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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15
김형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평전이 '너무 많이'출간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고, 그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긴 하다. 하지만 어쨌건,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책을 구입한 이유는 순전히 책 표지의 사진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당시 무슨 일로 붙어있던 것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하여간 학회실 여기저기에 붙어있던 행사 홍보 포스터(?)의 배경사진이 바로 이 책 표지의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었다. 행사가 끝나고도 꽤나 오랫동안 떼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언제나 그 포스터에 눈이 갔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 사진 속 인물에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곰곰히 옛 기억을 반추해보면 흥미로운 것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던 나였지만(단적으로 만26년 조선일보 독자란게 그 예다. 더군다나 중딩때부터 고딩때까진 그냥 독자도 아닌 '열독자'였으니ㅋ) 문익환 목사님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적도 없고, 나 또한 유독 문목사님에 대해서는 '빨갱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책을보며 모든 사람을 '섬기러 오신'듯 행동하신,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 세상을 아름답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 그 분의 파란만장하면서도 일관된 일생이, 그 수많은 흑색선전마저 그 분의 모습을 왜곡시키지 못하도록 만든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전을 쓴 김형수씨의 직업은 문인이다. 이러한 저자의 배경은 책의 강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이런 인생이 있을수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의 20세기를 그 한몸에 온전히 담아낸 문목사님의 일생을 정말이지 드라마틱하게 서술하여 평전에 감동과 재미를 준 것은 그 배경이 강점으로 작용한 측면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주변의 몇몇 분이 평하시는바대로 독자에 따라선 문체가 영 취향에 안 맞는 경우도 있겠다싶은 생각은 든다.(그렇다고 몇몇 평전들처럼 한 개인에 대한 찬양 일변도로 가지는 않는다)
우리가 아는 문익환 목사님의 모습은 1976년 59세 나이로 '3.1민주구국선언'성명서를 작성한 것이 처음이다. 하지만 책은 우리가 아는 문목사님의 모습만큼이나 우리가 알기 이전의 문목사님 모습이 중요하다며 그 분의 일생에 대해 자세하고 극적으로(?) 서술해 나간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그 컴플렉스를 하나, 둘 극복해가던 그 분의 모습, 그 고생스럽고 위험했던 저항의 공간마저도 웃음의 공간, 해학의 공간으로 녹여버릴 만큼 그 분의 광대한 '사랑'은 정말 인상적이었다.(참고로 문익환 목사님께선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모든 것은 좋습니다. 좋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악은 무엇인가? 악은 악용된 선이 아니겠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의 80년대는 문익환 목사님으로 흘러들어가 문익환 목사님으로부터 다시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80년대는 문 목사님 만큼 가능성이 존재 했고, 문목사님 만큼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넘치는 정열과 헌신, 사랑과 휴머니즘은 80년대의 가능성이었지만, 분명 너무도 순진하셨고, 다소 감상적이셨던 부분 또한 없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분을 단순히 진보적 민족주의자 정도의 구획에 가두는 것은 그 분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그 시대에 대한 모독이기도 한 듯 싶다. 그 분은 단순한 사상적 구획설정을 뛰어넘는 수준의 사고와 그 무엇보다도 정력적인 실천을 하셨던 분이시기에.
여담이다만, 문목사님의 인생은 그 출생부터 한국 현대사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에 있으셨던지라 책은 '한 유력한 재야 운동가를 중심으로 본 한국현대사'수준이다.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건 그 분의 정말이지 '위대한'일생이겠지만. 엔간하면 평전은 추천 안하는데, 이 책만큼은 예외로 하고 싶을만큼 괜찮았다.
ps.문목사님 사진을 보며 느낀건데,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정말이지 옳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나도 그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내가 가진 소망 중 가장 실현불가능 한 소망인듯ㅋ-_-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