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혁명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1
전진성 지음 / 책세상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본서를 구입하는 데에 있어 어느정도의 학연과 지연이 작용했음을 시인해야겠다. 저자(라고 칭해도 될까 조심스러울 지경-_-;;;;;)의 소개에 따르자면, 나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같은 학교와 같은 정서를 갖고 살았던 분으로 보이는데(물론 나이는 내가 근 15년 가까이 어리지만ㅋ) 혹여 어린시절 나도모르게 지나치지 않았을까, 하는 반가움에 별 이유없이 구입했다.

도입부에서부터 저자는 이 책이 우리의 현실과는 별 상관없는 고답적이고 학술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가능한한 지루하게 서술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고, 나 또한 그 대목을 보며 구입을 잠깐 후회했지만, 정작 굉장히 재미있게(?!)읽었다. 아울러 본서의 내용이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20세기 초 독일의 보수적인 '교양시민계급'지식인들의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오늘, 여기에 사는 우리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이야기라 치부하는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일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이 보수혁명의 주인공들은 유럽에서는 어쨌건 '늦은 근대'를 맞이했다는 독일에서 20세기 초,중반에 맹활약(?)한 독일의 교양시민계급이다. 그들은 물질과 기술지상주의적인 자본주의 근대화의 물결도 마땅찮았고, 온갖 '잡것'들이 설치도록 내버려 두는(?)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암울했을 근대화의 시기를 지나 1차 대전이 시작되자 이들은 환호했는데, 전쟁터야말로 그들이 생각하던 이상-희생, 형제애, 신뢰같은-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 전쟁에 참여하며 전쟁터가 그렇게 낭만적인 공간은 아님을 느끼게되고, 전쟁터에서 놀라운 기술 발전이 보여준 화력을 체험한 그들은 다시 한쪽 극으로, 즉 기술에 대한 맹신의 길로 간다.

전반적인 우울함 속에서,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기에 이들은 결국-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앞으로의 도주'를 감행한다. 이러한 앞으로의 도주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심지어 '민족볼세비키'란 이름으로 극좌파인 볼세비키와 연대하는 부류도 있다.) 물론, 이들의 다수는 대놓고 나치즘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나치즘을 수용하는 보수주의적 입장에 서 있었고, 때문에 나치즘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봐야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건 유의미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은 아니었다. 그들의 성향자체가 '반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보여진 이들의 수많은 정신적 아이러니들은 혼란스러운 시기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서술은 모습들은 우리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다시 정리, 해석해 보고자하는 의욕을 부추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책을 읽는 내내 이젠 미디어에 일상다반사로(?) 얼굴을 내비치는 소위 '운동권출신 극우보수 변절자'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그들은, 애초부터 변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런지??) 자칫, 방향을 잃고 헤맬 수 있을 주제이지만, 저자가 탁월한 문체로 매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정말이지 지금, 여기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주제이지만, 어떤 사람이 읽건 실망하지 않을 만한 내용이다. 당근 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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