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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에 대한 강의 ㅣ 동문선 현대신서 8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 동문선 / 1999년 1월
평점 :
역자인 현택수 교수는 뒤의 해제에서 '부르디외 사회학에의 초대'라는 말로 본 책을 소개하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절한 소개였다는 생각이 든다. 부르디외의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강연문인 본서에서는 부르디외의 주요개념인 아비투스, 문화자본, 상징폭력, 그리고 무엇보다 장(場, Champ)등의 개념이 그 짧은 분량에 비해 비교적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설명되고 있다.
부르디외는 일종의 주술행위이자 상징적 권력부여라 할 수 있을 '강의'의 성질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회학 이론들에 대해 하나, 둘 이야기를 해 나간다. 그는 권력은 물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때문에 우리는 장(場) 속에서 경쟁, 대립함으로써만이 재생산되는 아비투스와 장의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을것이라 역설한다. 아울러 그러기 위해서 사회학은 끊임없이 그 상징적 권력부여의 측면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반성하여, 과학의 '상징폭력'적 지위에 이의를 제기하여야 함을 그는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이 갖는 탁월성은 굉장히 '실천적'이면서도 '다원적'이라는 점에 있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자신의 말마따나 그저 '신비화 작업'일 따름인 과학의 '객관성'을 비판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는데, 자칫 지적 허무주의나 상대주의로 흐를 수도 있을법한 그의 이러한 작업은 "보편화 담론을 이용한 상징폭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는 두텁고 굳건한 목적하에 이루어지고 있기에 권력이나 폭력에 대해 결벽적인 지식인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는 듯 싶다.(이러한 그의 사상은 그의 생전의 '행동'을 통해 명명백백히 보여졌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그는 지난 2002년 사망했다-사회적 실천의 영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끝으로 본서의 번역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굉장히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 읽히는게 사실인데, 이유는 부르디외의 난해한 화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이없는 번역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역자마저 해제에서 불만족스러운 번역이라 인정하며 '독자의 각별한 인내심과 양해를 구한다'고까지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소 '뻔뻔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내 6000원은 어쩔 것이란 말이더냐. 동문선의 책은 비싸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번역'해서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조그마한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