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0
고미숙 지음 / 책세상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 참으로 드물게도, 책을 구입해 놓고는 '내가 이책을 어떤 이유로 샀나'가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나로써는 이 책이 그랬다. 내가 '근대와 탈근대'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것도 아니고, 민족이나 섹슈얼리티는 물론이거니와 병리학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산 책은 딱딱한 주제에 비해 굉장히 재미있었으며, 이 책을 통해 고미숙씨, 나아가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꽤나 큰 의의를 갖는 책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근대적 통념-민족이라는 신화와 남녀 역할에 관한 통념, 그리고 병과 위생에 대한 관념-들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탐구하여 그 도입과정의 왜곡됨과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의 근대는, 서양의 근대와는 달리 국가적 위기 상황의 타계책으로 들여왔다는 점, 그것을 들여온 식자층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깊게 스며있었다는 점, 아울러 어떠한 역사적 단계와 물적 토대에 의한 필요성이 아닌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전해졌다는 점 등으로 인해 서구의 근대보다 더욱 그 근대적 주체의 성립과정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모순적이었고, 때문에 그 병폐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직선적인 기차와 광대한 웹을 비교하며 탈근대적 주체로서의 그 대안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대안을 주장하기 위해 근대적 주체의 계보학적 고찰을 하는 부분(특히 병리학 부분)을 읽다보면, 탈근대적 주체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그래서 탈근대적 주체담론이 새로운 보수주의로 전화하는 위험성 또한 띄고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생기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계보학적으로 서술한 우리의 근대적 주체의 성립과정상의 모순과 그러한 단선적 사고로 인하여 비롯된 야만을 생각해보면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공감도 가면서도 논쟁의 여지도 있기에 즐거운 책이었다. 뿐만아니라 고미숙씨의 즐거운 문체는 이 책을 더욱 밝게 빛나게 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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