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와 역사의 종말 이제이북스 아이콘북스 7
스튜어트 심 지음, 조현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이제이 북스에서 나오는 아이콘 시리즈는 적어도 제목만 놓고 봤을 때 독특한 구석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 '푸코와 이반이론', '하이데거 하버마스 그리고 이동전화' 뭐 이런걸 보면 호기심도 일지만 한편으론 그 적은 분량에 난해한 사상가의 사회적 논란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다 수록하나 싶은 걱정도 든다.

'데리다와 역사의 종말'도 제목만 보면 흥미로우면서도 역시나 한편으로는 위와같은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사상에 관한 입문서보다는 살짝 수준이 높고, 그렇다고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책이라고 보기에는 분량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부족한점이 많다고 할 수는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시종일관 '데리다 사상 사례풀이(?)'정도로 생각이 되었는데, 실제로도 저자는 본서의 주제를 '데리다와 역사의 종말'로 정한 이유에 대해 '종말론 논쟁에 대한 데리다의 공헌은 문화적으로 극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해체로 가는 길을 열어주며, 그 길은 대중의 평판과는 달리 해체를 훨씬 덜 난해한 지적 활동의 영역으로 보이게끔 해줄것이다.'라고 언급하여 그러한 목적을 넌지시 밝히고 있다.

사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론'은 데리다의 유명한 신조어(?)인 '차연'개념만 생각해봐도 이미 까일(?)준비를 하고 있는 개념처럼 보이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은 비단 후쿠야마의 '종말론'뿐만 아니라 일부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종말론'도 비판하고 있다.(곰곰히 생각해보면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이 실질적으론 그들이 그렇게 비판해 마지않는 해겔의 역사개념과 그 궤를 거의 같이 한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싶다) 암튼 본서를 통해 하여간 데리다에 관해 개인적으로 정리가 안되고 있던 수많은 부분들-이를테면 '메시아없는 메시아주의' 같은 것-이 은근슬쩍(?) 정리되었던 터라 꽤나 만족감을 느꼈다.

저자는 해체론도 적극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 즉 정치적 논쟁이나 윤리학적 측면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해체론 그 자체로부터 도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역사의종말'학파(?)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을 소개했다는데, 확실히 그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압축적이고 간결하게 이러한 논의들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목적'에 비추어 개인적인 감상을 논한다면, 데리다는 '해체'를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활용했을 따름이지 정치적 기반이나 윤리적 측면에 있어서는 데리다 본인 스스로는 밝히지 않았을지라도 해체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떠한 확고한 기반(?)을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사실 애초 알튀세르등과 빈번한 교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구가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맑스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그의 행위 자체가 굉장히 사려깊은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행위였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저자가 보여주려던 해체의 적극적 측면 대신, 개인적으로는 해체가 부당한 도덕적 우월성을 파괴하는 데에 굉장한 '방법론적'유용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어찌되었거나 이러한 해체가 가치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데리다처럼-그것이 분명하진 않더라도-해체 외부에 존재하는 어떠한 확고한 기반에 의지하여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게 되었다. 데리다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모호한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후회하진 않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