여러분, 백묵원의 이야기를 듣게 된 여러분,
그 오랜 것의 의미를 아시라구요:
바람직한 것에 지금 존재하는 것이 속해야 함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도록 어머니다운 이에게,
마차는 잘 끌고 가도록 훌륭한 마부에게,
그리고 골짜기의 땅은 그 곳이 기름지도록 물을 대는 자들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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