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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 ㅣ 당대총서 13
윤건차 지음, 장화경 옮김 / 당대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윤건차씨는 인문학 분야에 있어 '1세대 재일조선인 학자'로 칭할만한 분이다. 본서는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저자의 공부 과정 중에 쓰게 된 책으로써 일종의 학문적 중간결산이라 할만한데, 책은 그러한 중간결산을 넘어서는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오랜기간 생활하신 분이 아니시기에 이런저런 얽매임으로 비켜가 있으며 조금 더 외부의 시각이라는 특수성으로 한국 사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그 사상논쟁의 흐름으로부터 언제나 벗어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기에 그러한 부분에서는 다소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책에서는 '~같다', '나름대로 생각해보자면'식의 소극적인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외려 이러한 표현들 덕택에 어디까지가 저자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저자가 언급하는 학자의 생각인건지 구분해내기 수월했다.
책은 부제에서 보여지듯, 80년대와 90년대의 한국 지식인과 그 사상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혁명의 시대'이자 '사상의 시대'이기도 했던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과 민중개념에 관한 사상, 그리고 리영희, 백낙청선생 등 주요 지식인들의 활동과 사상등등을 정리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동구의 몰락 이후 90년대에 진행된 다양한 흐름 즉, 알튀세르나 발리바르 등등등을 통한 맑스주의의 재모색 및 시민운동론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과 소멸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97년 IMF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말이지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는 수많은 사상들의 모색과 새로운 이합집산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이지 '압축근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복잡다단한 역사를 거쳐왔으며 또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지식인들의 사상흐름 또한 어지럽기 이를데 없으나 저자는 그러한 사상흐름을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잘 정리하고 있다.
책에 정리된 우리 지식인들의 사상흐름을 보며 어두운 시대, 실타래처럼 꼬여 해결할 수 없을듯 해 보이는 과제들을 껴안고 수많은 고민을 한 우리 지식인들의 고뇌가 느껴져서 새삼 경외심이 들기도 했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피나는 노력이 실제로 사상의 풍요를 낳았는가 하면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압축근대, 식민지성, 포스트모던적 경향이 혼재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지식인들은 외국 사상을 수입해 와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러한 사상의 무분별한 수입은 수많은 오해와 사변적 경향만을 낳게되어, 갈수록 오늘의 현실 및 실천적 측면에서 괴리를 보이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근대'라는 개념만해도 스스로도 무엇인지 모르고 남발한 것, 그 근대 또한 우리가 '식민지'근대라는 자각조차 없이 제1세계 이론들을 수입하느라 급급해서 우리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통일조차 안된 상황에서 너무도 쉽게 탈국가 탈민족을 떠들다보니 관념적으로 흐르게 된 것, 유의미한 좌파정당 하나 없는 상황에서 제3의길을 수입했다가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꼴이 된 것등등이 그 비근한 예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사상적 흐름과 지식인들의 고민이 무의미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사상의 수입과 고민들이,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로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는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은 지울 수 없었다.(사실 이런 책이 우리 학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일본학계를 통해 출판되었다는 사실도 오늘 우리 사상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아울러 현실적으로 운동이 단순히 이론이나 이치로만 움직이는 것도 아님에도 그간 지식인들이 운동적 측면에 있어서까지 너무 결벽증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던게 사실이었다.
아무튼 저자의 성실한 정리와 설명은 어찌보면 어렵고 복잡한 주제를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국 지식인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그 사상의 세계사적 배경과 간략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어 사상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나로써도 어렵지않게 우리 현대사상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저자가 개입하여 '외부인(?)'의 시선으로 우리 사상가의 사상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곳에서 개인적으로는 그간 생각도 못했던 부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정말 내가 아는 것들이 참 보잘것 없구나라는 자각 또한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김진균, 백낙청, 최장집 선생님부터 이진경, 강내희, 조한혜정씨까지 수많은 지식인들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좀더 짜임새있게 그들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읽고 평가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읽어보셔도 절대 후회하시지 않으리라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