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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본서는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 작가에 불과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일약 스타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이다. 독일어권 국가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희곡작품 중 하나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적잖게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본 작품은, 따지고보면 오케스트라에서 정말 중요한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드러나지 않고, 그 누구도 그 악기에 대해 각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를 소재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본서를 단순히 무명 작가였던 저자 자신의 자전적 작품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외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결코 부유하진 않지만 어쨌건 먹고살만한 안락함을 누리고 있는, 하지만 자신의 노력에 비하자면 하잘것 없는 보상속에서 그 누구로부터 주목받지 못한채 살아갈 '수밖에'없는 연주자. 결코 이루지 못할 신분상승을 바라고, 언제나 악기로부터 '소외'되어 수단으로 취급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그렇다고 확 뒤집어 엎을만큼 과감하지도 못하기에, 짜증은 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보수적인 관념에 충실하려는 오늘의 소시민이 삶을 사는 연주자. 이처럼 저자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의 입을 빌어 오늘의 대중의 삶을 구구절절 잘 그려내고 있고, 때문에 본 작품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러 가서 콘트라베이스나 심벌즈 주자를 보며 이런 비슷한 생각을 안가져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재를 이용하여 이처럼 멋지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저자의 섬세한 감수성과 통찰력 덕분이 아닐까? 이제는 대중의 '피상적인' 관심에 피곤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가 된 그이지만(이러한 그의 감상은 또다른 조그마한 소설인 '좀머씨 이야기'에서 표현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최고 작품으로 바로 이 '콘트라베이스'를 꼽고싶다. 본 작품은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대중(혹은 소시민)의 삶을 담아,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이야기'해 줌으로써 보듬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작품보다도 따뜻하며, 개인적으로도 각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