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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소 목가적(?)으로 보이는 책의 제목은 독자로 하여금 태국이나 인도쪽 동화책이 아닌가 싶은 첫인상을 갖게 만들지만, 이 책의 부제-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에서 쉽게 알 수 있듯 본서는 다소 정파적인, 그러면서도 건질 것이 무궁무진한 정치서적 되겠다.(참고로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책의 저자는 촘스키와 함께 언어학계의 양대 거두로 불리울 정도로 그쪽 학계에서는 원래부터 유명했던 분이라고 하며, 이 책과 일전에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는 '도덕의 정치'(그 책에서는 저자가 레이'커'프로 표기되어 있다-_-;;;;)의 성공으로 이제는 언어학계 뿐만 아닌, 미국 사회 전반에서 꽤나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책의 문제의식은 소개글-왜 평범한 서민들은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에 투표할까?-에 나와있듯 비교적 명확하다. 사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연구가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가 좌파적 입장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수준을 뛰어넘은 차원에서 전개되어 왔다면 이 책에서는 리버럴의 입장에서 지극히 정파적으로 선거민주주의(?)적 차원의 논의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아마도 미국은 유럽과 달리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좌파정당이 없기에 그런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아울러 기존의 연구는 문화사회학적, 혹은 심리학적 측면에서 이루어져 온 데 비해 본서는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측면(물론 언어학이니 인지과학이니 개인적으론 문외한이지만, 암튼 책 소개에서 그렇댄다)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알아왔던 연구들과는 그 궤를 크게 달리하고 있기도 하다. 암튼, 책의 결론은 단 한문장으로 축약된다. '문제는 프레임이다.'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표를 할때 경제적 이익이나 진리에 따라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도 않으며, 마케팅적 사고(즉, 구매자인 유권자의 구미에 잘 맞춘 공약을 제시하면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로 선거운동에 접근하면 패하기 딱 좋다는 것이다. 저자는 외려 사람들이 투표할때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투표를 한다고 주장한다.(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라면, '맞는것 같다.' 이런저런 어이없는 사건들과 그 당의 지울수없는 역사적?, 존재론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고공비행을 멈추지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당만 봐도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프레임을 형성하고, 이 프레임에 맞지 않는 사실들은 전부 튀겨낸다. 때문에 '프레임에 맞지 않는 진실은 보여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이런거다. 요즘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세금 폭탄'이란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논의를 전개할 때 세금폭탄이냐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이미 세금을 '폭탄'으로 설정해 버린 프레임에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도 대처리즘의 신화에 푸욱 빠져있는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애초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을 해체하고 우리가 세금의 의의, 납세의 필요성 등등을 이야기하는 등으로 '우리의 프레임'을 만든 후 증세나 감세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이 상대를 설득하는 첫걸음이라고 책은 제시한다.
아울러 '엄격한 아버지'모델과 '자상한 부모'모델을 제시하는데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이 양 측면이 모두 있으며 그때그때 상황에따라 모델을 가동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집에서 엄청 가부장적인 시민운동가나 꼴통소리 듣는 보수주의자이지만 집에서는 한없이 탈권위적인 가장을 상정해볼수도 있겠다.(이런 경우들은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내재된 이 두 모델 중 '자상한 부모'모델을 어떻게 정치적인 측면에서 발휘시키느냐, 이를 발휘시키기 위한 프레임을 어떻게 갖추어 논의를 전개시키느냐에 따라 선거에 있어서 진보세력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엄격한 아버지'나 '자상한 부모'모델이라는 명칭은 미국냄새가 많이 난다는 느낌은 들지만, 인간의 이중적 측면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저자의 주장이 어느정도 보편성은 가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책은, 어떠한 프레임을 조성해서 어떤 논점 자체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중요한 정책들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주도', 변화의 첫걸음을 통해 이후의 결과까지 계속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만드는 '미끄러운 비탈형 주도' 뭐 이런것도 제시하는데 흥미로웠다. 이렇게 쓰고보니 정치가 완전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사실, 실제로 우리 정치란게 많은 부분 말장난으로인해 좌우되는 경향이 없지 않긴하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프레임은 말장난이 아니라 '개념'을 바로 새우는 것이라고. 진실된 뜻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우리가 목표로 한 진보를 실행시키는 것이라고. 쓰고보니 저자의 말이 새로운 것도 아닌듯 싶다. 공자는 이미 정치를 '이름을 바로 붙히는 것'이라고 했다지?^^
물론 저자의 주장에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왜 서민들이 보수정당에 투표할까'에 대한 의문은 기본적으로 문화나 심리적 측면에서의 분석이 주가 되어야지, 이런식의 '프레임'을 통한 분석은 궁극적인 처방방이 될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어떠한 물적 토대(?)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프레임'에 대한 저자의 지나친 강조는 일종의 프레임 '환원론'으로 빠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의문스러운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조건이 존재할 경우 결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인지과학의 일종의 '법칙'이라면 어쨌거나 현존하는 보수세력의 프레임을 완전히 외면하여 새로운 프레임을 구성해 내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저자가 제시한 소위 '대안적 프레임'이라는 것이 보수적 프레임을 얼마나 극복한 것인지? 암튼 저자도 프레임론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는지, '완고한 보수주의자를 개종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뿐만아니라 앞에서도 언급했듯, 아무래도 미국의 현실 정치상황에 대한 단기처방전 정도로 쓰여진 책이 된 터라 우리의 실정과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해방 후 우편향적 정치지형에서 대부분의 진보적 언술들이 빨간칠 되어진 우리의 상황에서 이러한 프레임의 해체와 형성이 얼마나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또, 대다수의 사람들이 '엄격한 아버지'모델과 '자상한 부모'모델을 둘 다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다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은데, 저자는 전자를 상징하는 드라마도, 후자를 상징하는 드라마도 특정성향을 띠는 사람 뿐 아닌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들었지만, 조금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드라마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공감'을 얻었는지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측면에서 진보적 성취를 위해서는 저자의 처방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되며, 결과적으로 타인을 설득하려면 타인의 말을 그가 정해준 틀 내에서 방어하려고만 들지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물론,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단순한 '방어'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면, 정보를 취합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까지 필요할테니까)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입장을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물론,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을테지만-한번쯤 읽을만한 책이다. 이런저런 예들을 들어 프레임에 관한 썰들을 제시하는 것도 흥미롭고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