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소재의 독창성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곤한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능력있는 젊은 인문학자들을 새로이 발굴해내는 기능 또한 이 시리즈의 무시못할 장점이기는 하지만, 이 문고본의 가장 큰 의의는 역시 그 짧은 분량상의 한계를 독창성으로 커버해 낸다는 점에 있는 듯 싶다.

아리스토텔레스 관련 서적들을 검색하다보면 대부분은 철학과 정치학 관련된 것들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는 제목부터 독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사실 책의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사상이라고만 국한해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외려 본서는 '경제학의 계보학'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맑스가 '자본'을 쓸때만해도 '경제학'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단지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만 있었을 뿐.(때문에 '자본'의 부제는 '경제학 비판'이 아닌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그 이전에도 경제학은 경제학 그 스스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과거 아테네의 폴리스 운운하던 시절까지 내려갈 것도 없이 산업화 초기단계까지만해도 경제학을 다룸에 있어, 무엇이 좋은 삶이고, 무엇이 옳은 삶인지에 대한 논의를 경제학으로부터 떼어놓지 않았다. 그거 아는가? 오늘날 경제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담스미스는 경제학자(물론 당대에는 그나마도 '경제학자'가 아닌 '정치경제학자'로 불리웠다)이기 이전에 윤리학자였음을. 경제학을 사회, 정치 및 가정으로부터 독립시키고, 희소성(사실, 희소한 물건은 '없다' 단지 그것을 독점해낼 수 있는 권력이 희소할 뿐이다.)과 시장가격이란 개념을 우상화 시키는 행태는 유구한 인간 역사속의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경제 관료들과 경제학자들에서부터 오늘도 여기저기서 찌질한 댓글달고 앉아있는 키보드 워리어들까지 경제가 우리 삶의 가장 우선된 무엇이라는 가정하에 세상만사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이 '경제'라면 '경제학'을 인간이 배제된 '순수한'경제학으로 다루는 것은 경제학 자신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박탈하는 일일게다. 실제로도 그런 '순수한'경제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파레토 최적이니 이런게 실제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임은, 모든걸 시장에 맡겨야 하기에 노동시장도 '완전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임은, 다른 누구보다 경제학자들과 관료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경제학은 수익성이 맞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을 실업의 구덩이로 몰아놓고, 혹은 제3세계 어린이들을 저임금과 장시간의 중노동 속에서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해놓고, 그것이 시장의 뜻입네 하는 식의, 그저 가진자의 좋은 핑계꺼리가 되고 말았다.(그런면에서 오늘의 고상한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도덕적 판단 기준조차 시장에 맡기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알고보면 불쌍한 영혼들인지도 모르겠다.)그럼, 시장이 신인가? 이것이 신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극복해 내어야할 신이 아닐까? 안되면 되게하라는 식의 구호는 사회적 약자를 탄압하는 곳이 아닌 이런 곳에 써먹으라고 있는 멘트이다.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기 보다는 오늘의 삶이 피폐해진 이유를 변명하는 데에나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이러한 오늘의 경제학 속에서는, 사실상 어떤 한 순간에라도 '경제가 좋아졌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한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경제학을 극복해 내고 새로운 경제학에 대한 논의를 해 나아가는 것은 기존 경제학의 '신화'가 너무도 강고하기에 쉬운 일은 아닐게다. 아마 저자가 오래전 철학자의 이름을 들먹이며 경제학을 계보학적으로 탐구한 것은 그 새로운 논의를 위한 시작지점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 시작지점을 만들기 위한 저자의 이러한 '희생타'는 매우 멋졌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제 문제는, 저자의 그 멋진 희생타를 기초로 삼아 새로이 경제를 이야기 해 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노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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