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사나이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7
그레이엄 그린 지음, 안흥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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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때였나 중딩때였나, (아님 고딩때였나?-_-;;;) 하여간 머나먼(?)옛날 일요일이면 EBS에서 '고전'이라 불릴만한 옛날 영화를 해주곤 했었는데, '야구 중계가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와 함께 그런 영화들을 시청했던 터라 적지 않은 '고전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원채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대부분의 영화는 제목조차 기억이 없지만 그 와중에 단 하나, 바로 '제3의 사나이'라는 영화의 '제목만큼은' 기억이 난다. 아니, 사실 제목 뿐만이 아니라 몇몇 장면들도 기억이 난다. 오스트리아의 대관람차, 웬지 모르게 어두우면서도 매력적이었던 배경, 오손 웰스(맞나?)의 정말이지 소름끼칠 정도의 갑작스런 등장 등등등. 내용이 확실히 기억나진 않아도 영화장르가 스릴러물이었다는 것은 아직도 기억이 나고, 굉장히 재미있게 봤었기에 언젠가 한번 다시보고 싶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문예출판사에서 얼마전 그 영화의 원전소설이 번역되어 나왔다길래 아쉬운 김에 구입해 읽게 되었다.

전후 미-영-프-러 4개국에 의해 분할통치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빈(당시 빈은 독일로 치자면 베를린과 비슷한 유형의 분할통치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본 소설은 명목상 3류 서부극 소설가, 실질상 백수(?)인 '롤로 마틴스'가 절친한 친구인 '해리 라임'으로부터 초청을 받고(사실은 일거리를 부여받고) 빈에 입국해 갖가지 알수없는 일들을 겪게되고, 그러한 이상한 일들을-구체적으로는 해리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된-마틴스가 순전히 '우정'과 '정의감'에 불타서 투박하지만 날카롭게 파해쳐가는 것이 기본적인 스토리다. 따지고보면 본 소설은 일종의 추리물이고, 나름 극적인 반전(?)도 있는 터라 내용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은 독자가 '될'분들을 위한 예의가 아닌 것 같기에 내용에 대한 서술은 여기서 줄이고 감상으로 바로 넘어간다면.

우선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본서 뒤의 해제에 보면 마치 본 소설이 선과 악의 뚜렷한 대립을 기반으로 서술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점에 대해 다소 의문스럽다. 주인공인 롤로 마틴스는 저자 말마따나 어색한 세례명인 '롤로'와 완고한 네덜란드식 성(姓) 사이의 갈등(?)에서 보여지듯 '결정 불가능한'인물이다. 굉장히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충성만을 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순진하고 정의로우며, 무뚝뚝하고 경우가 없으며, 무식한 것처럼 보이지만 따뜻하고 절도있으며 날카로운 면모도 종종 보인다. 이는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친구인 해리 또한 마찬가인데 한 여자를 포함하여, 적지 않은 친구들이 그를 죽고 못살 정도로 따르게 될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알고보면 잔혹하고 무책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캐릭터들은 소설을 더욱 흥미있게 만들고 있으며, 사실상 본 소설의 재미의 근본적인 기반(?)이 되고 있는 듯 싶기까지 하다. 아울러 '해리'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태도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이 부분도 혹여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까 싶어 압축적으로 감상을 적자면) 해리의 일탈에 대한 슈미트의 반응과 마틴스의 반응은 비슷하지만 결국 상이한 선택을 한다. 따지고보면 양자의 태도 모두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어떤것이 옳은 행동이었을까? 사람이 하는 일이 늘상 그렇듯 둘의 태도 모두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그런 태도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소설은 마치 '영화화'되는 것을 예정한 것 같이 느껴질 정도다. 롤로 마틴스가 자신의 필명(마틴 덱스터)으로 인해 겪게되는 해프닝(벤자민 덱스터라는 당대 훌륭한 소설가와 혼동되어 마틴스는 엉겁결에 문화협회 세미나에까지 참여하게 되며-당연하게도-그 세미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이나 극적인 반전 순간의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영화적 상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암튼 본 소설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심심하신 분은 일독을 권함.^^

ps. 문예출판사의 '제3의 사나이'(라고 언급하긴 하겠는데, 국내에 지금 '유통'되고 있는 '제3의 사나이'는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것 뿐이다)에는 그레엄 그린의 또 하나의 소설인 '정원 아래에서 (Under the Garden)'가 수록되어 있다. 삶의 의지를 잃고 있던 주인공이, 자신이 생의 목표의 근원으로 삼아왔던 어린시절 살던 집 정원에서의 경험을 반추하기 위해 옛집으로 돌아와 느끼게 되는 실망감(크고 나서 보니 전부 그저 자신의 헛된 상상의 산물이었더라는)으로 인해, 자신의 지난 삶을 뉘우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는 것이 본 소설의 기본적인 스토리.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특히 주인공의 어린 시절 정원에서의 경험 부분) 어떻게 보면 심오한 철학서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때문에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기존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희망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어 외려 '삶의 의지'를 갖게 되는 부분이 꽤나 흥미로웠는데 비교적 보수적인(?) 결말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저자의 만년의 삶이 어땠는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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